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다.
우리는 모두 공부의 자식이다. 사는 형편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물려줄 재산이 없는 부모들은 어떻게든 자식을 가르치려한다. 누가 봐도 정상적이지 않은 공부에 대한 지나친 열성은 양극화가 절정인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비상구로 여겨진다.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해를 거듭할수록 국내 석·박사 비율의 증가폭은 점차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한번 묻자. 우리가 사는 곳은 점차 좋아지고 있는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여, 누구든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냐는 말이다.
단언컨대 위 물음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몇 안 될 것이다. 왜 그럴까? 시간이 흐를수록 국내엔 각 분야의 걸출한 전문가들이 무수히 양산되고 있는데, 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조금이라도 ‘사람 사는 세상’에 가까워지지 않는 걸까? 어쩌면 ‘닥치고 공부해라’ 으름장을 놓고, 뼛성부터 부리는 우리네 모습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왜 공부를 하는 걸까? 아니, 아니다. 처음을 묻자. 우리에겐 공부란 무엇일까? 출세를 위한 수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이 공부인걸까?
어쩌면 생경하게 들리는 질문, 생소한 물음일 수 있는 ‘공부’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길 권한다. 전혀 유용하지 않고, 쓸데없어 보이는 이 질문을 곰삭혀보고,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아보길 제안한다. 그리고 끝까지 당신이 찾은 그 답을 벼리길 부탁한다. 이를 위해 조선의 실학자 정약용의 공부론을 함께 톺아보자(이 글에선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토대로 살펴본다). 조선의 대학자인 그가 공부를 무엇이라 했는지, 공부를 대하는 태도가 어떠했는지 함께 숙고해보자.
먼저 다산에게 공부란 ‘타자성을 극대화 하는 과정’이었다. 원래 인간은 피부라는 장벽을 뛰어넘어 타자의 아픔과 즐거움에 쉽게 공감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다산의 공부는 공감의 실현이었다. “마음에 항상 만백성에게 혜택을 주어야겠다는 생각과 만물을 자라게 해야겠다는 뜻을 가진 뒤에야만 바야흐로 참다운 독서를 한 군자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다산의 편지 곳곳에서 보이는 부인과 며느리의 안위에 대한 걱정, 두 아들과 형님에 대한 심려, 민초의 삶에 대한 고뇌는 그가 지향하는 ‘자아 중심성’을 극복하는 공부가 아닐까?
그 다음으로 다산의 공부는 '근본에 충실함’이었다. 그가 실학자라고 해서 학문의 유용성만 쫓아 학문의 뿌리를 도외시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다산이 생각하는 공부의 근본은 ‘효제’였다. 언뜻봐도 우리네 공부와 무척 다르다. 우리는 수단으로써의 공부를 지향한다. 흙수저를 금수저로 변화시키는 놀라운 연금술이 바로 공부다. 그러나 다산은 ‘효제’를 다지는 것이 곧 공부이다. 공자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나이 어린 사람은 집에 들어와서 효도하고 밖에서는 공손하라고 했다. 신중히 행하고 믿음직스럽게 행동하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시간과 힘이 남거든 글을 깨우치라고 했다.’ 다산의 공부는 ‘효제’, 곧 배울 수 없는 것을 우선적으로 다지는 근기있는 공부였다.
마지막으로 다산의 시론을 살펴보자. 다산이 생각하는 시란 “나라를 걱정하는” 운율 있는 글이다. ‘나라를 근심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다.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을 분개하는 내용이 없다면 시가 아니다. 선한 것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다.’ 이렇듯 다산은 민중의 삶에 안녕을 걱정하는 태도야 말로 시의 근본이라 했다. 우리의 공부는 어떠한가? 우리는 공부를 통해 얼마나 이 시대를 걱정하고, 민중의 아픔에 동참하고 있는가? “우리는 공부를 왜 하고 있는가?”
다산의 공부를 통해 우리네 공부의 자화상을 비춰본다. 아프다. 쓰라리다. 그만큼 내가 공부에 진지하지 못했으며, 공부를 통해 타자의 아픔에 동참하지 못했고, 시대의 미래를 걱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다시한번 묻고싶다. “공부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공부를 지향해야 하는가? 무한 공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끈질기게매달려야 할 질문은(역설적이게도) 다름 아닌 ‘공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