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끼는 모든 이들을 모두 건강하게 다시 보는 것입니다
나는 아저씨가 되었고,
선희는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만 빼면,
두 개의 벤치도 새파란 애월의 앞바다도 그대로다.
가려진 진실을 보는 황민구 박사의 세계를 만나 보자.
Q8. 법 영상 분석이라는 분야는 알수록 대단하고 멋진 것 같아요. 정밀한 작업인 만큼 분석하는 모든 과정이 쉽지 않을 듯한데, 그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작업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8. 영상 분석하는 일보다도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의뢰인과의 사투가 힘듭니다. 지루한 분석 끝에 도출된 결과를 본인에게 불리하다고 하여 고성을 지르거나, 환불 요청을 하거나, 심지어 경찰에 신고하시는 분들까지 있습니다. 이제는 분석보다 이런 분들을 응대하는 데 너무 힘이 듭니다.
Q9. 박사님은 재판정에 가기 전이나 다녀온 후에 꼭 지키시는 루틴이 있나요?
A9. 재판 참여 전날에는 가상 법정을 그려 봅니다. 검사나 변호사의 예상 질문을 만들어 그 답을 찾습니다. 또한 판사를 설득하기 위해 쉽고 이해하기 쉬운 표현들을 검색해 봅니다. 다녀온 후에는 증인 여비를 챙겨 와이프에게 줍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재판이 잘 풀리는 케이스가 많습니다. 그래서 와이프는 법원에 다녀올 때면 봉투를 기다리는 눈빛이 보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계좌 이체로 증인 여비를 줘서….
Q10. 책에 담지는 못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나 사례가 있다면 공유해 주세요.
A10. 이태원 참사. 너무 가슴 아픈 사건입니다. 합동수사본부에서 죽어 가는 시민들의 모습에서 사망의 원인을 찾아 달라는 영상 분석 의뢰가 들어왔을 때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서서히 죽어 가는 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잔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Q11. 박사님의 시간은 쉴 틈 없이 돌아갈 것 같아요. 바쁜 일정을 보내고 난 후에는 어떤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시나요?
A11. 저는 마사지를 좋아해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피곤할 때면 동네 허름한 마사지 숍에서 건식 마사지를 받습니다. 그럼 1~2시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나른한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Q12. 법 영상 분석 분야에서의 커리어를 쌓아 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12. 저는 대학생 때 <그것이 알고 싶다>의 애청자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누구보다 이 분야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뭔가를 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보다 더 관심을 갖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책을 찾아보든, 논문을 검색하든 하면서 어느덧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되어 있습니다. 뭔가 되겠다면 뭐라도 하세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하고 싶다는 건 그냥 꿈입니다. 미래가 아닙니다.
Q13. 2024년도 차츰 마무리되어 가네요. 올해 소망한 일은 모두 이루셨나요? 새해 소원을 미리 빌어 본다면, 어떤 소원을 빌고 싶으신가요?
A13. 저를 찾아오신 분들 중 가장 힘들어하시는 의뢰인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으신 분들입니다. 올해도 그렇고, 내년에도 그렇고, 앞으로 있을 미래에도 그렇고, 제 소원은 딱 한 가지입니다. 내가 아끼는 모든 이들을 모두 건강하게 다시 보는 것입니다.
Q14. 마지막으로 『선희』를 읽고, 정의와 희망을 발견하실 독자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A14. 작은 불씨. 제가 좋아하는 단어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여러 가지의 형태로 만들어진 작은 불씨가 가슴 속에 있습니다. 정의의 불씨, 희망의 불씨, 탐구의 불씨, 열정의 불씨 등, 이 모든 불씨를 키우는 건 촉매제입니다. 『선희』는 황민구의 그리움의 불씨를 키울 수 있는 촉매제였습니다. 여러분들도 수많은 불씨를 키울 수 있는 촉매제를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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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2. 작가로서의 여정을 돌아보았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A12. 첫 책을 출간하던 날입니다. 부크럼에서 제 첫 책인……
이도연 작가님의 이어지는 인터뷰는 2024년 12월 23일 월요일 18:00에 부크럼 브런치에서 만나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