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안 되지만 욕은 먹고 있습니다
유튜버가 될꼬얌
잡지사, 온라인 커머스, 앱 서비스 등에서 10년을 에디터로 일하면서 글만 써오던 내가, 1년 전 뜬금없이 유튜브 채널을 연 이유는 복합적이다. 여전히 책도 좋고, 글을 쓰는 것도 좋지만 세상의 콘텐츠는 이제 영상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언제나 꿈으로 간직했던 '우리 집 고양이 스타 육성 프로젝트'도 실현하고 싶었다. 아니 사실 까놓고 말해서, 매일 내 몸을 톱니바퀴처럼 굴려도 여전히 인생은 맛이 없었다.
마지막 근무처에서 함께 일하던 디자이너를 졸라 프리미어프로로 컷 편집에 대해 배웠다. 멋들어진 효과나 자막을 넣고 싶을 땐 유튜브를 찾았다. 세상에 유튜브만 있으면 못 배울 것도 없더라. 쿤이가 어렸을 때, 리찌가 어렸을 때 영상을 시작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지만 모모와 덕구의 영상을 더더 많이 남길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내게 글을 쓰는 일은 보자기에서 마구 마구 뭔가를 계속 꺼내는 일 같다. 별 것도 아닌 것에 대해 생각에 생각을 더하면서 가능한 색다른 문장으로 만드는 훈련을 한다. 보자기에서 이 말도 꺼내 보고 저 말도 꺼내 붙여 보면서 제법 별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반대로 영상은 오히려 줄여 담는 일이었다. 항상 3 페이지 이상 늘려쓰던 글을 3분의 영상 안에 줄여 담아야 한다. 주머니를 풀어헤치는 일에 인이 박인 내게 주머니 속에서 몇 가지만 골라 꺼내는 일은 영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유튜브 드림 파괴자 등판
뭐, 영상이 어쨌든 자막이 어쨌든 채널을 개설하고 영상을 올리면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된다. 운이 좋으면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아 로또급 행운에 당첨이 되기도 하고. (물론 그런 행운은 늘 나를 비켜가지.) 되려 대충 쓴 자막, 대충 찍은 영상이 더 먹히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누구나 크집사나 haha ha가 될 수는 없다. 그런 천운을 기대하고 회사를 때려치워서는 안 될 일이다. (갑자기 분위기 고해성사)
공식적으로 유튜브 수익은 구독자 1,000명, 시청 시간 4,000 시간이 넘으면 신청할 수 있고 승인 후엔 광고를 달 수 있다. 광고를 통해 얻어지는 수익은 쉽게 말해 그 영상의 가치에 따라 달라진다. 흔히 조회수 1회에 1원이라고 하지만 그보다 더 받는 영상도, 덜 받는 영상도 있다. 간단하게 계산해 천 번 본 영상은 천 원을 벌어주는 셈이다. 그렇게 열심히 만들었는데 고작 천 원이요? 내 구독자가 천 명이든 만 명이든 상관없다. 결국 소위 말하는 '떡상'은 알고리즘이 간택해 수십, 수백만 명에게 띄워준 영상 하나로 이뤄질 뿐이다.
그렇게 비슷한 시기에 유튜브를 시작했던 많은 이웃들이 떠났다. 처음 시작할 땐 막연하게 구독자 100명이 되면, 1,000명이 되면 다 잘 되는 줄 알았지. 그 타이밍에 유튜브에서 노출을 많이 시켜준다는 썰은 유튜버라면 누구나 아는 거니까. 그러나 실제로 경험해 보니, 그 타이밍이 오히려 독이다. 기대했던 떡상의 수혜를 받지 못한 많은 새내기들이 번아웃에 빠져 채널 운영을 멈췄다.
나 또한 비슷한 시기에 시작해 '아기고양이', '냥줍' 등의 키워드로 떡상한 이웃 유튜버들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적이 있다. 내 영상이 더 재밌는데! 내 영상이 더 퀄리티 있는데! 이런 울부짖음은 패배자의 변명일 뿐이라 우울했던 적도 있다. 세상은 언제나 숫자로 증명되는 것이 아닌가.(씁쓸) 그러나 여전히 하꼬 유튜버의 겸손한 자세로 새로운 콘텐츠, 편집 방식을 고민하면서 영상을 만들고 있다. 그건 이러한 이유에서다.
우습지만 팬이 있읍니다
자, 이쯤 되면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건 너의 영상이 구리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반려동물 채널의 범주 안에서 본다면 비슷한 시기에 알고리즘의 수혜를 입은 다른 채널들에 비해 영상의 퀄리티 만은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한다. 물론 자극적인 소재와 외줄타기를 통해 조회수 어그로를 끌지 못한 건 인정. 끝끝내 그 짓은 못하겠지만.
어쨌든 '진심은 통한다'는 지극히 어리석은 마인드로 근근이 채널의 수명을 유지하고 있는 와중에 감사하게도 영상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영상을 업로드할 때 마다 제일 먼저 달려와 댓글을 남겨주시는 분들, 한 번에 몰아서 정주행 해주시는 분들, 네 마리 고양이의 특성을 이제는 나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시는 분들. 그런 사람들은 내가 끝끝내 이 채널을 포기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달다! 회초리!
물론 해 드는 곳이 있으면 그늘진 곳이 있고, 칭찬이 있으면 욕도 있는 법이다. 우리 채널에서는 '러시안블루'라는 키워드가 가장 노출이 잘 되는 편이라 유독 쿤이의 영상이 조회수가 많은 편인데 이 녀석이 좀 사납다. 그래도 내 눈에는 귀여우니 영상의 흐름은 항상 '너는 나를 괴롭히지만 그래도 나는 너를 무지막지 사랑해'하는 식이다. 그 아래에는 이런 댓글이 아주 가끔 달린다.
마지막 댓글은 꽤 최근에 달린 것인데 생일을 맞아 남편과 함께 교외 나들이를 갔다 돌아오던 길에 알림을 받고 확인했다. 마침 노을이 지는 다리 위를 기분 좋게 드라이브 하고 있던 타이밍이었다. 사이코패스라는 말의 뜻도 모르는 사람의 수준 낮은 댓글 따위 생일의 상콤함으로 패스하려고 해도 자꾸만 머릿 속을 붕붕 휘저었다. 대체 그 영상의 어떤 부분에서 사이코패스가 떠오른 거지? 고작 구독자 2천 따리가 이런 뜻 모를 회초리를 맞는데 2만, 20만 유튜버에겐 어떤 가시 돋힌 말들이 박힐까? 행복했던 생일은 어느새 찝찝함으로 가득 차 버렸다.
예쁜 고양이 키우는 너는 나쁜 사람 탕탕탕
고양이 유튜브 세계에서는 치트키가 있다. '길고양이'나 '냥줍' 같은 키워드. 알고리즘이 띄워주기도 쉽고 어그로 후킹에도 탁월하다. 이미 많은 반려동물 유튜버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고, 따라서 채널을 시작한 뒤 뒤늦게 길냥이를 입양함으로써 떡상한 채널도 여럿 있다. 그런 일부 상업적 의도가 다분한 선의를 목격할 때면, 나는 목이 턱 막힌다. 그래서 한 때 나는 길냥이 구조와 관련된 영상을 의심하는 희귀병이 걸리기도 했다.
이 희귀병의 원인이 단지 거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질병은 내가 받은 '품종묘'에 대한 불편한 시선과 만나 비로소 완전하게 발현되었다. 품종묘는 대부분 계획적인 교배를 통해 탄생된다. 내가 10년 전 첫째, 둘째 고양이를 데려왔던 시절만 해도 개인이 교배를 해 가정 분양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펫샵, 캐터리를 통해서만 품종묘를 데려올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펫샵의 동물들은 소위 말하는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비인간적이고 끔찍한 악행들을 통해서.
이런 세태는 길고양이 구조 영상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일종의 흑백논리를 주입한다. 길냥이를 구조하고 보살피는 사람은 '착한 사람', 품종묘를 키우는 사람은 펫샵의 번창을 돕는 '나쁜 사람'. 이와 같은 논리로 내가 키우는 고양이가 외래종(품종묘는 아닙니다. 죄다 믹스임)이라는 이유만으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이 있다. 도를 넘는 억측과 선이 없는 간섭들. 익명의 가면 뒤에 숨은 검은 그림자가 판결봉을 들고 머리를 내리 찍는다. 예쁜 고양이를 키우는 너는 나쁜 사람이라고.
때문에 내가 아는 한 반려동물 유튜버는 자신은 펫샵이 아닌 품종묘 캐터리를 통해 입양을 했으며, 펫샵과 캐터리의 차이점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영상을 만들기도 했더라. 펫샵의 고양이와 강아지가 소위 말하는 '공장'에서 태어나는 경우가 많으니 사실상 극악은 펫샵이 맞다. 그러나 같은 논점으로 보았을 때 '캐터리'라고 해서 면죄부를 받을 순 없다. 고양이 공장에서 비인간적으로 생명을 착취하고 방치한다? 내가 경험한 캐터리 또한 그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안 데려가면 죽입니다
때는 2015년, 먼치킨 캐터리에서 새끼 먼치킨을 분양받은 한 지인으로부터 다급하게 연락이 왔다. 자신이 그 분양자와 꽤 친해져서 분양 후에도 연락을 주고 받다가 얼마 전 페르시안 새끼가 생겼다며 공짜로 줄테니 키우지 않겠냐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관은 그 뒤에 붙은 말이었다. '아니면 얘는 안락사시켜야 한다'고.
당시 우리 집에는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있었는데 우리에겐 셋째의 입양 계획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지인에게서 온 아기 고양이의 사진을 본 남편이 고양이를 데려오자고 했다. 우리가 아니면 이 고양이는 생을 마감하게 될 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모모를 만나러 갔다.
집의 입구에 들어서자 환하게 햇빛이 거실을 비추고 있었다. 아메리칸 컬, 먼치킨, 랙돌 고급 품종묘들이 푹신한 쿠션 위에서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일과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안쪽의 작은 방 문을 열자 지릿한 비린내와 함께 찬 기운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작은 몸으로는 내려올 수도 없는 높은 곳에 아기였던 모모와 모모의 형제묘가 서로의 온기로 버티고 있었다.
그곳은 철저한 계급 사회였다. 어렴풋이 기억하는 모모의 형제묘는 수컷이었고, 모모보다도 불규칙적인 무늬가 더 진했다. 나는 아직도 그 한 아이를 마저 데리고 오지 못한 것이 죄스럽다. 데려와서 키우기 어려웠으면 임보라도 보낼 걸. 집을 나서려는데 한 아메리칸 컬 고양이가 내 다리에 얼굴을 비볐다. 귀엽다고 했더니 그가 말했다.
데려 가세요. 싸게 드릴게.
캐터리가 펫샵보다 낫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당신이 더 비싼 돈을 들여 고양이를 데리고 왔기 때문이다. 분양자는 먹이를 앞에 둔 하이에나처럼 침을 흘리며 우리가 이 아이를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설명할 것이다. 모모는 믹스묘일 확률이 높다. 캐터리에서 버림받았고, 형제묘도 생김새가 많이 달랐으니까. 하지만 한국 종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어떤 편견을 가진 사람들로부터는 미움의 시선을 받는다.
우리는 가족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도대체 고양이를 가족으로 들여 반려하는데 묘종이 무슨 상관인가. 코숏은 하나 같이 기구한 사연이 있어서 선하고 외래종은 하나 같이 공장의 번창을 돕는 악의 씨앗인가. 고양이를 가족으로 들인다는 것에 얼마나 큰 용기와 책임이 필요하며, 그것을 10년이 넘게 한다는 것의 무게를 알긴 하는 걸까.
결과적으로 나는 이 아이들 모두를 '구했다'고 믿는다.
누군가는 이런 내 생각이 나의 이기적인 자기합리화이자 유치한 영웅심리라고 손가락질 할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색안경을 끼고 대충 스킵한 영상 아래에 불신과 비난 투성이인 댓글을 남기며 내게 인생의 쓴맛을 알려주려는 건지도.
하지만 나는 그런 것에 굴하지 않지. 적어도 그런 시선이 두려워 온갖 핑계를 대거나 값 비싸게 분양 받은 품종묘를 '파양' 당한 고양이라느니 주웠다느니(ft.읍수목장) 하는 돼먹지 않은 시나리오를 쓰고 싶지는 않다. 나는 이 아이들을 종에 따라 '골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연이 닿아 가족이 되었을 뿐. 출신이 어찌 되었든, 생김새가 어떻게 변하든 끝까지 책임을 지면 된다. 그런 건 굳이 노력할 필요도 없다.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레 그렇게 되게 돼있다.
아무튼 나는 누가 뭐래도 당분간 이렇게 고양이만 쫓아다니는 백수 한량 인생을 더 살 거다. 여전히 돈은 안 되고 한 줌의 욕은 더 쌓이겠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 어떠한 편견 없이 하나의 가족으로 우리 여섯을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네온님 로지님 다영님 LEE닝님 JUNG EUN OH님 김재건님 Sawgwon Yoon님 E님 MJ님 하니님 lessismore p님 bae bae님 Aisling W님 말랑카우님 멜로디님 살포시님 외 집사 이웃님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