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 하나 다룰 줄 모르는 엉망진창 인생 탈출기
어느 날 문득 잠자리에 누워 생각했다.
인생의 좋은 날들이 문득 지나가버린 게 아닐까 하고.
서글펐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느덧 30대 중반이 넘어선 나이, 나에게 성장이란 직장생활에서의 승진이나 좋은 집, 좋은 차 같은 물질적인 성취밖에 없었다. 백세 인생이라는데, 직장을 나오고 나면 40년은 놀텐데, 그때를 위해 뭔가를 준비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들이 요 며칠 오고 갔다. 그리고 문득 나에게는 새로운 직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직장생활과 병행할 수 있고, 시간관리에도 비교적 자유로우면서 창작과 관련한 일을 하고 싶어 했다. 일정하지 않더라도 약간의 벌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잘하는 일을 하기보다 무언가를 배울 수 있고, 또 성장을 통해 성취를 할 수 있는 일이었으면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돈을 벌 수 있는 취미,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음악으로 돈을 버는 뮤지션은 그렇지 않은 뮤지션보다 훨씬 적다. 하지만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알 수 없다. 이것은 하나의 비즈니스라고 생각한 순간, 마치 스타트업의 창업자와 같은 마음으로 뮤지션이 되기로 한 것이다.
글을 쓰는 일을 꽤 오래전부터 나름 꾸준히 해오고 있다.
그리고 필자는 무려 2권의 독립출판물을 낸 경험도 있다. 글은 앞으로도 계속 쓸 테지만 그것은 취미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는 일을 즐겨하고 좋아하는 거의 유일한 이유는 글을 쓰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형태의 창작이었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영역을 넓게 본다면 영화나 노래 등도 포함시킬 수 있다.
취미 삼아 영화를 만들어 본 적이 있다.
시나리오는 역시, 평소에 써두었던 글에서 시작했다. 과정은 험난했지만 충분히 보람이 있었고, 성취도 있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노동과 에너지가 들어가는 만큼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영화 제작의 프로세스를 비로소 어느 정도 알게 되었을 때, 잘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거기서부터가 진짜 어렵다. 잘 만들려고 하니 좀처럼 만들기가 어려워졌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만들 수 있지만, 잘 만들고 싶으니까 계속 미루게 된다.
좀 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일을 찾기 시작했다.
잘 만들지 못해도 그냥 만들고 싶은 것들. 만드는 행위 자체로도 스스로 뿌듯할 일은 뭐가 있을까? 결론은 음악이었다. 하지만 나는 악기 하나 다룰 줄 아는 게 없었다. 그래서 더욱 오기가 생겼다. 과연 내가 가수가 될 수 있을까? 일단 해보자. 잘 사는 길이 보이는 인생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스스로의 능력이 궁금했다. 혹시 또 모르는 일이다. 내게는 엄청난 음악적 재능이 숨겨져 있을지도...
그럼 이제 무엇부터 해야 할까?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가수가 되려면, 노래를 배워야 하나. 악기를 배워야 하나. 아니면 음반 관계자를 만나야 할까. 아무것도 몰랐다. 나는 악기 하나 다룰 줄 몰랐고, 노래방도 즐겨가지 않는 편이었으므로. 다행인 건 그래도 주변에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아직 있었다. 그래 그 친구들에게 묻자. 내가 어떻게 하면 가수가 될 수 있는지 물어보자.
가수가 되는 꿈을 꾸기 시작한 순간부터,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들떴다.
가수 그까짓 거. 되어본다.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