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27일, 백서른네 번째
문득, 어떤 이유로, 내가 떠오른다는 사람을 곁에 둔다는 게, 참 행복한 삶이 아닌가 싶다.
누군가를 떠올리기도 하고 누군가 내가 떠오른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검도에 관한 글을 쓰면서, 나는 검도를 오래 수련해온 친구를 떠올렸다. 그에게 검도에 관해 물었더니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키워드가 있다는 게 좋다면서.
또 어떤 날은, 아렌트를 공부하는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아렌트의 사상이 현상학과 닿는 지점이 있겠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아렌트도 현상학도 잘 모른다. 그래도 사랑하는 친구여서 깜냥껏 일장연설을 지껄였다. 다 듣고 난 친구가, 공부를 하다 보면 가끔 내 생각이 난다 한다. 고마워서 눈물이 날 뻔했다. 검도를 수련한 친구가 이런 기분이겠구나, 생각했다.
생각하면서, 생각하면서, 나도 그들을 떠올린다. 내키면 닿을 수 있는 친구들. 일 년에 몇 번 보는 게 대수인가 싶다. 가까이 있어도 닿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뜬금없이 내게 떠오르는/나를 떠올려주는 사람이 마음 한편에 있다는 게, 이렇게 위안일 수가 없다.
생각하면서, 사랑한다 되뇌면서, 내일이면 그들을 잊고 일상을 해치울 시간을 떠올리면서, 저문 하늘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