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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근영 Jan 30. 2020

쿠바와의 재회

쿠바 어게인 2020

1. 글을 다시 쓰게 된 이유

브런치에 마지막으로 글을 올린 지 1년 반이 넘었다. 그동안 여러 가지로 마음이 복잡하여 글을 쓸 여유가 없기도 했고 속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2019년에는 거의 매달 동행을 모집하여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느라 시간이 부족했던 것도 이유였다. 


여행을 좋아하여 자주 다니다 보니 주변에 동행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이참에 동행들을 공개 모집하여 같이 다니면 좋을 것 같았다. 고심 끝에 '마카모예'라는 여행 동행 프로젝트 이름을 지었다. '마카 모예'는 내 고향 강릉 사투리로 '모두 모여'라는 뜻이다. 오랫동안 고민을 거듭하며 지은 이름이기에 나는 맘에 들었지만 내 지인들은 생소하고 어렵다고 했다. 어떤 이름이든 불러주기 전에는 무의미하지 않은가. 자꾸 부르다 보면 입에 착 붙게 될 것이다(라고 나는 믿고 싶다).

"나랑 여행하고 싶은 사람, 마카 모예"


2019년 3월 중국 윈난 성을 시작으로 모로코, 이란, 이탈리아 북부, 코카서스 3국, 포르투갈, 스페인, 발리&코모도를 다녀왔다. 처음 가 본 곳도 있고 재방문인 지역도 있었다. 식상한 얘기겠지만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중요하다. 다행히 좋은 동행들을 만나 여행을 함께 하면서 특별한 추억을 쌓았고, 그들을 통해 배운 점도 많다. 그동안 쌓인 이야기들을 더 이상 한편에 밀어둘 수는 없어서 여행기를 다시 쓰기로 마음먹었다. 새로 발행한 매거진 '트래블 러버 마카모예'에서는 2019년의 여행 이야기도 틈틈이 올리고, 2020년에 펼쳐질 이야기도 담을 계획이다. 



2. 쿠바 어게인 2020

2020년 1월 마카모예 여행지는 '쿠바'였다. 몇 달 전에 공지를 올리자마자 참가인원이 마감됐다. 쿠바가 이토록 인기가 높은 지역인지 몰랐기에 좀 의외였다. 2014년 8월 처음 쿠바에 갔을 때만 해도 열흘 동안 한국인 여행자는 한 사람도 못 만났었다. 그 이후 간간이 여행 다니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최근 일이 년 사이에 티브이 드라마와 여행 프로그램에 소개된 이후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는 소식에 이해가 됐다. 


쿠바 여행을 준비하면서 설레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다. 많이 변하지는 않았을까? 세월이 흘러도 한결같기를 바라는 마음은 여행자의 욕심일 수도 있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트리니다드에 도착했다. 트리니다드는 쿠바를 여행하는 사람은 누구나 들르는 도시다. 방문자가 많다 보니 숙소, 식당, 카페, 올드카, 택시 등 여행과 연결된 분야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선택의 폭도 그만큼 늘어났다는 의미니까 여행자에게도 나쁠 일은 아니다. 그래도 처음 왔을 때보다 훨씬 깔끔해지고 많이 정돈된 느낌에 왠지 허전함이 들었다. 



3. 재회

2014년 8월, 처음 본 트리니다드의 아름다운 골목길에 홀려 걸어 다닐 때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치자꽃 두 송이’. 이브라힘 페레르의 목소리에는 결코 견줄 수 없었지만 그의 탁한 목소리에는 울림이 있었다. 이 애절한 가사의 노래를 부르는데 누군들 호소력이 없을쏘냐. 우리는 넋을 놓고 들었고 박수를 쳤다. 그리고 내 눈엔 눈물이 고였었다. 마치 내 치자꽃이 시들기라도 할 것 같은 불안한 예감에.


<그대에게 준 치자꽃 두 송이

사랑한다 말하고 싶어서였죠


다른 연인에게서는 결코 느끼지 못할

내 키스의 온기를 담았답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꽃들은 당신 곁에서

속삭일 거예요

당신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어느 날 오후

내 치자꽃들이 죽는다면

그건 바로 꽃들이 알아버렸기 때문일 거예요

당신에게 다른 연인이 생겨

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이 시들었다고>



6년 반의 세월이 흘러 다시 찾은 트리니다드. 동행들에게 자유시간을 주고 나서 지난 추억을 되새기며 혼자 걷던 중 듣고야 말았다. 익숙한 목소리. 귀가 밝은 내가 놓칠 리 없었다. 같은 목소리였다. 7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아저씨는 많이 늙지 않았다. 변함없이 이곳에서 매일 노래를 불렀을 텐데도 노래 실력이 더 나아지지도 않았다. 반가웠다.


‘치자꽃 두 송이’를 신청할 자신은 없었다. 내 마음을 아는 걸까. 아저씨는 쿠바의 국민가요인 ‘관따나메라’를 불렀다. 어느새 모여든 흥 많은 동행들은 훌륭한 관객이 되어 주었고 아저씨의 목소리는 더 흔들렸다. 쿠바의 영웅인 호세 마르띠의 시로 만든 노래, 우리에게도 너무 익숙한 노래 ‘관따나메라’.



<관따나모의 여인이여

관따나모의 시골 여인이여


나는 야자수가 자라는 마을 출신의

진실한 사람입니다

죽기 전에 내 영혼의 시를 

쓰고 싶습니다


나의 시는 연두색입니다

나의 시는 불타는 선홍색입니다

나의 시는 산속에서 보금자리를 찾는

상처 입은 사슴과도 같습니다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이 한 몸 바치고 싶습니다>



한바탕 노래 마당이 끝난 후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6년 전 여름에 왔을 때도 노래를 들었었다고 말했더니 아저씨는 깜짝 놀라며 기억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우린 손을 마주 잡고 악수를 했다. 또 만날 때까지 아저씨가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그때에는 나의 시도 더 건강한 연두색이길, 더 불타는 선홍색이길.


쿠바 마카모예 멋쟁이 동행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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