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면서 내가 잊지 말아야 할 것.
내 안에 내면 아이의 절규를 들어주기
아이에게 분노를 쏟아내고 싶지 않다.
어느 부모가
아이를 공포스럽게 하고 두렵게 만들고 싶을까.
그런데 내 몸에 새겨진 감각들은
자꾸만 아이를 공포의 자리로 데리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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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조절하기가 많이 힘들었다.
그것이 생리 전 증후군 기간과 겹치면 더 감정적으로 괴로워졌다.
출산 후 호르몬 변화 때문인가 생각했다.
그러다 오늘 아침
그게 비단 호르몬 때문만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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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미끄러운 욕조 바닥에 혼자 걸어가겠다고 할 때
나는 아이가 혹시라도 넘어질 상황을 대비하며
긴장한 채 아이의 발걸음을 인내한다.
우유를 두 개나 먹고도 더 먹겠다고 하는 아이의 떼 부림에
배탈이 나면 어쩌나 걱정되는 마음을 견디어 낸다.
밥을 먹을 때 숟가락을 내어 주면 식탁이 온통 지저분해질 것을 알지만 아이의 자율성을 위해
지저분함을 견디며 아이에게 숟가락을 내어준다.
아이의 낮잠시간을 기대하며 같이 누웠지만 아이가 2시간 동안 자지 앉고 책 읽어 달라, 물 달라, 기저귀를 벗겨라, 입혀라 하는 분투를 따르며 감정을 꾹 꾹 눌러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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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심장이 너무 빨리 두근거렸다.
신체화가 일어난 듯했다.
내면에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니,
'너 지금 많이 힘들지? 정말 많이 참고 있느라 얼마나 애가 쓰이니 너 지금 죽을 만큼 버거운 니 감정을 억누르고 있구나'
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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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가 정말 분투의 현장이고 인내의 현장인데
나는 그 감정을,
내가 힘들다는 감정을 봐주지 못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인내하고 참고 참고 참다가
아이에게 쏟아지는 감정을 마주하면
"너는 고작 그것밖에 안돼"
"너는 결국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엄마야"
"너는 너의 상처를 대물림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야"
라는 내 안에 가혹한 메시지들로 나를 쳐내기 바쁘다.
이토록 힘든 육아의 현장에서의 감정들을
나는 왜 단 한 번도
힘들다고 의식으로 꺼내지 않았을까?
내 감정을 왜 봐주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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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감정이 고려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에게는 너무나 낯선 것이다.
고려받기 위해 공감받고 공감을 주기 위해
겉사람은 상담이라는 학문으로 부단히 노력하지만
나의 저 깊은 무의식엔
내 감정에 귀 기울이는 것이 여. 전. 히 불가능했던 것이다.
무의식에선 내 감정을 소외시키고
못했을 때 가혹하게 나를 몰아붙이고
공포스럽고 두려움에 떨도록 혼자 방치해둔 그 태도.
나의 대상관계 표상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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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육아하며 잊지 말아야 할 것.
그것은 '나'의 감각과 감정이다.
아이를 보면서도 그 가운데
순간순간 내 감정을 봐주는 것.
애쓰고 분투하고 노력하고
잘 되지 않았을 때 좌절스러워하고
속상해하고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나의 내면 아이를 같이 봐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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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 쏟아지지 않는다.
억눌렀다가 아이를 향해 터트려지는 감정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되는 건
'왜 나를 봐주지 않아? 나도 두렵고 무섭다고!'라는
내면 아이의 절규가 같이 쏟아져 흐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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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아이야, 육아 힘들지? 애쓰고 있어. 잘하고 있어.
노력하고 있어. 알아차리고 있어. 실수할 때도 있어.
너의 두려운 마음, 속상한 마음, 잘하고 싶은 마음 내가 알아.
순간순간 아이를 보듯이 내가 너를 봐줄게.
아이를 보느라 너를 잊어버리고 지냈었나 봐.
다시 고개를 들어서 노력하고 있는 너도 봐줄게.
말해줘. 힘들다고, 속상하다고 두렵다고 어떤 감정이든
같이 이야기 나누자. 참지 말고 나에게 말해줘 내가 들을 수 있게.
내가 너를 도와줄게 내가 너와 함께 할게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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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다시,
감각으로 감정으로 모든 세심함을 쏟아부어
나를 돌보며
내면아이와 내 아이를 지켜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