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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천히바람 Apr 03. 2024

제주욕망일지 2

my 1st novel - 소설입니다.

개에게 쫓긴 적이 두 번 있다. 초등학교 입학 전, 아주 작은 개에게 쫓겼는데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작은 개가 애를 쫓으니 귀여워서 아무도 구해주지 않고 재밌다고 웃었다. 하지만 아이였던 나는 너무 놀라서 울면서 달렸고 그 후로 트라우마가 생겼다. 그리고 인적 드문 제주 따라비오름에서 멧돼지인지 사냥개인지 모를 정도의 들개와 1대 1로 대치한 적이 있었다.  저 멀리서 나를 향해 달려오는 개를 보고 가만히 멈췄다. 오로지 등을 보이거나 큰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제주에는 무리 지어 다니는 들개들이 적지 않다. 들개에게 물리면 제주시에서 보험처리를 해준다고 들었다. 10년 간다는 파상풍 주사도 맞았다.


그러나 살아보니 역시 개보다 무서운 것은 사람이었다. 땅을 팔면서 집도 자기가 짓는다는 계약서를 썼던 토지주이자 시행자이며 신용불량자였던 파도 파도 새어 나오는 거짓말의 주인공인 할아버지는 본인의 거짓이 들키자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었다. 수차례 내용증명을 보내 마감과 준공을 요구하였으나 당연히 소용이 없었다. 마감이 안 된 주택을 초짜이자 건축업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속이기 딱 적당한 우리 부부가 우리 돈을 써가며 어찌어찌 마감을 하였다. 여기저기 하자를 손보느라 인내심의 바닥과 육지인의 제주살이의 설움을 알아가면서 나의 한계와 부족함을 똑똑히 보았다. 생각보다 나는 인내심도 깊지 않고 시련에 맞서는 용기도 특출 나지 않았다. 하느님은 왜 나를 이런 시련에 집어넣었는지 궁금해하기도 싫었다. 집 짓다가 십 년 늙는 것은 기본이고 굳이 안 봐도 알지 않아도 되는 사람을 알게 되어 인간에 대한 신뢰가 사라져 갔다.


마을에 땅을 소개한 사람과 땅을 사람과 땅을 사람이 서로 쌩까며 함께 살았다. 자연은 공평하게 비도 벌레도 이 집 저 집 가리지 않고 오가지만 사람은 절대 넘어오면 안 되는 경계선을 분명히 그었다. 태어나서 이런 적은 처음이다. 문만 닫으면 상관없는 아파트도 아니고 지나다니는 도로가 하나뿐인 마을에서 서로 인사도 없이 지냈다. 물론 마음이 편치는 않았으나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건축현장에서는 돈이 소금물과 같아서 마셔도 마셔도 갈증이 나는 모양이다. 몇 천 원짜리 자재를 사 와서 몇 십만 원을 불렀다. 일, 이천만 원은 돈이 아니었다. 얼마간의 사기를 당하는 것은 기본이라 생각해야 마음이 편했다.


이주민 모임에 가보았더니 여기도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그들도 나처럼 정보나 될거리나 일자리에 보탬이 것을 기대하며 모임에 기웃거렸다. 물론 원하는 것을 얻어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외로운 섬 같았다.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흘러 흘러 여기까지 온 것 같았다. 고통받은 곳에서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다시 시작해 보려고 기대 반 이미 알고 있는 실패의 느낌 반으로. 그들 중 유별나게 목소리가 크고 화를 잘 내던 한 사람은 이듬해 부고가 들렸다. 뙤약볕에 애써 일구던 남겨진 흔적들이 내게는 열심히 사는 것에 대한 의문을 품게 했다.


코로나로 격리된 생활을 할 무렵 우리 동네에도 부고가 들렸다. 노년을 농사나 지으며 편안하게 살려고 조용한 촌동네에 왔다고 했었다. 그래놓고 쓸 돈이 있는 노년에도 돈벌이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을 더 많이 보았다. 노욕이라는 말의 거부는 아직 생이 많이 남았다는 착각에서 비롯되었다. 책을 읽는다고 하면 돈을 벌어야지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말을 면전에서 서슴없이 하는 사람도 만났다. 책이 밥 먹여 주냐는 말이 그에게는 확고한 진리이니 뭐라 말한 들 소용이 없다.


돈에 대한 집요한 욕망을 이리 가까이서 보면서 정신을 차려야 했다. 십억이라는 돈을 껌값으로 얘기하며 땅을 사라고 부추기는 사기꾼도 보았다. 예전에는 서울로 대학 가서 대기업 다니는 친척이 부러웠는데 지금은 제주 땅값이 올라서 땅가진 사람이 더 부자라 서울친척 부럽지 않다는 원주민 아주머니의 당당함에서 세상이 변했음을 실감했다. 대기업 퇴직금 해봐야 십억도 안되는데 평당 백만원 넘는 땅이 만평이 넘는다고 하니 아주머니의 그 오만한 당당함이 이해가 되었다. 그간 배운 동서들에게 당했던 무시와 서러움과 고생이 땅값으로 보상받았다. 그러나 그분은 땅을 팔기 전에는 여전히 밤에도 식당알바를 다니시겠지. 정작 본인은 쓰지도 못하고 땅값이 주는 당당함과 뿌듯함만 가지고 기회가 닿으면 계속 자랑을 하시겠지. 그분의 자식들은 물론 수도권에 살고 있다.


마을에 이사 온 도시아주머니 집에 차 한잔 마시러 갔다. 코펜하겐이라는  비싼 그릇에 다과를 주어 그릇 칭찬을 했더니 커피가 얼마나 고급원두인지 알려주었다. 그래봤자 만평 넘는 땅을 가진 원주민에게 우리는 도시의 가난뱅이에 불과함을 알려주고 싶었다. 여기 사람들이 더 더 부자예요. 어느 날 도시에서 온 그분이 남의 땅에 음식물 쓰레기를 파묻고 있다 민망하게 나와 마주쳤다.


나이와 철듦은 글쎄 상관이 있을까? 경험의 축적이 고른 성장이 아닌 한 방향의 편향으로 가는 것이 더 정확한 것 같다. 그래서 잘 살다 죽은 사람의 책이 크나큰 위로를 준다. 잘 살다가 죽은 사람을 아는 것, 그리고 그 사람처럼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 내게는 인간에게 겪는 파상풍 예방주사이다. 또 비가 오는 오늘은 헤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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