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어
라는 말이 있다.
"됐어. 싫으면 하지마."
"화 안 났어."
"다 좋아."
여자가 하는 이런 류의 말들은
보통 반대로 해석하면 된다.
나도 남편에게 여자어를 종종 쓴다. '그렇게 행동하면 죽여버릴 거야' 라고 내심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그래'라고 한다던지, 마음에 들지 않는 남편의 선택에 말로는 OK를 하면서 왠지 모르게 퉁퉁거린다던지. 나를 안 지 15년이 넘은 남편은 영 눈치가 없는 편이라 이쯤 되면 속뜻을 알아챌 법도 한데 여전히 답답 미지근하다. 그런 우리 사이에서 변한 건 내 쪽이다. 이제 나는 뭉근히 에둘러서 말하는 대신 직설적으로 Yes or No를 말한다.
여자도 해석이 어려운 모모의 여자어
그런 내게도 도통 해석이 어려운 여자가 있다. 네 마리의 고양이와 두 마리(?)의 사람이 있는 우리 집은 성비 또한 4:2로 동일한데 페르시안 고양이 모모와 내가 여성(女性)이다. 모모를 데리고 처음 동물병원에 갔을 때, 접수처에서 모모를 보자 마자 '여자 아이네요'하며 알아봤던 것에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그 때는 무척 놀라고 신기했는데 지금 모모와 다른 세 마리의 고양이를 보니 알 만 하다.
모모는 작다. 얼굴도 몸도 남자 아이들에 비해 작고, 목소리는 가늘고 애처롭다. 네 마리가 동시에 놀 땐 땀내 풍기며 몸싸움에 끼는 대신 놀이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자못 나는 저 짐승들과는 다르다는 듯. 걸을 때의 뒷모습은 꼭 하이힐을 신은 아가씨같다. 까만 젤리를 바닥에 통통 튕기며 사뿐사뿐 걷는데, 미안하지만 퉁퉁 부은 안짱다리로 뒤뚱뒤뚱 걷는 고양이 R과는 천지 차이다.
의사 표현도 뭔가 다르다. 첫째 쿤이는 정확하게 원하는 것을 짚어서 말해준다. 고양이를 대상으로 '정확히 짚는다'는 것이 어불성설 같기도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예를 들면 사료 그릇이 비었을 때 그 앞에서 운다던지, 금묘구역인 옷방 문 앞에서 운다던지 하는 식이다. '어머 밥이 없네.' '안 돼. 거긴 못 들어가.' 하며 대화도 된다.
그런데 모모의 대화 방식은 완전히 여자어 그 자체다. 보통 우리 집 고양이들이 낮잠을 곤히 자는 늦은 오후 모모는 뜬금 없이 잠에서 깨어 거실을, 안방을, 작은 방을 순방하며 울음을 뱉는다. 여기서 애옹, 저기서 애옹. 듣다 듣다 '왜 모모야' 하고 쫓아 나가면 '우애애애애앵ㅇㅇㅇ'하며 도망을 친다. 2미터 정도 거리를 벌린 뒤에 멈춰 서서 고개를 돌리고 다시 작은 입을 벌린다.
'애옹'
유명한 수의사 선생님이 고양이가 자꾸 울 땐 무시를 해야 버릇을 고친다 그랬는데. 내가 한두 번 이 애옹울음에 장단을 맞춰줬더니 녀석이 오후 4시만 되면 우애옹 놀이를 시작했다. 모모는 양치기 소녀처럼 울음 소리로 나를 몰고, 나는 모모를 조르르 쫓아 나간다. 옆에서 보면 어처구니 없는 이 와리가리를 몇 번 반복하고 나면 그녀는 짐짓 만족한듯 다시 평온을 되찾는다. 아! 알았다. 완벽하게 이해하고 알아주지 않아도 돼. 알아주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한 거구나. 고양이의 여자어도 사람과 똑같다는 걸 깨달았다.
남자 밝히는 여자 고양이
한 때는 이 고양이가 나를 따르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고민했다. 요즘은 그래도 내 부름에 제법 야물딱지게 대답을 해주는 편인데, 작년까지만 해도 모모의 편애는 꽤 심했다. 집사 둘이 밥을 먹을 때 모모는 항상 아빠 옆에 앉아 아빠를 바라 보며 게슴츠레 눈을 뜨고 고르릉 고르릉 혼자 즐거워 했다. 그 모습이 얄미워 밥 먹다 말고 내가 '모모! 모모!' 하고 밥알을 튀긴 게 수 차례. 10번에 3번 정도 내 곁으로 자리를 옮길까 말까인데 그 마저도 질투와 소유욕으로 꽁꽁 찬 남편은 허락치 않았다.
'모모~ 이리 와'
'모모~ 안 갈 거지~ 아빠가 더 좋지~'
X10
식탁 대전에서의 승자는 대부분 남편이었다. 물론 그 때 내게는 모모 외에도 고양이가 두 마리나 더 있었기 때문에 이런 애정 쏠림 현상이 특별히 서운하다거나 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근 4년이란 긴 시간 동안 수컷 고양이들에게 시기와 질투를 쏟아낸 남편이었기에 한편으로는 그를 일편단심 사랑해주는 모모에게 고마운 마음이 내심 더 컸다. 모모로 인해 그가 더이상 수컷 고양이들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으므로.
그러나 여전히 '고양이 주제에' 이토록 사람을 가릴 수 있다는 게 신기해서 나는 그 이유를 되짚어보려 한다. 아주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모모가 우리 집에 온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로. 그녀는 제법 나를 잘 따랐다. 당시 프랑스자수라는 어울리지 않는 취미를 즐기던 내가 자수를 하고 있으면 모모는 내 무릎 위나 내 옆에서 곤히 잠을 잤다. 그 때 모모의 애정 순위를 돌이켜 보면 대략 이렇다.
리찌 오빠 > 옹마미 > 옹부지 > 무서운 회색 고양이
집사들보다 살뜰히 핥아주고 기꺼이 제 한 몸 바쳐 베개가 되어주는 리찌가 부동의 1위인 것은 그렇다 치고, 내 순위가 밀린 건 아마 모모의 중성화 수술 시점부터인 것으로 추정된다. 중성화 수술 날짜를 예약하고 기다리는 동안 모모에게는 두세 차례의 발정 증세가 왔다 갔다. 엉엉 울면서 바닥을 기어다니는 모습이 보기 힘들어 따뜻하게 뎁혀 놓은 방에 쿠션을 두고 문을 닫아 두었는데 그게 어쩌면 모모에게는 '방치'와 '외면'으로 느껴졌을지도.
아니, 그게 아닌가. 단지 어떤 사건 하나 때문이 아닐지도 몰라. 생각해 보니 수술을 하는 동안 더 안절부절하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것도, 매일 다른 고양이 보다 '모모'를 가장 먼저 찾은 것도, 모모를 더 많이 만져준 것도 남편이었네. 그 동안 리찌를 옆에 끼고 물고 빨고 하는 만큼 나는 모모를 많이 만져주지도 않았잖아. 게다가 모모가 아프기라도 하면 약을 먹이고 괴롭게 하는 건 또 나였지!
나는 이 중대한 사실을 불과 얼마 전에 깨달았다. 모모는 심지어 집에 오는 손님들 중에서도 남자를 더 따라서, 그저 '쟤는 남자만 좋아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것도 어쩌면 아빠와 비슷한 느낌이라 따랐던 걸지도 모르겠다.
이후 나는 의식적으로 모모를 특별대우 해주기로 마음 먹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거실에서 자고 있는 모모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가 만져주는 일을 잊지 않기로 했다. 모모가 투정을 시작하는 매일 오후 네 시가 되면 좋아하는 간식을 제일 먼저 대령해주고, 그래도 투정이 끝나지 않으면 낚시놀이를 해주며 공주님의 집사 노릇을 자처했다.
덕분에 은근히 나를 경계하던 이 불여시 같은 고양이의 예민함이 조금 사라진 것 같기도. 모모는 특히 엉덩이 부위를 만지는 걸 싫어했는데 요즘은 어딜 만져도 피하지 않고 싫어하는 기색이 없어 뿌듯하다.
나는 이제 모모를 완벽하게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을 알아냈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잔인한(?) 짓은 하지 않기로 한다.
너는 영원한 옹부지의 하나 뿐인 몸모곤듀여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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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고양이 M
2015년 7월에 태어난 페르시안(추정)
네 마리 고양이 중 셋째 고양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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