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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천히바람 Jan 09. 2024

독학으로 심리학 공부 19

구스타프 융 알아가기

은 <기억, 꿈, 사상>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면의 형상을 찾던 그 시기는 내 인생에서 최고로 중요한 시기였다. 그 시기야말로 중요한 모든 것들이 결정되는 시간이었다."

청년기가 사회와 가족 안에서 자신의 '외적인 형상'을 찾아가는 시기라면, 중년기는 자신의 삶에서 '내면의 형상'을 찾는 시기다. 이 '내면의 형상'을 찾는 데 실패하면, 삶은 세속적인 성공이나 물질적인 이득만을 향해 치닫거나 돌이킬 수 없는 타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정여울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구스타프 융도 나를 모르듯 나도 그를 모른다. 몰라도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프로이트는 너무 자주 들어서 예전에 살던 똑똑한 동네 아저씨 같은데 융은 프로이트랑 붙어 다니다 관계가 깨진  아저씨라고만 들었지 잘 모른다. 그런데  융이 이런 글을 썼다고 하니 이 아저씨가 더 괜찮은 것 같다. 자서전을 읽고 내 기준에서 괜찮은 사람이 맞는탐구해 봐야겠다.


프로이트 아저씨는 전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때문에 지금의 내가 이렇다고 얘기한다. 듣고 보면 그런 것도 같다. 내가 말도 못 알아먹던 어린 시절에 역시 어른 초짜였던 부모님이 프로이트 아저씨가 누군지도 모르고 두 분 싸우기 바빠서 내 무의식에 의도치 않게 상처를 준 것이 많다. 


그래서 엄마에게 내 무의식의 상처가 이렇게 깊다고 얘기하면 엄마가 '그래 미안하다'라고 잘도 얘기하겠다. 나이가 몇인데 그러냐고 욕이나 먹을 것이 분명하다. 그 뒤에는 본인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와 자식들 키워봤자 소용없음의 구구절절 서운함을 눈물로 표현하며 마무리 지을 것이다. 차라리 무덤에 계신 아버지께 혼자 독백을 하는 게 나을 것이다.


어찌할 수 없던 어린 시절은 분명 났다. 꿈같은 청춘도 지나갔고 결혼도 해버렸고 자녀도 다 키웠다. 나 또한 내 감정을 절제하며 그 아이들을 키웠다고 당당히 말할 수는 없다. 그들은 더 이상  내 말을 경청하지 않고 이미 내가 부족함을 알고 있다. 아이들에 대한 의무가 사라지고 딱히 크게 내세울 일도 없는데 수명은 이론적으로 아주 길어졌다. 그러니 프로이트만 믿다가는 살 날이 큰 일이다. 합리적 대안이 있어야 한다.


융 아저씨 말을 차분히 들어보는 게 나을 것 같다. 기억도 안나는 유아기 타령을 지금까지 해봤자 내게 득 될 것은 없고, 년기에는 내 탓이 더 크다. 물론 좋은 어른에게 가르침 받을 기회가 있었으면 더 나은 선택과 조언을  얻었겠지만 그런 행운은 없었다. 나이 들어가 어른들도 그 시절 살아내느라 힘들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젊을 때는 분주하고 부산스럽기만 했지 현실적이지도 않았고 서툴렀으며 듣고 싶은 것만 들었다. 설령 좋은 기회가 있어도 그것을 보는 안목이 없었기 때문에 삶에 대한 불만의 원인은 탓이 먼저다.


그리고 이제는 중년이다. 그러니 누구 탓도 못하고 해서도 안된다. 부모탓, 남편 탓 이런 것만 하며 남은 몇십 년을 날리기는 싫다. 아주 싫다. 그래서 책을 읽고 또 읽고 공부 중이다. 온전한 내 시간, 온전한 내 의지로 살아낼 수 있는 이 소중한 시간에 더불어 지력과 체력이 남아있는 지금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먹고살 수 있는 노후가 아닌 어떤 생각으로 어떤 시간을 누구와 어떻게 보내면서 남은 삶을 살아 잘 마무리하고 떠날 것인지가 당면한 숙제이고 잘하고 싶다.


당연히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사람들이 건강해야 함께 하는 삶을 꿈꿀 수 있지만 이건 내 의지와 상관없다. 자유의지라는 어려운 단어를 빌어 내가 실천할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첫째는 꾸준한 독서이다. 이건 습관이므로 잘할 자신이 있다. 둘째는 늘 부족한 운동을 꾸준히 하려고 한다. 오랫동안 방안에만 갇혀 살기 싫다. 건강한 두 다리로 계속 움직이고 싶다. 셋째, 건강한 먹거리 실천이다. 입에 달달한 것들을 멀리 하고 몸이 원하는 건강한 먹거리를 준비한다. 식물을 키워보니 먹거리가 왜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마지막은 인간관계에 대한 정리와 확장이다. 정리는 불필요한 모임, 쓸데없이 에너지를 뺏는 사람과의 정리이다. 확장은 깊이이다. 새로운 누군가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알고 맺어온 좋은 사람들과 서로 격려하고 배울 점을 나누며 더 깊은 인연을 확장하는 것이다. 그 중간쯤 있는 사람들과는 적절히 잘 지낼 것이다. 여기서 그만, 당연히 의지박약에 가까운 나는 이 정도가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운동 중이다. 물론 당근주스도 한 컵 마셨다. 제일 중요한 건 오늘도 내가 걱정 없이 살아서 움직인다는 것에 대한 진심 어린 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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