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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천히바람 Mar 29. 2024

여행이 그립지 않은 이유

특히나 오래전, 외국에서

외국어로 쓰인 책을 읽는 것은

최대한 멀리,

멀리 떠나는 여행이 아닐까.


먼 거리, 긴 시간을 건너 나에게 온,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원래의 언어를

지금 읽는 단어들 아래 감춘 후에야

마주할 수 있는 책들


 퇴근길엔 카프카를 - 의외의 사실




제주에 중국인이 몰려온다는 뉴스를 들었다. 도민들은 일상의 공간에서 여행의 기쁨에 들뜬 관광객을 자주 만난다. 목욕탕에서 거리에서 들뜬 기분에 잠시 예의를 잃어버린 관광객을 일상의 공간에서 만나면 다소 불편할 때도 있다.


자주, 쉽게 여행객을 보면서 여행에 대한 로망이 사라진다. 새 옷 입고 사진, 장소가 바뀌어도 사진, 먹는 것도 사진을 찍느라 바쁜 사람들. 찍은 사진을 엄선하느라 일행과의 대화도 없이 각자 바쁘다.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는 부모들의 조바심과 협조를 하지 않는 아이들, 사소한 말다툼을 하는 부부들은 현실보다 사진에서 더 행복한 것 같다


나는 가족과 여행을 가서 아주 즐거한 기억이 없다. 계획 단계에서부터 혼자 준비하느라 피곤하고 길을 잘못 들어 잘잘못을 따지느라 감정낭비하다 진이 빠져 호텔 도착 전부터 집에 돌아가자며 싸운 기억, 꼭 누구 한 명은 아무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내고 남 탓을 하였다. 돈은 돈대로 독박으로 쓰고 몸과 마음은 피곤했다. 내 집 아닌 곳에 가면 본전생각이 나서 느긋하게 즐기기보다 알차게 보낸다는 명목하에 무리한 일정을 강행했으니 힘들어서 무엇을 즐기고 보았는지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면서 가족 여행은 사라졌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가고 싶은 사람과 각자의 돈으로 알아서 여행을 다녔고 나는 여행을 즐기지 않는다. 보고 싶은 것도 가보고 싶은 곳도 딱히 없으며 잠자리 바뀌는 것도 달갑지 않다.


오히려 외국이든 국내든 원하는 작가의 책을 읽으면 여행보다 더 마음이 설레고 편안하다. 작가의 공간에 초대받은 여행을 온 것 같다. 다른 장소와 환경에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과 그들의 고민과 소소한 일상에 포커스를 맞추고 읽다 보면 어느새 이방인이 아닌 그들의 친밀한 이웃이 되는 착각이 든다.



어느 소설가의 가장 많이 알려진 소설을 읽고

덜 알려진 책들도 읽고

또 사적인 글들도 찾아 읽으며

그 사람을 오랫동안 알아 온 기분을 느낀다.


읽은 책의 내용 속에는

책을 읽은 순간이 각인되어 있다.


퇴근길엔 카프카를 - 의외의 사실



오래전부터 책을 읽는 것이 나에겐 여행을 대신했다. 시간과 공간과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고 준비하는 수고와 동반자에 대한 걱정이 없는 편안한 여행. 특히 비 오는 아침은 작가와 둘이 앉아 차를 마시는 기분이다. 달달한 커피와 블루투스로 연결한 차분한 음악을 켜면 마치 작가가 내 앞에서 자기 글이 어떠냐고 묻고 경청하는 느낌이다. 편하면서도 정신이 고급지게 변하는 조용한 대화를 나누는 느낌은 이 여행의 가장 값진 부분이다.

오늘 아침은 버지니아 울프네로 갔다. 이름만으로도 거창한 그녀의 집에 가서 그녀가 고뇌하면서도 써 내려간 책들을 이해하려고 시도했다. 너무 어렵다. 그렇지만 그녀가 남편에게 쓴 편지는 이해가 되었다. 남편의 삶까지 망치고 싶지 않은 그녀의 결정을 이해하려면 더 깊게 그녀를 알아가야 하겠지만 다음에 또 그녀에게로의 여행을 계획하면 될 일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생을 마감했던 1941년 그녀가 남편인 레너드에게 쓴 편지를 찬찬히 다시 읽어본다.


"내 삶의 모든 행복에 대해서

당신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당신은 완벽한 인내심을 가지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제게 잘해 주셨어요.

누구나 그 사실을 안다는 것도 말해 두고 싶어요.

만약에 누군가가 저를 구원할 수 있었다면

 그건 아마 당신이었겠지요. 다른 모든 것이

저에게서 떠나가던 순간에도 

당신의 신의에 대한 확신만큼은

남아 있었답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당신의 삶까지 망칠 수가 없어요.

우리보다 행복했던 두 사람은

다시없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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