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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근영 May 15. 2016

파타고니아 바람이 닦아준 눈물

세상의 끝에서 불어온 바람을 찾아 떠난 여행


바람이 필요했다. 오랜 회사생활에 찌들어가던 나는 퇴사와 함께 심한 몸살을 앓았다. 새로 시작할 일에 대한 강박관념도 한몫했다. 그 무렵 주변 사람들의 포장된 이기심에 받은 상처까지 더해져 마음은 물론 온 내장이 소란스러웠다. 몸은 벌겋게 핀 열꽃으로 가려웠고 약은 쉽사리 듣지 않았다. 세상 끝까지 최대한 멀리 떠나고 싶었다. 거대한 남미 대륙의 끝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이 있는 곳. 파타고니아를 걷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떠났다.


빙하가 녹아 흘러내린 비취색의 호수. 바람이 하얗게 보인다.


긴 비행을 마치고 칠레의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북미나 유럽을 거치지 않고는 한 번에 닿을 수 없는 먼 나라. 정확히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왔다. 눈이 펄펄 날리는 겨울을 떠나 맞게 된 남반구의 한여름.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안데스 산맥에 만년설이 쌓여있었다. 여름 위에 겨울이 얹혀진 채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살라는 뜻으로 다가왔다.


파타고니아에 가려면 무엇보다 체력이 중요하다. 몸살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기엔 무리였다. 전략이 필요한 여행이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며칠동안 걸으려면 늘어진 근육부터 단련시켜야 했다. 처음 몇 주는 느릿느릿 쉬면서 걸어다닐 수 있는 작은 도시에 머물렀고 대망의 파타고니아 트레킹은 일정의 뒷부분으로 안배했다.


강풍에 흔들리며 걷는 외길. 아슬아슬한 낭떠러지 계곡에 빙하물이 흘러간다.


소박한 식당에서 낯선 음식을 먹으며 현지인들과 나누는 교감은 정겨웠다. 처음 보는 이방인에게 아무 대가없이 베푸는 그들의 친절에 위로를 받았다. 내가 주변사람들의 이기심에서 받은 상처는 결국 보상을 기대했던 나의 친절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내 민낯을 보여준 거울이었다. 파타고니아로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칠레 파타고니아에 있는 토레스 델 파이네 (Torres del Paine) 국립공원은 규모가 엄청나다. 제주도 면적의 1.3배에 달한다. O자 형태로 한 바퀴를 다 돌려면 열흘 가량 걸리고 남쪽에서 W자 모양의 코스를 선택하면 최소한 3박 4일이 필요하다. 동서 양쪽에 있는 입구 어느쪽에서 시작하든 끝까지 완주를 해야 한다. 중간에 주저앉으면 업고 가 줄 사람도 없다. 긴급으로 헬기 출동을 요청하거나 꼴사납게 말잔등에 실려나가야 한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유유자적 걷는 여행자들.


열흘치 식량을 지고 갈 자신이 없어 절경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W트레킹 코스를 선택했다. 여유있게 5일을 계획하며 최대한 가벼우면서도 고열량의 식품으로 5일치 식량을 준비했다. 더이상 덜어낼 것도 없이 필요한 물품만을 챙겼는데도 배낭의 무게는 쇳덩이를 올려놓은 듯 했다. 5일간 짊어지고 갈 삶의 무게가 이럴진대 앞으로 남은 50여 년의 무게는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내가 계획한 기간의 일기예보는 배낭 무게보다 더 암울했다. 많은 비와 엄청난 바람이 예상된다는 소식은 홀로 떠나야 하는 여행자의 어깨를 짓눌러왔다.


출발 첫날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조바심에 바스락거리던 마음이 촉촉해졌다. 내 의지로 준비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으니 이제는 마음을 비우고 자연에 순응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일만 남았다. ‘침착해지자. 잘 해낼거야.’ 스스로를 다독이며 걸었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고 세찬 바람 때문에 두 눈은 가늘어졌다. 비옷을 챙겨입기 위해 잠시 내려놓았던 배낭을 메다가 바람에 떠밀려 그대로 넘어졌다. 일어서려고 애를 써봐도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강풍을 이기지 못하고 휘청거리다 주저앉았다. 몇 발자국 옆은 아찔한 낭떠러지였다. 거센 비바람은 사정없이 얼굴을 때리고 온 몸은 젖어갔다. ‘왜 고생스럽게 여기까지 왔을까. 이 곳에서 털어내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나.’ 울컥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문득 올려다본 주변의 나무는 하나같이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휘어져 있었다. 서로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그 자리에 강인하게 버티고 서 있는 나무들.


파타고니아의 거센 바람을 따라 휘어진 나무들.


"우리처럼 조금만 더 유연해져봐. 너무 가까이 있으면 바람이 불 때마다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게 돼. 그렇다고 멀리 떨어져 있으면 심한 바람을 홀로 이겨내야 하니까 많이 힘들지."

나는 바람에 실려오는 말을 들었다.


바람은 잠시 잦아들었고 마침 지나가던 사람들의 도움으로 일어나 산장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정면에서 부는 바람을 안고 가야 하는 루트인데다 젖은 옷과 신발로 걸음은 더뎠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산장의 벽난로 앞에서 환한 미소를 지닌 커플과 인사를 나눴다. 넘어졌을 때 배낭을 메고 일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이들이었다. 아까는 경황이 없어 얼굴도 못봤는데 그들이 먼저 나를 기억해주었다. 모닥불 빛에 반사된 그들의 얼굴은 그늘 한 점 없이 밝았다. 악천후까지도 즐기며 걸어온 남미인들의 낙천성이 부러웠다.


다음날에도 비가 내렸으나 전날 해소된 감정 덕분인지 걷기가 편했다. 비옷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와 만년설이 녹아내리는 개울물 소리의 화음이 좋았다. 겨우내 높은 산에 쌓여있던 눈은 여름 햇살에 녹아 아래로 흘러내린다. 맑고 시원한 빙하물은 어떤 감로수보다 달콤했다. 내 안에 쌓여있는 해묵은 감정의 찌꺼기들을 저 빙하처럼 여과하면 나도 호수같은 사람이 되겠지.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리는 개울물. 물맛은 깔끔시원하고 달다.



트레킹 구간에서 간간이 마주치는 사람들과 주고받는 인사는 늘어지는 발걸음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내 것보다 훨씬 큰 배낭을 지고도 밝은 표정으로 걷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은 배낭을 메고도 힘들어서 눈인사도 대충 하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다. 오래 걷다 보면 보인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 하나에도 성격이 느껴지고 걸음걸이에는 삶의 모습까지도 비쳐진다. 그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남았을까.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의 백미는 이름에도 들어있는 토레스 델 파이네 (Torres del Paine) 산봉우리를 보러 오르는 것이다. 커다란 자갈과 바위로 이루어진 오르막길을 걷다가 가쁜 숨이 턱에 차서야 겨우 마주한 세 개의 봉우리. 구름에 살짝 가려있었지만 아쉽지 않았다. 설령 봉우리의 위용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미련이 남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오기까지 순간 순간 이어진 모든 과정이 내겐 백미였다. 몸과 마음이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경험은 앞으로 살아갈 내 삶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파타고니아가 나를 부른 이유였으리라.



토레스 델 파이네. 원주민 언어로 '푸른 봉우리들'이라는 뜻이다.


팍팍한 삶에 다시 지쳐갈 때면 나는 기억할 것이다. 광활한 자연의 품에서 얻은 소중한 치유의 경험을. 세상사에 치여 자신을 잃어버릴 때마다 뼛속에 새겨진 파타고니아의 바람은 나를 흔들어 깨워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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