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화와 자기기만과 자기연민에 맞서 싸울 것임을 선언한다. 나는 단 하나의 감정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을 것이며 비수같이 살을 후벼 파는 진실들을 회피하지 않고 전부 고스란히 받아낼 것이다. 나는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정면으로 이 감정들을 응시할 것이며 진심이 아닌 것에 가짜라는 죄명의 사형선고를 내리고 그것을 냉정하게 조각낼 것이다. 상처투성인들 어떠하며 피를 조금 흘린들 어떠한가, 태어나는 순간 고통과 혈연의 계약을 맺는 우리가 아니었던가. 죽지만 않는다면 나머지는 아무래도 좋다. 그 어떠한 기상천외한 얼굴의 감정들이 혼을 뜯어먹고자할지라도 그것은 종국엔 나를 파멸로 떠밀거나 성장으로 이끌 것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한 켠의 망설임없이 고통과 대면할 것이다. 나는 실체 없이 흐물거리는 그 고통의 가면을 진실의 얼굴에서 뜯어낼 것이며 그 너머에서 눈을 치켜뜨고 조용히 웅크리고 있는 감정덩어리들의 실체를 하나하나씩 최대한 고통스럽게 맛볼 것이다. 그래 나는 텅 빈 암흑 속에서 몇 번이고 쓰라린 고함을 지를 수도 있고 암흑에게 차라리 날 죽여 달라 애원할 수도 있다. 어쩌면 모든 고통이 종료되는 지점 나는 이미 죽어있을지 모른다. 나는 그러나 다시금 눈을 뜰 것이다. 나는 그 핏빛 세계의 한 가운데에서 기어이 정신을 차릴 것이다. 나는 고통의 숨결이 내뿜는 독소를 무시할 것이며 진실들이 내뱉는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밟고 그저 그대로 고통에 의해 묵묵히 난도질당할 것이며 감정들이 서로를 고발하는 거짓 재판의 장을 완전하게 박살낼 것이다. 기억조각들이 흩어져가고 정신이 혼미해질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좋다. 난 최대한 그러니까 최대한으로 내 의식 속의 불순물들을 낱낱이 걸러낼 것이며 고통이 나를 응시하듯 나 역시 고통을 응시할 것이고 고통이 결국 몸서리치며 내 눈을 회피할 때까지 나는 기어코 그것의 정수를 꿰뚫고야 말 것이다. 종지부에서 물러서지 않는 것, 내 방법은 언제나 동일했다. 마지노는 나에게 무의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