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없는 사람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 말은 사람이 죽었을 때 하는 말이다. 그렇다고 모든 죽음에 이 말을 하면 안 된다. 내 가족이 죽었을 때나 죽음의 원인을 아직 모를 때와 같은 경우에는 명복을 비는 것조차 실례가 될 수 있다. 명계로 일컫는 저승에서 복을 받으라는 말은, 몇몇 상황에 적절치 않기 때문이다. 모든 언어는 상황에 맞게 쓰여야 한다.
비슷한 상투어가 직업군별로 있다. 군인은 무엇 무엇 ‘할 수 있도록 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에는 아주 의아했다. 하라면 하는 거지, 할 수 있도록 하라는 건 또 뭔가? 어쩌면 이미 고압적인 관계여서 말투까지 고압적이기를 피하려는 게 아닐까?
정치권에서는 ‘챙기다’라는 말을 자주 쓴다. 예산도 챙기고 약자의 삶도 챙기고 놓치기 쉬운 정책도 챙기고 자기 호주머니에 비자금도 챙긴다. 챙긴다는 표현은 그 자체로 중의적이고 상황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실로 가장 정치적인 단어라 하겠다.
서비스 직군에서 흔히 쓰는 말은 무엇 무엇 ‘하실게요’다. 하실게요는 할 것이에요의 준말이다. 고객님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할 때, 서비스 제공자는 지시할 수는 없고 단지 요청할 뿐이다. 고객이 응하면 하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다. 그런데 안 하면 서비스의 질이 낮아진다. 지시인 듯 지시 아닌 말이 바로 하실게요다. 내가 하는 게 아니라 고객님이 하시는 거다. 모든 것은 고객의 의지이므로 높임 받아 마땅하다. 그래서 고객에게 가는 음식도 덩달아 높아진다. 고객님,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오실게요-
상투어는 생각을 중지시킨다. 생각은 상투어를 중지시킨다. 생각해보면 상투어는 너무나 이상하고 어색하기 때문이다. 외국어 회화도 일종의 상투어가 아닐까? 영어를 능숙하게 하는 듯이 보이려면 생각하지 않고도 말이 나올 만큼 연습하면 된다. 그래서 외국어 학습은 자전거 타기를 배우는 것과 유사하다. 생각하면 멈추고 쓰러진다. 생각 없이 해야 막힘없이 할 수 있다.
생각 없는 사람들이 각광받는 시대다. 뭐든 능숙하게 보이기만 하면 된다. 알맹이는 안 보이니 필요 없다. 사람들은 그렇게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