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시계를 보는 것이 두렵다. 성취해낸 것도 없는데 남은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초침은 방정맞게도 매초마다 몸을 흔들어대며 똑같은 소리로 자신을 어필한다. 1분에 자그마치 60번이나 움직이는 이 괴상한 생명체는 중력을 거슬러 올라갈 때 옅은 소리를 내다 숫자 1이 적힌 부분을 지나치면 재삼 큰소리치는 이중인격의 소유자다. 규칙적으로 시간을 앗아가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그것의 움직임은 종국엔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갈 것이다. 아니, 그것은 이미 수많은 삶을 앗아갔고 지금도 무고한 생명이 그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 얼마나 놀라운가, 순진한 표정으로 앙증맞게 째깍이는 이 작은 초침이 그토록 흉악한 연쇄살인마였다는 것은! 물론 진정 신경쓰이는 것은 이 기다란 생명체가 내는 불길한 소리다. 그것은 항시 쯧쯧하는 혀차는 소리를 내며 모종의 피해망상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비교적 조용한 분침이 한 바퀴를 돌 동안 초침은 3600번의 혀차는 소리로 나를 추궁한다, 자신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무얼 했냐는 둥, 그 긴 시간 동안 짜맞춘 문장이 고작 이 정도 밖에 안 되냐는 둥. 그럴 때면 모든 것이 무언의 공격성을 내포한 어떤 악의를 내비치는 것 같다. 피부병을 앓고있는 노파에게 안겨있는 느낌이다. 심호흡을 해본다. 눅눅한 공기 사이로 알 수 없는 피곤함이 스며든다. 목구멍에 무언가 들러 붙었는지 침을 삼킬 때마다 까슬까슬한 느낌이 전해져온다.
조용히 블로그를 염탐한다. 사람들의 글은 일종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이 사람은 탁한 남색이 돼버린 화가의 물통, 이 사람은 헝클어진 검은 머리카락, 이 사람은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마시멜로, 이 사람은 우아한 곡선을 뽐내는 도자기의 바디라인. 언젠가 정교하게 수놓은 듯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문장과 문장이 끈끈히 붙어있어 손가락으로 첫 문장을 집어올리면 그 다음 문장들이 주렁주렁 달려올라올 것 같은 그런 글이었다. 그때의 경험을 떠올리며, 나는 원인모를 조바심으로 글 잘 쓰는 사람의 사이버공간을 들여다본다. 문장이 꽤나 예술적이다, 같은 생각을 하면서. 나는 마치 관음증에 걸린 환자처럼 무언갈 기대하며 하얀 배경을 촘촘하게 메꾸고 있는 글자들을 읽어 내려간다. 그러다 문득 자책의 기록을 발견한다. 그는 자신의 부족한 재능에 욕지거리를 했고 그런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주변의 눈치를 봐야하는 갑갑한 현실을 저주했다. 그 글에서 나는 뭉크의 절규나 어떤 동물적인 울부짖음을 떠올린다. 동시에 드는 안도감. 이런 문장을 만들어내는 사람도 결국엔 이리저리 흔들리는 평범한 개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현실감있게 다가온다. 상념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초침의 혀차는 소리가 상념이 사라진 공간을 채운다. 나는 그 문장에서 나를 읽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