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나이로는 11살 즈음인 것 같다.
선명한 핏자국을 육안으로 확인한 나이. 그 당시 나는 아직 어렸고 생리를 해야 한다는 사실 그 자체 만으로도 이미 어마어마한 공포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나이 또래 여자애들이 그러했듯 나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생리가 터질까 봐 불안한 날들을 보냈다. 어떤 날은 팬티와 바지를 같이 내리고 올려서 절대 속옷을 쳐다보지 않기도 했고, 옆 반에 누가 생리를 한다는 소문에 왠지 모른 서글픈 동질감을 앓았다.
그러나 예감은 언제나 맞아떨어지고 예고 없던 그 어느 날 갑자기 생리가 시작되었다. 11살짜리 소녀는 혼자 화장실에 우두커니 앉아 지금부터 생식능력을 지닌 여성이 된다는 것에 꽤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갑자기 몇 분 차이로 새로운 세계에 내동댕이쳐진 기분이랄까, 두려움과 기쁨이 비집고 들어오기에는 당황스러움이 가장 컸다. 제대로 나의 생리를 받아들이지도 못한 채, 우물쭈물 엄마에게 달려 나가 사실을 고백했다.
지금도 이 장면은 내게 굉장히 선명하다. 이 날, 화장실을 달려 나가 엄마에게 뛰어나가 속삭이던 그 걸음 하나하나가 아직 내게 쿵쾅거리며 남아있는 듯하다. 내 수줍은 고백을 들은 엄마는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 그 누구보다 기쁘게 축하해주셨다. 마치 드라마 속 임신한 여주인공의 기쁜 남편 같았다. 그때의 기분은 참 기쁘기도 서글프기도 , 누가 툭하고 건들면 울 것 같은 날들의 시작이었다.
다음날 어머니는 내 질투의 대상이었던 여동생을 떼어놓고 단 둘만의 데이트를 신청하셨다. 학원이 끝나고 나오니 저 멀리 엄마가 서계셨다. 엄마가 나를 처음으로 데려간 곳은 다름 아닌 속옷가게였다. 4학년이란 나이에 조숙하게 생리를 시작한 게 너무 부끄러웠는 데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기저귀 같은 방수 팬티를 골라보라 하셨다. 속옷 아줌마와 엄마만 빼고 나는 거기서 진땀을 질질 빼며 우주의 먼지로 사라지고 싶었다. 부끄러운 탓에 제대로 고르질 못해 어머니가 골라준 팬티 두장을 엉겁결에 받아 들었다.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구름다리 같았다. 부끄러운 선물을 들고 다음으로 간 곳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경양식 집이었다. 이름 모를 좋은 노래들이 나오고, 언니 오빠들이 데이트를 할 것만 같은 어른들의 경양식 집에서 나는 바삭한 돈가스를 맛깔나게 썰었다. 먹성 좋은 내가 돈가스를 먹는 동안 어머니는 잘 먹는 나를 지켜보시더니, 기쁜 표정으로 축하한다는 말을 하셨다. 그리고 단단히 축하의 말을 더 이어나가셨다.
첫째, 생리는 나쁘고 더러운 것이 아니고 여성에게 아주 소중하고 축하받을 일이다. 오늘은 너의 생리를 축하하고 기념하는 날이다. 딸아 여자가 된 것을 축하한다
둘째, 너는 지금부터 임신을 할 수 있는 가임여성이 된다. 항상 몸을 소중하게 여기고 몸에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엄마에게 빠르게 털어놓으라. 단 엄마에게만.
셋째, 생리대를 붙이고 처리하는 방법, 생리통이 있을 시 대처방법, 생리 전 기분과 몸의 변화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셨다. 특히 본인은 이러하니 너도 나와 비슷할 수 있다는 설명을 하시며 우리의 친근함을 한번 더 강조하셨다.
이 세 가지 말씀과 함께 끝난 엄마와의 기뻤던 데이트는 지금까지 대략 240번의 생리를 한 나에게 정말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나는 나의 자녀에게 이렇게 성숙한 사랑을 줄 수 있는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어린 동생에게 치여 사랑이 부족하다 느낀 예민한 사춘기 소녀를 위해 엄마가 내어준 그날 하루의 시간은 내게 아주 큰 자양분이 되었다.
삶이라는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극심한 호르몬의 변화와 점점 심해지는 생리통에도 나는 나의 생리를 축복하고 감사한다. 나라는 존재 자체의 인정, 사랑을 듬뿍 받고 확인할 수 있었던 나의 첫 번째 생리. 모두가 다 같은 방식으로 여자가 되진 않지만, 여자들에겐 잊을 수 없는 성장의 근거.
이런 글을 쓰고 있을 때쯤이면 나는 생리의 시작이 일주일도 안 남았음을 직감한다. 호르몬이 강렬한 농도로 흐르며 나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이 시간. 이 시간마저 축복의 자잘한 조각임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나의 딸에게 성대한 생리 축하식을 열어주리라 다짐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