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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적 에세이스트 Aug 21. 2020

쉬어가세요.  더 멀리 가려면

 나는 그 누구보다 최적화된 효율성에 나 자신을 끼워 넣어 사는 인간이었다. 이른 새벽 기상, 기상 후 일기 쓰기, 스트레칭, 산책, 글쓰기, 헬스, 독서 등등 바쁜 업무 말고도 내가 매일 해야 할 과업은 늘 많았고 새벽 6시에 일어나 밤 12시까지 쌩쌩하게 활동하며 체력을 자랑하던 나였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게 몇 달에 한 번씩, 길게는 2주 가까이 몇 대 맞은 듯 아침에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고 업무 중에도 꿈을 꾸듯 몽롱하고 아득한 순간이 찾아오곤 했다. 이럴 때마다 나는 몇 잔의 커피로 나를 더 몰아세웠지만 그건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그러한 순간들이 나를 덮칠 때면, 마음은 불안해졌고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는 채 습관적으로 움직였다. 너무 피곤하고 몽롱해서 하루쯤 하지 말까라는 생각이 몰려올 때 내가 느끼는 죄책감은 아무에게 말 못할 우울감이었다.


 "언니, 좀 쉬어!! 넌 좀 집에서 그냥 멍 때려.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 봐"

 나를 잘 아는 지인들은 제발 나에게 쉬라고 했다. 집 밖으로도 나오지 말고, 그냥 더 자라고. 하루쯤은 집에서 푹 쉬어주어야 할 나이라며 나에게 모두가 말했다. ENFP의 열정적인 나에게 주말에 하루 집에서 쉬기란 약간 과장을 보태 지루한 감옥이었다.

 그러던 어느 주말 일요일, 점심 약속이 취소되어 시간이 붕 뜬 적이 있다. 혼자 서점을 갈지 카페를 갈지 고민하다 잠깐 잠이 들었는 데, 깨고 나니 일요일 밤 11시였다. 기계의 전원을 통째로 뽑혀나가듯 나는 그 주말의 단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깨고 난 후에는 너무 낮잠을 많이 잔 탓에 쉽사리 잠이 들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과 달리 나는 또다시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나는 쉬어야 했다. 나는 쉴 수밖에 없을 때까지 스스로를 몰고 갔다. 충분히 쉰 하루를 보내고 나니, 나를 괴롭히던 몽롱함은 사라지고 활력으로 가득 찬 월요일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야 알았다.


  나를 끊임없이 몰아세우고, 바쁘고 힘든 스케줄에 나를 구겨 넣은 만큼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는 사실. 내 몸이 원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는 것. 꼭 쉼표를 스스로에게 주어야만 한다는 것. 천천히 쉬어갈 때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이룰 힘이 내 안에 충전된다는 것. 쉬어야 더 멀리 오래갈 수 있다는 것. 쉬어가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라는 사실.


 내가 제때 충분히 쉬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내 안에 "쉬는 건 뒤쳐지는 거야" 라던가, "남들은 저렇게 열심히 사는 데 나는 왜 이리 게으르지"라는 비교의 방어기제에서 나온 강박은 아니었을까 싶다. 경쟁과 비교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자꾸만 나를 옥죄고 앞만 보고 달리기를 종용했나 보다. 내 안을 돌아보며 내가 휴식을 떠올릴 때마다 느낀 죄책감의 뿌리를 찾자, 악마의 저주가 풀린 듯 나는 그 수많은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 제대로 된 휴식을 맛볼 수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찾아온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 나는 그간의 모든 갈증을 해소하며 온전히 쉬었다.


 그 후 나는 종종 blackout의 시간을 갖는다. 매일 일과에 조금씩 정전의 시간을 끼워 넣는다. 회사 안마의자에 누워 멍하니 하늘을 보기도 하고, 이동 시간 중엔 핸드폰을 가방에 깊숙이 넣어두고 호흡에만 집중하기도 한다. 따뜻한 물을 받아 느긋하게 반신욕을 즐기고 몸이 힘든 날엔 꼼짝도 안하고 쉬기도 한다. 여러 번 자주 쉬어주고, 주말 중 하루 정도는 혼자 느긋하게 쉴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을 내게 허락하곤 한다. 쉬어가야만 더 멀리 오래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내가 무수히 거쳐야 했던 시간들에게 미안함을 보낸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 피곤하고 무기력한 몸을 뒹굴거리며 침대에 누워 이 글을 읽는다고 너무 자책하지 마시라. 당신은 충분히 쉬어가며  여유를 즐길 자격이 있다. , 당신도  생각을 그저 온전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다면.


 애썼다. 참으로 고생 많았다. 당신.

 푹 쉬어도 되요. 천천히 오래 가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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