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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천히바람 Mar 03. 2024

왜 불안했을까?

제대로 살아가기 2

 

"나에게는 불안감이 늘 문제가 되었고, 특히 직장에서 그랬습니다. 일을 잘 못하거나 신속히 처리하지 못할 거라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험담하고 다른 사람들만큼 민첩하거나 유능하지 못해 해고될 거라는 느낌이 나를 괴롭혔습니다. 직장을 잃으면 가족을 어떻게 먹여 살리지? 식탁에 음식을 어떻게 올리지? 이런 생각들이 끊임없이 계속되다가 마침내는 깡통을 앞에 놓고 한 푼 구걸하며 길거리에서 노숙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까지 밀려왔습니다.


나 자신을 진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터널 끝 한 줄기 빛'을 발견하는 일이었습니다. 상황이 바뀌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말입니다. 새로운 직장을 구하면 많은 업무를 요구받지도 않고 압박감도 줄어들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새 상사가 생기든지 아니면 나를 험담하는 사람들 모두 해고될 것이라고.


그 후 나는 내 불안감을 직접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문제는 직업이 아니라 내 직업에 대해 나 스스로 갖고 있는 생각들임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터널 끝 한 줄기 빛'을 찾는 것은 두려움의 반대편, 즉 환경의 변화가 나를 공포로부터 구원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차츰 희망과 두려움 역시 내 마음에서 떠다니는 생각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그것들은 직업 그 자체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습니다.


그 순간, 내가 찾고 있는 빛이 곧 터널이고 나를 가두고 있다고 느낀 터널이 곧 빛이라는 진실을 깨달았습니다. 둘 사이의 유일한 차이점은 나의 관점이었습니다. 즉 내가 나의 상황을 바라보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었습니다.



- 티베트의 즐거운 지혜, 욘게이 밍규르 린포체 -




'린포체'란 티베트 말로 '소중한 이'라는 뜻인데, 전생의 업을 이어가기 위해 환생한 티베트 불가의 고승으로 전생에 깨우친 분이 환생하면 린포체라 한다고 한다. 욘게이 밍규르 린포체는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별칭을 가진 명상 스승이다. 그가 캐나다 여행 중에 만난 한 사람이 그에게 위와 같은 이야기를 했다. 세상에 내 이야기를 캐나다 사람의 입으로 듣다니. 세상 어디든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편하게 회사 가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젊은 날 왜 그렇게 회사 가기가 싫었는지 지금도 그때의 불안했던 내 마음이 느껴진다.


일요일 저녁이면 내일 다시 회사에 간다는 생각에 힘이 빠지고 우울하고 허무하고 슬펐다. 언제까지 다녀야 할까? 그만두면 어떻게 살지? 어제 인사를 안 받아준 동료는 나를 싫어하는 걸까? 온갖 쓸데없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서서히 불안해졌다. 그 불안이 구체적인 형태를 띠며 차츰 공포로 바뀌었다. '그래, 분명 그 직원은 나랑 안 맞아. 나도 내일 인사하지 말아야지' 결심하며 일어나지 않을 일들에 대책을 세웠다.  


시험공부를 할 때도 모르는 문제만 나올 것 같았다. 책을 볼수록 더 불안했다. 막상 시험지를 받으면 다 기억나는 내용을 시험 치기 전에는 기억이 안 나면 어떡하나 전전긍긍했다. 모를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직장을 그만두고 살림을 해보니 의외로 걱정만큼 돈이 들지 않았다. 사 먹는 음식을 해 먹는 음식으로 바꾸고 정리정돈을 하면서 불필요한 것을 구매하지 않고 살림의 규모를 파악하자 맞벌이가 아니어도 살아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아이를 돌보고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는 것은 돈을 버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이 값진 경험이었다.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릇된 강박이 쓸데없는 걱정을 이끌었고 내 인지체계에 오류가 더 있음을 인정하자 불안은 약해지기 시작했다. 막상 당해보니 별일도 아닌 것이었다.


나는 왜 불안했을까?


내게 맡겨진 일은 무엇이든 잘 해내야 하는 줄 알았다. 자식, 아내, 며느리, 직장인, 그리고 엄마로서의 그 많은 역할을 모두 잘, 훌륭히 해내어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제대로 못해서 다른 사람한테 지적당하고 싫은 소리 들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말 좀 들어도 세상 살아가는 데 별 지장이 없었다. 왜 그걸 못 참고 다 잘하려고 스스로에게 짐을 지웠을까? 싫으면 싫다, 과하게 요구하면 못한다고 했어야 했다. 과한 부담을 스스로에게 지우고 해내려고 안감힘을 쓰니 당연히 나를 극한으로 몰아붙여야 했다. 내 마음은 이미 내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내가 인정을 하지 않으니 당연히 불안하지 않았을까?


올림픽에 나가면 금메달도 있고 동메달도 있다. 전 세계 3등인 동메달도 정말 대단한데 예전 우리나라 선수들은 동메달을 받고도 웃지 않았다. 요즘 우리 젊은 선수들은 동메달 따고도 활짝 웃는다. 너무 아름답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은 좋지 않다. 나는 삶에서 금메달을 따야만 하는 줄 알았다. 참여만 해도 즐거운 기억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른 채 무조건 금메달에만 목숨을 걸었으니 못 따면 어떡하지란 불안이 항상 내 안에 존재했던 것이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을 보고 나를 닦달했다. 나보다 정신적으로 행복한 사람을 보아야 했다. 


행복은 내가 어떤 관점에 눈을 돌리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요즘의 나는 덜 예민하고 사소한 일에 웃으며 긍정적인 사람 곁에 있고 싶다.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행복한 순간의 횟수이자 모음집인 것 같다. 힘들고 불행한 일은 어쩔 수 없이 우리 삶에 존재한다.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순간에도 통제할 수 없는 것들만 생각하며 걱정과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것보다 지금 별일 없는 이 순간에 감사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단지 내 마음의 선택일 뿐이다. 나는 행복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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