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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다 보면

엄마의가출일기


일상에서 벗어나 눈 앞에 말도 안되는 풍경을 두고 걷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난다. 호강에 겨운 웃음이기도 하다가 그간 쉬지 않고 달려온 나를 위로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말소리, 흐르는 물소리, 시원한 바람소리를 뒤로하고 이어팟 속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집중했다. 그리고 멍하니 할슈타트 호수를 바라보았다. 잔잔히 흐르는 물에 비친 하늘과 구름, 그리고 산은 나에게 이제 좀 쉬라 말한다. 


살아내기 위해 쉼없이 달려왔다. 스무살에서 서른셋이 되기까지 멈춤없는 직진인생이었다. 자의든 타의든 그렇게 시간을 보 내온 탓에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는 타이틀까지 생겼다. 열정적으로 살아야만 하는 내가 싫다가도 주위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은 좋았다. 그래서일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불안해 하며 늘 무언가를 하며 지냈다. 어떤 이는 뭘 그렇게 욕심을 내 며 인생을 사냐고 묻기도 했다. 적당히 하면 되지 하고지비도 아니고 못해서 안달난 사람 마냥 어떻게 그렇게 사냐고. 그 물음에 썩 마음에 드는 답변을 내 놓은 적이 별로 없다. 어쩌면 솔직하게 말할 수 없어서 알고 있지만 답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부족해 보이는 것이 싫어서 열심히 채워나가야 했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불완전해 보이는 것이 싫어서다. 내 눈에 비친 다른 이들은 완전한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해내는 사람들이었다. 나빼고 다 행복하고 멀쩡하다 생각했다. 내가 그런 사람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공부를 좀 더 잘 하거나, 좋은 직장을 구하거나 탁월하게 일을 잘 해내는 것이었다. 불완전한 나의 가족과 환경은 내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아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최대치로 해내면서 마이너스 요인을 조금씩 지워나가야 했다. 그게 내 자존심을 지키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뭐든 해내다 보면 나의 인생이 조금은 더 나아질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삶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것만큼 멍청한 일은 없다 생각했다. 뭐라도 열심히 하다보면 지금보다는 좋은것이 하나는 더 생기지 않을까 싶었다. ‘나중에 꼭 성공할거야.’라는 다소 모호하지만 용맹한 다짐을 매일같이 해댔다. 성공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성공은 지금보다 나은 것이면 됐던 것 같다. 하물며 하숙집을 벗어나 룸메이트 진아언니와 함께 작은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을 때도 성공했다 생각했고, 언니와 헤어져 낙성대에 작은 원룸을 구했을 때의 그 벅찬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인생은 생각하는대로 굴러간다 하지 않던가. 나쁘든 좋든 삶에 대한 반복적 태도가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든다. 불행이라는 낙인을 찍는 순간 불행의 나락으로 빠지게 된다. 만약 내가 나의 삶은 이렇게 불행하게 끝나버릴거야라는 태도로 일관 했다면 지금 내 인생은 어떻게 흐르고 있을까. 상상하기도 싫다. 뭐든 좋은 것이 하나는 더 생기겠지하는 자기암시로 하루를 보내온 결과, 나는 진짜로 조금 나아졌다. 


그리고 맥주와 소주의 맛을 조금씩 알아갈 때 즈음, 나만 아팠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겉으로 부족함 없이 잘 사는 줄 알았던 친구도, 항상 당당하고 자신감 넘쳤던 선배도 저마다 마음 속 슬픈 우물을 껴안고 살고 있었다. 그걸 왜 술 맛을 알 때 쯤 알았을까 하며 쓴 웃음이 났지만,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겉으로는 부족함이 없어 보여도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결핍과 고통을 가지고 있고, 

최선의 노력으로도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슬픔을 끌어안고 살고 있다. 


- 임경선, 자유로울 것 중에서- 



결핍은 새로운 욕구와 실행력을 만든다. 그 결핍이 지금 나의 책임감, 열정, 행동력 등 강인한 생활력에 필요한 능력치를 올려주었다. 또 ‘신은 내게 견딜 수 있을만큼의 고통을 준다.’ 라는 신념이 나를 버티게 했다. 불안과 걱정에 심장이 기분 나쁘게 두근거리는 순간이 올 때마다 ‘이번 고비도 지난번처럼 잘 지나갈거야.’라며 버티다 보니 굳은 살이 조금씩 생겨났고 담담해졌다. 누군가는 눈물이 더 이상 나지 않으면 이겨낸거라고 말했다. 나는 거기다 맥박이 150에서 100이하로 떨어졌다면 극복해낸 것이라고 덧붙이고 싶다. 


언젠가 위기가 다시 찾아올 것이다. 내일일지 한달 뒤일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슬쩍 그러나 아프게 내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이전에 내가 그래왔던 것처럼 잘 버티다 보면 영광의 상처를 남긴 채 어느덧 지나가고 없을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또 아프고 흔들릴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폭풍이 한번 스쳐지나고 나면 맑은 하늘을 만날 수 있듯, 어느 날 찾아온 나의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다 보면 지금 이곳 할슈타트의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한 날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아니까 괜찮다. 이제.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평온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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