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가출일기
음악의 도시답게 여기저기서 익숙한 리듬이 들려오고, 지나가던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고개를 까딱거리거나 손으로 함께 리듬을 타며 분위기를 즐기는 이들이 많다. 그 중에는 신나는 연주가들 앞에 더 흥이 난 꼬마 아가씨도 있다. 그 아이를 보고 있자니 음악만 나오면 비트에 몸을 싣는 내딸가빈이가 생각난다. 우리 딸은 별명이 참 많다. 캐릭터가 다양한 친구인데, 남들이 보기에 재미있고 사랑스러운면이 많은 만큼 키우는 엄마는 허허허 헛웃음이 나오며 힘이드는 것도 사실이다.
딸 아이의 첫번째 별명은 ‘브로콜리 가빈’이다. 두돌이 다 되어 갈 즈음 창원 막내 고모와 뽀글뽀글 파마머리를 한 이후에 얻은 닉네임이다. 어린 아이에게 무슨 ‘빠마’냐 싶지만, 머리에 착 달라붙는 생머리로는 영~ 스타일이 살지 않아서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사실 아이 아빠는 싱글시절 본인이 미래에 딸을 낳으면 ‘상두야 학교 가자’ 드라마 주인공 차상두의 딸, 차보리 머리를 꼭 해주고 싶었단다. 그래서 돌이 갓 지났을 때부터 미용실에 데리고가자 노래를 불렀다. 나도 더 이상은 그녀의 촌쓰러운 스타일이 감당이 안 되어 변신을 시켜주기로 결심했다. 졸지에 서울 아이 가빈이는 경남 창원 스타일의 빠마머리를 하게 되었다. 고모 손을 잡고 머리를 하러 갔다 3시간 뒤쯤 돌아 온 딸의 모습은 배꼽 빠지게 큰 웃음을 안겨주었다. 동네 아주머니 할머니들 10명 중 8명은 하고 있다는 그 머리였다. 그 날 이후로 딸의 별명은 브로콜리가 되었고, 별명을 유지하기 위해 할머니 제사가 돌아오면 고모와 머리하러 가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그녀의 또 다른 별명은 ‘흥부자 까비니’이다. 누구나 자기 자식이 하는 행동은 다 특별하고, 이 세상의 유일무이한 존재인 것 같다고 느낀다. 두돌 전의 아이 엄마들은 자기 자식이 천재인 것은 아닌지 한번쯤은 의심을 하기도 한다. 나도 그랬다. 돌도 안 된 아이가 어쩜 이렇게 비트를 잘 타는지, 예술과는 1도 상관없는 우리 부부 사이에서 보아를 뛰어넘는 천재 아티스트가 태어난 줄 알았다. 아기상어는 물론이고, 지나가는 길 핸드폰 대리점 앞에서 신나게 흘러나오는 가요에도 반응했다. 최고 젊은이 답게 굽혔다 폈다 무릎은 격한 바운스를 타 댔고, 두손을 짝짝 맞추는 손뼉의 리듬은 찰지게 맞았다. 고개를 까 딱 까딱하는 그녀의 제스쳐는 GD 저리가라했다.
이 세상 엄마와 다를바 없는 나도 딸아이의 흥을 찍어대느라 바빴고, 인스타에 올려 팔로워들의 반응을 살피는 쏠쏠한 재미를 느꼈다. 그녀를 한번 만나본 사람들은 그 흥에 다들 놀랬다. 그 덕에 우리 회사 송년회 행사의 댄스 퀴즈 문제에 섭외 되기도 했다. 아기상어 노래를 배경으로 춤추는 모습을 보고 곡명을 맞추는 것인데, ‘쏘리쏘리’와 ‘노바디’의 포인트 안무를 해내는 딸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야 했다. 나는 그 순간 을 포착하기 위해 1시간 동안 딸 앞에서 춤을 췄는데, 졸지에 엄마가 재롱잔치를 한 셈이다. 우여곡절 끝에 촬영을 끝냈고, 행사 당일 현장 반응은 (내가 생각했을 때) 뜨거웠다. ‘지식의 저주’처럼 알고 보면 쉽지만, 전혀 어떤 노래인지 모르고 보면 맞추기 어려울 것 같았는데 한번에 맞춘 것이 그저 신기했다.
나중에 크면 아이돌이나 시켜야지 했던 딸아이의 춤실력은 두 돌에서 끝이 났다. 4살이 된 그녀의 댄스는 익살스럽다 못해 못춘다. 저스트, 흥만 실려있다. 그래, 추는 사람이 신나면 됐 지싶지만 미래의 보아를 꿈꾼 엄마는 힘이 살짝 빠졌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하지 않는가, 영재발굴단 초등 댄스 신동편을 보고 그 꿈을 확실히 접기로 했다. 1살 동생 앞에서 누나처럼 발레를 해 보라며 ‘나나~~나나나~~~’ 입으로 소리를 내며 손짓발짓 하는 그녀의 모습은, 발레리나가 아니라 태권소녀였다. 매일 밤 동화책을 읽고 난 뒤 동화와 관련된 노래를 듣고 있는데, 그 노래에 맞춰 표현하는 춤도 미안하지만 웃음이 먼저 나온다. 아이돌하기는 그른 것 같고, 가사에 대한 표현력은 훌륭한 것 같으니 배우가 차라리 낫겠다.
그리고 대표 별명이 또 하나 더 있다. ‘입큰 가빈이’. 엄마를 빼닮아 큼직큼직하게 생긴 딸은 그 중에서도 입이 제일 크다. 사진첩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열에 아홉은 턱이 빠질 정도로 크게 벌리고 있다. 그 덕에 또래에 비해 음식을 잘게 자르지 않아도 한 입에 다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울때는 서너배는 더 시끄럽다. 온 힘을 모아 입을 크게 벌리고 목 놓아 우는데, 비주얼 때문에 소리가 더 크게 느껴진다. 가능한 울리지 않는게 상책이다.
캐릭터를 확실하게 굳힌 딸과는 달리, 이제 고작 세상 빛을 본 지 3개월 된 아들은 개성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중력을 무 시한채 축 처진 두눈은 보호본능을 자극한다. 누나가 아무리 밟고 꼬집어도 울지 않고 그윽하게 바라보는 눈빛은 동정심을 유발하기 딱 좋다. 장담하건대, 나중에 여자들의 마음을 꽤나 애닳게 만들 것 같다. 쓰고보니 너무 사심가득한 발언 같다.
아무튼 그 눈빛 덕에 아들의 첫번째 별명은 ‘아련건우’이다. 비슷한 시기에 둘째 아들을 낳은 친구 준영이가 집에 놀러와 건우를 보고 ‘왜 이렇게 아련터지냐’에서 나온 별명이다. 건우의 또 다른 이름은 ‘순딩이’이다. 엄마들 사이에서는 금지어이 기도 한데, ‘순딩이’라고 말하는 순간 아이들이 돌변하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아직까지는 순한 아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신생아때부터 백일이 다 된 지금까지 눈 뜬 시간보다는 눈 감은 시간이 많으며, 분유만 먹고 나면 있는 듯 없는 듯 한 존 재이다. 매주 목요일마다 신기한 한글나라 선생님이 오셔서 딸과 이삼십분 정도 수업을 해주고 계신데, 가실 때마다 이 집에 아기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며 거저 키운다 하신다. 이대로 만 자라다오, 건우야!
그나저나 떨어진지 얼마나 됐다고 똥깡아지들이 보고 싶은 걸까. 볼에 뽀뽀를 마구마구 해대고 싶다. 물론 집으로 돌아가 육아 전쟁터에 다시 뛰어들게 되면 당장 집 밖으로 나가 혼자 있고 싶다 소리칠 테지만 말이다.
6살이 된 가빈이는 엄마 머리 위에서 조근조근 할 말을 다 하는 멋진 누나가 되었고
3살이 된 건우는 아련건우, 순딩이 별명 따위는 모두 던지고 자기가 카봇인줄 알고, 안 되는 행동인 줄 알면서 끝까지 일을 저질러 놓고 '휙~' 던져버리고 도망가기 선수인 개구장이가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눈이 쳐져서 여심을 자극하기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