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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량 김종빈 Mar 30. 2023

미지근한 어른이 되어가면서

우물 안 고래아빠

 예전에는 어른들의 미지근함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잘못된 것에 불같이 화내지 못하는 것도 못마땅했고,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 모습은 답답하기만 했다. 가끔 대화 중에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이 튀어나오면 입맛이 떨어져,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대화를 접어두었다. 때로는 대화의 순간까지 포기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홀로 뜨겁던 20대를 지나고, 제대로 태워보지 못하고 떠돌던 30대의 도깨비불도 끝에 다다르니 좀 알 것 같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아는 것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는 것은 줄어들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내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확실히 아는 것과 확실히 알 수 없는 것을 분명하게 나눌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모자란 탓으로 확실히 알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았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거의 다 확실히 알 수 없는 것들로 돌아서고 나니, 정말 알고 있는 것들이 있기는 한지 싶다. 아마도 예전에 말을 흐리시고, 삼키시던 어른들은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당신이 알고 믿는 것이 사실은 그렇지 않았고, 그래서 더는 남은 시간과 마음을 확실치 않은 것에 태우기에는 아까우셨으리라.

 이제 나도 5달 정도가 지나면, 아이의 아빠가 된다. 나의 아이와 나의 가정과 내가 잘 살아내기 위한 것을 따져본다. 그리고 그중 확실한 것들을 걸러내어 헤아리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부족한 기분은 아니라서 나도 몇몇 문장은 삼키고, 단어는 입안에서 삭혀본다.

 확실치 않은 것은 흠이 아니었구나. 확실한 것과 그렇지 않을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 흠이었구나. 내 세상이 좁아지고, 언어는 짧아진다 하여도 슬플 일은 아니었다,

 넓은 바다를 살아가는 고래도, 섬 뒤에 숨어 새끼를 기른다고 들었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오래 고민하여 바다에서 살기보다 우물을 택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러자 나도 이제 조금, 아주 조금 미지근한 어른, 아니 미지근해 보이는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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