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글로벌 메신저를 만들어 주신 기업님들.
어찌하다 보니 해외영업을 하게 되었다.
내가 원해서라기 보다는,
수출 중심 비지니스를 하고 있는 회사에서는
어떻게 보면 필수인 코스였으니까.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해외영업을 하게 되었다.
사실,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해외에 지점이나 법인을 설립하여 주재원들을 현장에 내보내,
현장에서의 영업활동은 그들에게 맡기기 때문에,
요즘 대부분의 대기업의 해외영업팀은 사실 직접적인 해외영업이 아니라,
현장에 나가있는 주재원들과의 소통을 통한 Support가 맞을 듯 하다.
영어에 유독 자신이 없었던 나는 당연히 유럽 등의 지역을 맡으리라 생각하고 주재원들과
열심히 소통해야지 생각했는데, 회사일은 항상 내 마음대로 되는게 없다.
아무도 맡고 싶지 않았던, 아프리카 직거래 해외영업.
당시 회사에서 해외 지점이나 법인이 없었던 아프리카 약 45개 국가를 본사에서 직접
커뮤니케이션면서 영업활동을 하는 포지션이었다.
아. 아프리카 라니.
당시 월드비전이라는 국제 단체를 통해 에디오피아의 한 소녀에게 6년째
후원을 하고 있던 터라, 아프리카 해외영업하다보면 혹시 에디오피아라는 나라에
가볼수도 있지 않을까 스스로를 위로하며 진짜 해외영업er가 되었다.
아프리카 해외영업 2년, 스웨덴에서의 주재원 생활 5년의 경험으로 봤을 때,
아프리카 영업은 정말 상상 이상이다.
당연히 영어를 못하는 나는 소통이 전혀 되지 않았다.
아프리카 Bro (거래선 친구들에게 친밀함을 주기 위해 Bro, My friend 등으로 불렀더랬다.)들의 경우는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서 꼭 전화로 오더를 주문하고 원하는 것을 이야기 했다.
당연히 영어를 못하는 나는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한국의 문화가 어떠한가.
누가 영어를 쓰기라도 하면, 모두가 귀를 귀 기울여 그의 영어실력을 듣고 평가하곤 한다.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졌던 나는 당시 파티션으로 나뉘어져 있던 사무실에서,
파티션 바닥까지 달라붙어 전화통화를 하곤 했다.
한 달을 멍때리며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고생하던 찰나.
한 줄기 빛이 쏟아졌다.
당시만 해도 Globally 사용하던 메신저 프로그램이 있었고,
대부분의 거래선 Bro들이 메신저를 사용했더랬다.
그래서 염치 불구하고 전화 통화를 마무리하고는 항상 내용을 메신저로 재확인하고,
메일로 한 번 더 그날의 내용을 정리하곤 했더랬다.
처음에는 귀찮아하던 Bro들이,
다른 일처리들을 깔끔하고 완벽하게 해주자,
이러한 나의 방식을 오히려 선호하게 되었고 다행스럽게도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전화에서 메신저로 이동시키게 되었다.
우리가 또 어떤 민족인가.
Speaking 과 Listening은 안되고,
Writng과 Reading은 어떻게든 해내도록 12년간 교육받아 오지 않았던가.
소통의 무대를 Wrting과 Reading으로 끌고 오자,
나의 무대가 되었다.
어려웠던 영어와 다양한 수출, 무역, 영업 영어 단어들도
일상에서 반복이 되자 어려워지지 않았다.
이러한 방식으로 수십 군데가 넘었던 딜러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2년동안 목표로 했던 실적을 초과달성 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참 복받은 세대다.
전화가 유일한 방법이었던 진정한 수출전사였던 선배님들 시대에 비하면,
우리는 꼭 영어를 완벽하게 하지 못하더라도 이용할 수 있는 도구가 참 많다.
다만 중요한 건, 내가 그에게 전화소통에 대한 불편함과 어색함을 줬더라면,
다른 방식으로 최대한의 서비스를 제공하여 그가 나와 함께하여 비지니스가 잘 되어야 한다.
영어는 도구이다. 메신저도 도구이다.
우리는 일을 잘하기 위해 쓸 수 있는 도구가 참으로 많은 혜택 받은 세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