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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천히바람 Mar 08. 2024

관광객이 아닌 순례자로  

제대로 살아가기 3

불행하게도 외부의 원천으로부터 얻는 기쁨이 가진 문제는 그것이 본래 일시적이라는 점이다. 일단 그 기쁨이 점점 옅어지고 일상의 상태로 돌아가면 예전과 비교되어 더 견디기 어려운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다른 관계, 다른 직장, 다른 물건들에게서 기쁨을 찾기 시작한다.


'변화의 고통'은 실제로는 손에 넣을 수도 없는 영원히 지속되는 '황홀감'을 찾아 끝없이 헤매는 일종의 중독이다. '황홀감'은 뇌의 화학물질인 도파민의 분비와 특히 관계가 있다. 도파민은 기쁨의 감정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의 뇌와 몸은 도파민의 생성을 자극하는 활동이 반복되기를 원한다. 말 그대로 기대감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티베트 불교 경전에서는 이 중독성 있는 행동을 '면도칼에 묻은 꿀 핥아먹기' 비유한다. 처음의 기분은 달콤하지만 뒤따르는 결과는 매우 해롭다. 다른 사람에게서 혹은 바깥의 사물과 사건에서 만족을 찾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은 전혀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는 깊고 무의식적인 믿음을 강화시킨다.


티베트의 즐거운 지혜 - 욘게이 밍규르 린포체



"수림아, 어떤 사람이 어른인지 아니?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이야."


낙천적이고 성숙하며 생활지능이 높아 세상을 잘 헤쳐 나갈 것으로 기대되는 16세 오수림은 철없는 부모덕에 외할아버지의 여자친구인 순례씨에게 맡겨져 제대로 잘 키워진다. 이기적인 엄마가 키운 언니, 17세 오미림은 성적과 시험에만 신경 쓰며 자기밖에 모른다. 금방 드라이클리닝을 하고 배달된 옷 냄새를 제일 좋아하고 수능에 나올 법한 것만 제대로 읽는 생활지능은 형편없는 이기주의자다.


하루 만에 읽은 <순례주택>은 가슴이 따뜻해지고 마음울 착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 세상에 여행자가 아니라 순례자로 살고자 하는 75세 중학교 중퇴자 순례씨는 때밀이를 해 번 돈으로 건물을 올렸다. 시세에 신경 쓰지 않고 세입자를 받기 때문에 순례주택에 들어가기는 많이 어렵다. 물론 가상의 인물인 건물주 순례씨이지만 모처럼 알게 된 진정한 어른이었다. 순례씨는 내가 순례자의 마음으로 지구의 시간을 보내리라 다짐하도록 격려했다. 관광온 사람들은 요구사항이 많다. 자신의 시간과 돈이 낭비되지 않도록 맛집에 줄을 서고 관광지 하나라도 더 가서 사진을 남기고자 한다. 사진을 찍어 간 곳을 증명하는 것만이 유일한 여행의 목적인 것처럼 관광객들은 음식을 앞에 두고 사진부터 찍는다. 


하지만 순례자는 그렇지 않다. 많은 곳을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먹은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옆의 사람과 속도로 경쟁하지 않는다. 침묵과 사색이 따르는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 다음 목적지까지 담담하게 그냥 갈 뿐이다.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 궁금하면 이제 순례하러 왔다고 생각해 보기로 했다. 묵묵히 가다 보면 어렴풋이 이유를 알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리라. 순례자는 장소를 존중할 줄 안다. 다른 것에 겸손하다. 제주에 살다 보면 관광객들을 많이 본다. 사진에서는 몹시 즐거워 보이지만 대부분 사진 찍는 순간만 함께 행복해 보인다. 부산하고 정신없다. 하나라도 손해보지 않으려 바짝 신경 쓰는 티가 역력하다.


어떻게 것인가? 누구처럼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보고 배울 어른을 보고 방식을 따라 사는 것이 예전의 방식이었다. 나이 들수록 점잖게 변하는 어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요즘은 돈 많이 번 사람, 돈 버는 방법을 얘기해 주는 나이 든 사람만이 노인 어른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돈이 없고 좋은 차를 몰지 않고 비싼 아파트에 살지 않으면  괜찮은 어른으로 주장하기 힘든 세상이 되어 버렸다. 이런 시답잖은 얘기가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다. 지혜롭게 삶을 마무리하는 어른이 되기를 포기하고 고집 센 노인이 되어 젊은이와 싸우는 노인이 늘어나고 있다.


지하철에서 한 할머니가 본인은 애국운동을 한다며 옆사람이 묻지도 않았는데 혼자 정치 얘기를 떠들었다. 나라를 위해 주말마다 집회를 하러 간다고 했다. 너무 시끄러웠다. 지하철은 공공장소이다. 내게는 애국운동이 아니라 자식들과 관계가 좋지 않아 화풀이를 하러 싸울 곳을 찾아다니는 것으로 보였다. 듣는 사람은 고려하지 않고 내 이야기만 하는 그런 어른들, 오직 출세가 우선이라고 가르친 우리, 이 두 세대가 미래 세대를 살아갈 아이들을 키웠다. 본보기를 보이지 못했으니 일부 아이들의 됨됨이가 사회문제를 일으킨다. 목소리 크고 이 있고 돈이 많아야 뭐든 할 수 있는 세상이라고 가르쳤더니 세상이 그리 되어 버렸다.


순례씨는 남을 속이지 않고 쓰레기 줄이는 법과 돈을 가지지 않고 잘 쓰려고 애쓴다. 오랜만에 만난 아름다운 순례씨처럼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알고 됨됨이 있고 아름답게 나이 들도록 부단히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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