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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를 마시며 신호등을 건너던 남자를 보았다

먼데이 뭔데이 글쓰기

오늘 아침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돌아오는 길, 집 앞 사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행자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고, 검은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터벅터벅 걸어간다. 방향으로 봤을 때는 문정동 법조단지에 있는 아무개 회사로 향하는 직장인이 틀림없다. 한쪽 어깨에는 크로스 백을 매고, 한 손에는 파아란 낯익은 캔이 보인다. 그리고 이내 보이는 글자는 CASS


내가 잘 못 본 것이 아닐까 하고 다시 한번 유심히 그 남자가 마시고 있는 캔을 들여다보았다. 정지선 첫 줄에 있는 내 차 앞으로 지나가는 그 남자가 마시고 있는 것은 분명 CASS가 맞다. 모닝 맥주, 신선한데? 게다가 신호등을 걸어가며 마시는 맥주라... 이 전에 한 번도 보지 못한 생경한 장면이다. 


짧은 순간, 그 남자가 맥주를 한 모금 마신 후 걸어갈 땐 로고를 가리려고 손으로 캔을 돌리며 애쓰는 모습을 보았다. 신호가 바뀌고 좌회전을 하고 집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B1, B2, B3 돌고 돌아 내려오는 길에도 그 잔상이 지워지지 않는다. 


월요일 아침, 유난히 미세먼지 없이 맑은 하늘.
살랑살랑 부는 시원한 바람은 청량하기까지 하다. 마치 맥주 한 모금을 꿀꺽 삼키고 '캬-'하는 소리를 내뱉은 후의 기분이랄까. 그런데 그에게는 오늘의 아침이 그래 보이지 않았다. (그 청량감을 느끼려 맥주를 소환한 것 같지는 않았다...) 맥주를 벌컥 마시며 걸어가던 남자의 얼굴과 발걸음에서 오늘이 월요일이라는 사실은 마치 지옥처럼 보였다. 채워지지 않은 셔츠 단추와, 정돈되지 않은 셔츠 칼라, 헝클어진 머리와 손에 들린 맥주는 남자의 심리상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어떤 일을 하며, 몇 살이고 이름이 뭔지도 모르는 한 남자의 출근길 풍경이 오늘 아침 굉장히 인상 깊었다. 모든 에너지가 '나 힘들어요'를 가리키고 있는 한 남자. 그렇게 티를 내도 뭔가 해결점을 찾고 있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의 주변은 어떨지 또 내 가족은 어떤지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었다. 


그런데 또 어쩌면 저 남자는 출근길에 몰래 마신 맥주 한 캔으로 온갖 잡념을 흘려보내고,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되면 카스가 에너지 음료가 되는 것인가?


갑자기 궁금해진다. 
여러 감정이 일렁이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할 때

내 감정의 한계치가 왔을 때 

나는 어떤 시그널을 보내고, 어떻게 풀어내는지.

내 남편은? 우리 딸과 아들은? 그리고 나의 동료들은? 


몇몇의 장면이 떠오른다. 
감정의 한계선을 넘쳤을 때 나도 모르게 나왔던 나쁜 행동들이. 

어쩌면 오늘 아침의 남자처럼, 일탈하듯 전혀 내가 하지 않을 것 같은 행동으로 해소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않을까... (물론, 음주 업무 시작은 굉장히 나쁜 일입니다. 행동의 형식을 말하는 겁니다...! ㅋ)



*사진은 그 남자의 하루에도 흐림이 걷히고, 맑은 하늘과 함께 무지개가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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