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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옹일기 Dec 21. 2020

성질나 죽겠네 진짜

가던 길 가세요 기냥


모름지기 동물은 집 안에서 키우는 것이 아니고 집 밖 마당에다가 목줄을 묶어서 키워야 한다. 집을 지키라고 데려왔으니 그게 마땅하다. 밥은 돈 아깝게 뭐 굳이 사료를 주나. 사람이 먹다 남은 것을 주면 되는데. 어차피 버리는 것이니 동물에게 주는 편이 합리적이다. 주인이랍시고 알아보고 좋아하며 애교 부리는 것이 귀엽기는 한데 그렇다고 너무 아끼면 안 된다. 버릇 나빠져서 기어오른다. 혹여나 지 기분 나쁘다고 물거나 할퀴면 갖다 버려야지. 은혜도 모르는 걸 뭐하러 키우나. 세상이 말세를 면하려면 개와 고양이는 그렇게 키워야 마땅하다. 짐승은 짐승답게 키우고, 사람은 짐승이 아닌 사람에게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사랑이 말세의 이유가 되나요


집에서 고양이를 네 마리나 키우며 소파와 침대를 공유하고 살면서 좋다고 물고 빠는 저의 모습을 우연히, 유튜브에서 보게 된 당신의 따뜻한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동시에 세상이 망해감을 느끼며 당신이 느꼈을 답답함과 참담함에 사죄드립니다. 얼마나 마음이 불편하셨을런지요. 사람이 사람과 어울려야 하는데 동물을 제 가족이랍시고 옆에 끼고 사는 모습을 보니 '세상이 변해도 한참 변했구나' 아니, '한참 망했구나'라고 생각이 드셨을 수 있겠습니다...


만, 당신이 이런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경멸하듯이 저는 30년 전에 머물러 1보도 전진하지 못한 당신의 구시대적인 뇌구조를 혐오합니다. 


우리집 대들보


다섯 명이 모여 앉으면 그 중에 최소 두세 명은 동물을 가족으로서 반려하고 있는 반려인 천만 시대에 살면서도 여전히 길고양이의 눈빛이 싫다고 돌멩이를 던지고, 살이 에는 한 겨울에도 마당에서 목줄 묶여 개를 재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양이를 내 새끼처럼 끼고 사는 제 모습이 당신에게 '비사회적'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저는 저런 사람들이 '비인간적'으로 느껴집니다. 시골에 가면 모르는 집 앞에서 코 끝이 찡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온 마당을 뛰고 놀아야 할 시기에도 목에 줄이 묶여 1m가 제 세상 전부인 개들을 보면서요. 


저도 반려경험이 없었던 시절엔 반려인들의 동물 사랑이 '과보호'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니, 심지어 반려를 하던 시기에도 지인이 자기 고양이에게 주겠다고 영양제를 몇 십만원 어치나 사는 걸 보면서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던 적도 있습니다. (물론 '예의'를 아는 자이기에 그것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얼마나 편협한 생각인지요. 상대에게 주는 사랑은, 자신을 위한 사랑이기도 합니다. 사랑을 많이 표현하고 나눠주면 더 행복함과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동물만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잘 베풀고 나눠주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제 고양이들에게 그렇게까진 못합니다. 매일 끼니를 챙겨주고 가까이 다가오면 예쁘다고 표현해주는 것이 사실상 전부입니다.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 예를 들면 양치나 놀아주기 같은 것들마저 까먹는 날들이 많습니다. 참으로 무심하고 게을러터진 집사입니다. 진짜 집사였다면 월급루팡 수준입니다. 물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긴 하지만, 아프기 전에 알뜰살뜰히 챙기고 대비하는 섬세함은 갖추지 못했습니다.    


/


저는 늘 어린 시절 동물을 키워보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많은데 거기엔 어떤 믿음이 있습니다. 동물과의 반려 생활이 인간의 정서적인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동물과 함께 자란 친구들의 경우 밝고 감정이 풍부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미 다 커버리긴 했지만 뒤늦게나마 동물을 키워본 저는 그 가정을 거의 확신(맹신)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고 사랑이 넘치는 동물들에겐 인간의 감정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특별한 능력이 있고, 이들과 오래 감정을 교류하며 살아가는 것은 분명 인간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요. 

 

그래서 감히 이 생명들을 '가족'이라고 부릅니다. 피를 나누지 않았고, 심지어 종마저 다르지만 진짜 가족이 주지 못하는 것을 줄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랑'이라거나 '위로', '배려', '관심' 같은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사람도 누군가에게 꾸준히 주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이 작은 생명들은 늘 같은 자리에서 인간을 위로합니다. 어린 시절 제게 강아지, 고양이는 '귀여움'의 대상이었지만, 이제 귀여움만으로는 다 표현하기 어려운 '고마움'을 느낍니다. 


안아줄게 츄르 줘


제 삶이 잘못 가고 있는 것 같아서 굳이 가시던 길 멈추어 몇 자 적어주신 그 따뜻한 배려와 아량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저는 이 세상이 말세를 향해가고 있는 이유가 고양이와 개를 가족처럼 여기는 사람들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에 갇혀 사는 구시대적 사상, 타인을 존중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폐쇄적인 태도가 훨씬 더 위험한 것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영상에서도 누차 밝힌 바 있습니다만 저는 이 네 마리의 고양이를 가족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엔 저 뿐만이 아니라 그런 마음으로 종이 다른 생명을 반려하는 사람이 무수히 많습니다. 하지만 걱정마세요. 그런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망할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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