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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가출일기, 행복에 관하여


저마다의 기준으로 각자의 세월을 살아내고 있다. 그 세월 속에서 어떤 이는 지는 해를 보는 것이 행복이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슬픔이기도 하다. 행복과 슬픔의 개념은 객관성을 강요하기 어려우며, 저마다의 기준으로 달리 해석하며 살아간다. 내가 이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때로는 그로 인해 홀로 상처받고 힘들어 하기 다반사였다. 


특히 ‘행복’과 관해서 타인의 행복의 기준에 나의 삶을 끼워맞 추려 애쓰다가 괜히 더 울적해지기도 했고, 오히려 불행이라는 감정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내 삶은 유독 다른 이들의 것보다 더 암울하고 힘겹다 느끼며, 셀프 측은지심을 마구마구 발 동시키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에 꽂혔다. 이 말은 좌절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아내는 신비한 마력이 있었다. 100가지의 나쁜 점을 생각하다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마디면 한 가지 내가 값지게 얻은 것을 떠올릴 수 있게 했다. 


“없는 것을 헤아리지 말고 있는 것(받은 것)을 헤아리라.” 


행복해지는 방법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내게 없는 것을 가지려 애쓰지 말고, 나와 다른 이를 비교하려 하지 말고 그저 내게 있는 것 혹은 내가 받은 것 그 자체로 감사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영원히 아플 것이라 생각했던 상처는 조금씩 아물게 되었고, 숨기기 바빴던 나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어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지나온 모든 시간을 열심히 살아냈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해냈다.’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게 결점이라 생각했던 것들을 이야기 하는 것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의 일기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낯선 곳에서 무작정 이골목 저골목을 걷다 보니 잊고 지냈던 내가 생각이 났다. 엉망진창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스무살 시절이 어쩌면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세월을 지내 온 덕에 지금 이 곳에서 콧 노래를 부르며 프라하의 햇살을 즐 기고 있지 않은가. 내가 그리 살아오지 않았다면 이 시간, 이 순간이 소중히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좋고 나쁜 일에 일희일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길고 긴 삶에 그 일들은 그저 어느 하루일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내게 다가올 시련에도 ‘그 덕에 지금이 좋다.’고 말하며 덤덤히 이 겨낼 ‘인생담력’을 키워낸 하루들이라 생각한다. 








인생은 좋았고, 때로는 나빴을 뿐이다.


-소노아야코, 약간의 거리를 둔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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