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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 Apr 21. 2023

출근길에는 인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전장연 시위를 겪으며

보통의 월요일 아침. 새로운 한 주의 설렘 보다 주말 순삭의 아쉬움이 큰 출근길. 여느 때 처럼 이어폰을 꼽고 지하철을 타러 갔다. 개찰구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는 그날 따라 지하철을 타러 가는 사람보다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많았다.


‘출근길에는 다들 타러 가는데 오늘은 이상하네’ 


평소와 달랐지만 우울한 출근길에 남들 사정이 무슨 대수랴. 출근하면서 이미 퇴근하고 싶은 마음으로 교통카드를 대는 순간 음악소리를 뚫고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었습니다. 다른 교통편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아직 잠이 덜 깬 건가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지. 이어폰을 빼고 안내하는 지하철 직원의 소리를 다시 들었다.




 장애인 단체의 기습 시위로 지하철 양방향 운행이 중단되었습니다. 다른 교통편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퇴근은 1분이라도 빨리, 출근은 1분이라도 늦게 하고 싶은 것이 전세계 20억? 직장인의 마음이거늘. 신호등, 지하철 도착 시간, 엘리베이터 오는 시간 등 모든 타이밍이 완벽할 때 비로소 세이프 가능한 시간에 맞춰 출근하는 일개 직장인인 나에게 이런 시련이 오다니. 이어폰을 마저 빼고 밖으로 나왔다. 얼굴은 애써 침착하나 마음으로 울먹이는 다수의 출근러들이 다급히 택시를 잡고 있었다. 모범택시 따블도 안 잡힐 것 같은 치열한 상황에 결국 나는 집으로 돌아가 자차를 끌고 출근했다. 결과는 당연히 지각. 5호선을 타는 동료들이 욕을 하며 뒤늦게 들어왔다.


"아니, 월요일 아침 시위는 진짜 반칙 아니냐. 너무하잖아"


"장애인 단체 시위 때문에 왜 나 같은 직장인이 피해 봐야 하는 거야"


"아침에 전무님 보고 있었는데 망했잖아. 택시비로 15,000원 날리고... 너무하네…"



인터넷 뉴스 기사 댓글은 더 심하게 시위에 비판적이었다. 점심을 먹고 곰곰이 생각해봐도 화가 나고, 이해 되지 않았다.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 투쟁과 시위. 다 좋은데, 왜 아무 잘못 없는 내가 피해를 봐야 하는 건지. 장애인 인권에 나름 관심 있고, 봉사활동도 많이 했다 자부하지만, 장애인 인권 관련 이슈 레이징을 위한 일이라 하더라도 정부도, 국회의원도 아닌 일개 직장인들이 출근하는 월요일 아침 기습시위라니. 너무 악의적이건 아닌지.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 불법 시위. 익숙한 주제에 동생에게 카톡을 보냈다. 중학교에서 특수교사로 일하는 쌍둥이 동생과는 스무 살 때부터 같은 주제로 자주 토론?을 하곤 했다. 특히 장애인 단체와 동생이 5차선 마포대교를 점검하고 시위했던 2005년 장애인의 날 논쟁은 뜨거웠다. 인권, 시위, 투쟁 다 좋지만 시민에게 피해를 주는 불법행위는 잘못된 행동이고, 장애인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를 주게 되어 궁극적으로 장애인 인권 신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공자님 말씀 같은 내 의견과, 십여 년 합법 시위해봤자 저상버스,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요구가 수용되지 않다가 불법시위 한 번하면 만들어주니 생존권, 이동권 차원에서 어쩔 수 없다는 동생의 반대 견해. 지체장애인에게 이동권은 생존권이라 시민들의 부정적 여론보다 당장 내일 내 집 앞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생기는 게 더 중요하다는 동생의 의견은 단호했고, 우리는 평행선을 달렸다.


30대가 훌쩍 넘은 오랜만의 토론은 20대 못지 않았다.


출근길 갑작스런 지각으로 분노한 감정 상태에서의 논쟁이라 그런지 스스로 맞는 말만 한 것 같았음에도 어딘가 찜찜했다.


‘사람 사는 세상이 다 도덕책처럼 돌아갈까’


‘당연하게 매일 타는 지하철과 버스가 누군가에게는 이른 출근길 불법시위의 비난을 감수하면서 투쟁해야 겨우 얻어낼 수 있는 것이라면. 그 누군가가 나이고, 내 가족이어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부끄럽지만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은 단순히 이동 편의성이 아닌, 이동권 제약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일이라는 것과 이동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면 교육을 받을 권리나 병원에 가서 치료받을 권리를 제대로 누릴 수 없는 것도 찜찜한 마음에 시위의 목적과 명분을 찾아본 이후에 알게 되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 지하철 사태?는 잊혀졌을 무렵 정부가 백신패스, 방역패스를 강화하면서 백신 미접종자는 식당, 카페를 사실상 이용할 수 없게 됐다. 과거 치료받은 이력이 걱정되어 백신을 맞지 않은 와이프는 재택근무와 백신패스 지침 덕에 수개월 동안 집에 갇혀 지냈다. 덕분에 나도 와이프와 밖에서 밥 먹고 커피 마시는 일상이 중단되었다. 와이프는 미접종자로 지내면서 점점 나라가 자신을 가두고, 문제 있는 사람을 취급한다며 소외감을 느꼈다. 나도 미접종자 가족으로서 효과가 크지 않아 보이는 백신 정책으로 선의의 피해자가 된 것 같아 불만이 쌓여갔다.

 

‘일부 백신 미접종자들의 불편이 있을 수 있지만 그보다 사회 전체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 백신패스가 필요하다’는 어떤 전문가의 발언과 '미접종자들이 답답하겠지만, 행여나 백신패스가 없으면 코로나 확산이 더 빨라질 텐데, ‘일부 미접종자들’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인의 솔직한 견해에 와이프를 대신해 소수적 감정을 느꼈다. 다수의 행복을 위한 거라면 소수의 불편은 정당한가 라는 마음 속 항변 뒤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정부에 의해 외식권?이 박탈된 수개월 동안 느낀 차별은 억울하고 부당하다 느끼면서, 수십년 이동권과 생존권이 박탈된 장애인의 차별과 불편함은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과서 같은 논리와 근거로 부정 했다. 내 고통은 가슴으로 느끼고, 남의 고통은 머리로 이해하려 하며 스스로 강자와 약자 사이에서 균형적이라 자족했다. 

 


다수의 행복과 소수의 고통은 등호, 부등호로 수치화될 수 없다. 서러움과 불편함에 객관성이 어디 있겠나. 고통은 태생이 주관적이다. 그렇기에, ‘타인의 고통은 말이 아니라 몸으로 느껴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새삼 떠올랐다. 모든 소수적 경험을 하지 않더라도, 내가 장애인으로서 불편함을 직접 경험하지 않더라도, 몸으로 느낀 마이너 필링을 보편화하고, 가슴으로 이해하며 연대하는 것. 짧지만 그리고 얕지만 간접적으로 체험한 마이너 경험을 통해 하나 배웠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메타포라 수업이 있는 날. 칼퇴 후 최대한 빨리 가야 제 시간에 줌 접속을 할 수 있었다. 하늘이 내 배움을 시험하시는 걸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나를 테스트하듯 퇴근 길에 이동권 시위를 시작했다. 


'아...메타포라 수업 늦을 텐데...은유쌤 만나야 하는데...'


비록 작은 탄식은 내 뱉었지만, 시위자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정부는, 정책자들은 왜 아직도 약속을 지키지 않기에 약자들을 사지와 욕받이의 자리로 내 모는가. 하지만 곧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지하철에 한 숨이 나왔다. 원망의 마음이 꿈틀거릴 때, 그 에너지를 동력 삼아 동생과 3차 카톡 토론을 시작했고, 이번엔 결론을 내렸다. 


출퇴근길에는 인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2022.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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