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니와니완 Jun 30. 2020

5. 안녕, 바하?

내 손안에 음악의 아버지.

새로운 기타에 '바하'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재즈부터 락까지 모든 음악 장르를 섭렵했던 전 회사 팀장님은 굉장히 해박한 음악적 지식이 있었는데, 그분에게 종종 음악을 추천받곤 했다. 키스 자렛, 쳇 베이커, 척 베리, 핑크 플로이드까지 그분의 추천을 통해 알게 된 가수들이 많다. 어느 날 그분께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을 물었을 때, 그분은 '바하'라고 했다. (띠용?)


바하를 바흐라고 하면 왠지 맛이 살지 않는다. 짜장면을 자장면이라 하는 것 같이, 닭도리탕을 닭볶음탕이라고 하는 것 같이. 바흐는 근엄하고 묵직한 이름 같은 반면에 바하는 조금 더 가볍고 유쾌한 이름 같다.  


음악의 아버지, 요한 세바스티안 바하.

세상에서 어쩌면 가장 유명한 음악가. 그는 음악가라는 직업이 제대로 존재하지 않았을 때, 열정을 갖고 스스로 음악가의 길을 개척한 사람이다. 그가 태어난 1700년대 당시는 음악과 음악가에 대한 지위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유럽의 명문 음악 가문이라고 하지만 당시로 치면, 그저 악사 가문에 불과한 바하 집안의 여덟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바하는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과 오르간을 배우면서 성가대원으로도 활약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우리나라 조선시대 때처럼 궁정에서 가끔 이벤트가 열릴 때 음악을 연주하는 바이마르 궁정 하인으로 취직한 것이 그의 인생 첫 커리어다. 하지만 그의 음악적 재능 덕분에 삼 개월 만에 때려치우고, 교회의 정식 오르간 주자로 스카우트된다.


내 기타를 바하로 이름 붙인 이유


1. 즉흥 연주의 자유분방함

바하는 음악의 '아버지'라, 뭔가 모를 엄숙함과 진지함의 분위기가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180cm의 장대한 키에 왕성한 대식가로 다혈질이면서도 자유분방한 성격이었다. 작곡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요즘으로 치면 아이돌처럼 연주, 노래, 춤까지 모두 솜씨가 좋은 만능 엔터테이너로 종종 즉흥적으로 작곡한 곡들을 연주하고 놀았다고 한다.


2. 모든 장르의 가능성

바하 오페라를 제외한 당시의 거의 모든 장르 작품을 썼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양식, 형식작품을 남긴 작곡가로 광범위 장르의 음악 기법을 모두 포용하며 결합시켰다고 평가받는다. 바흐의 대표작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은 두권의 책으로 모든 장조와 모든 단조를 사용한 각 24곡들이 들어있다. 이 책은 당시에 실용화되기 시작한 평균율 이라는 건반 악기의 새로운 조율법을 집대성한 '피아노 음악의 구약성서'로 불린다. '모든 음악은 바하에게서 나온다'라는 말은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닌 것이다. 


그의 대표곡을 한 번, 들어보자. 

< Bach - Prelude in C Major  BMV 846 / Performed by 정성민 >



3. 투잡 하는 음악인

바하는 생계형 음악인이었다. 당시에는 음악가로 먹고 살기가 충분하지 않았다. 바하의 라이프치히 시절, 그의 친구 에르트만에게 자신의 직업과 일에 대해 하소연하는 편지가 지금도 전해져 내려온다. (업무 스콥에 비해 페이는 너무 적으며... 직장상사는 나랑 안 맞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 최저 시급에 못 미치는 월급을 받으며 일했던 바하는 슈퍼 능력자였으므로 계속해서 이직을 했다. 그의 직장에서는 이직을 번번이 반대했고 화가 난 바하는 태업에 돌입한다. 하지만 계약서상에 명시된 명령 불복종죄로 1개월간 감옥에도 갔다 온 그는 결혼식과 장례식 연주, 개인 레슨 등 부지런히 부업으로 생계를 이어나간다.  


4. 다작의 열정

먹고 살기 빠듯한 생활 속에서도 바하는 생전에 무려 1천 곡 이상 작곡했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에 대한 애착도 커서 꼼꼼히 악보를 그렸다. 그의 작업은 산발적으로 발견되어 정확한 창작 시기를 알 수 없다. 그래서 다른 음악가의 악보와 달리 연대순으로도 악장별로도 아닌 BMV라는 이니셜과 숫자가 붙는다. 이는 바하협회에서 붙인 '바하 작품 목록'이라는 뜻이다.



5. 후대에 인정받은 예술성

좋은 음악으로 인정받는 일은 너무나 어렵다. 좋은 음악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과 음악가 자신만의 확고한 믿음이 없으면 꾸준히 하기 쉽지 않다. 바하는 그렇게 존버 했다. 그는 연주 실력으로 먹고살았고 그의 삶이 끝나자 그의 존재는 당대에 인정받지 못하며 사라져 갔다. 그의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첼로 모음곡은 심지어 1890년에 파블로 가잘스가 중고 책방에서 우연히 악보를 처음 발견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그가 남긴 무수히 많은 곡들은 사후에 음악가들을 통해 인정을 받게 된다. 베토벤, 슈만, 멘델스존 등 많은 음악가들은 '바하덕후'라고 할 만큼 그의 음악을 칭송했다.



기타는 언제나 내게 새로운 악기다. 이제 코드를 배워야 한다.


C를 안다. 자주 쓰이니까 겨우겨우 연습했다. G도 안다. 가장 쉽게 제대로 된 소리를 낼 수 있는 코드다. G선상의 아리아를 G코드만으로 연주할 수 없다니! (바하에게 살짝 속은 기분이지만...) 코드를 알아야 노래를 만들 수 있다. 이야기처럼 노래도 진행이 있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선율을 위해서는 다양한 코드를 익혀야만 한다.    


자 이제 바하와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될 시간. 내가 애정을 쏟는 만큼 너도 나에게 마음을 열겠지.

바하야, 잘 부탁해!

매거진의 이전글 4. 가수는 악기를 탓하지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