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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니와니완 Jun 19. 2020

4. 가수는 악기를 탓하지 않는다

하지만 악기는 가수를 탓할지도 모르는 일...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 서투른 목수만이 연장을 나무란다. 음악에서도 마찬가지일까? 

비싼 악기를 써본 적은 없다. (악기를 써본 적이.. 없나?) 물론 음악과 아주 동떨어진 삶을 살아왔으니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음악을 하려면, 일단 악기부터?   

어떤 악기를 사야 할까? 또다시, 음악을 하는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무슨 악기를 사야 할지... 자연스럽게 어떤 음악을 하려는지 물었다. 어떤 음악을 해야 할지 모를 땐 다들 '마스터 키보드' 하나면 충분하다고 했다. 요즘은 가상악기와 컴퓨터로 모든 음악을 뚝딱 만든다. 로직, 에이블톤 등 미디 프로그램 하나면 마법처럼 뚝딱 오케스트라도 완성시킬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엔 일단 미디 프로그램을 구했다. 


엑셀도 어려워하는데 미디가 쉬울 리가 없었다. 

한 땀 한 땀 컴퓨터로 악기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알아서 연주해준다. 한 번도 연주해본 적 없는 악기도 쉽게 연주할 수 있다. 이것은 포토샵에 가까운 혁명이다. 그러나 그림에 대한 기초 없이 포토샵을 한다고 예쁜 이미지가 뚝딱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미디를 놓고 이것저것 만지작만지작 하는 과정이 너무 길고 지루했다. 무엇이든 쉽게 지겨워하고 마는 '프로 지겨워'인 나는 컴퓨터 앞에서 띠띠 거리는 음악 작업에 금세 흥미를 잃어버렸다. 앞서 말했듯 듣는 귀가 문제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한계가 없는 상황에서 다른 작업물들과 견주어 내 능력은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손에 익으면 금방 속도가 붙는다고 하는데 가속도를 붙일 만큼의 열정이 부족했다. 


악기가 꼭 필요할까? 

미디 프로그램을 써보니 악기가 오히려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피아노도 칠 줄 모르고 기타도 칠 줄 모르는데 마우스로 하나하나 음표를 그리는 것으로 쉽게 음악이 만들어졌다. (그걸 음악이라고 해도 될지는...).  가수라면 그래도 공연을 해야 하는데, 컴퓨터 앞에서 어떻게 음악을 틀지? 뭔가 모양이 빠지긴 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나는 악기 연주자도 아니다. 기타를 기가 막히게 칠 자신도, 피아노를 뚱땅띵땅 칠 자신도 없었다. 


목소리도 하나의 악기다. 

학교 다닐 적에 합창반을 했다. 공연을 앞두고 마지막 연습이 있기 전 감기에 걸려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때 선생님께서 사람의 목소리도 하나의 악기처럼 잘 관리해야 한다고 하셨다. 목소리라면 기타나 피아노보다 자신 있었지만 그렇다고 노래를 아주 잘하는 건 아니었다. 악기 없이 노래로만 승부하는 '김나박' 급의 '보컬리스트'가 되기엔 여전히 너무나도 갈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김나박=한국을 대표하는 보컬리스트 김범수/나얼/박효신 3인의 성을 따서 노래를 잘하는 정도를 넘어 신급의 보컬 실력을 구사하는 정도를 말한다.) 


그래서 결국은 기타! 

무엇보다 '포크'음악 장르를 우선 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기타는 포크 맨들의 소울 악기다. 김광석의 손에도, 김현식의 손에도 기타가 항상 들려있었다. 사실, 기타는 내게 가장 가깝고도 먼 악기다. 언제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친숙한 악기라서 누구나 한 번쯤은 기타에 손을 갖다 댄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살면서 세 번. 


처음은 대학교 때였다. 영화 <원스>를 보고 나서 'Falling Slowly'를 처음으로 치고 싶다고 생각했고 아름아름 친구에게 쓰지 않는 기타를 구했다. 하지만 역시 '프로 지겨워'인 나는 꾸준히 기타 연습을 하는 것을 너무 힘들어했다. 그 한 곡을 한 번도 틀리지 않고 겨우겨우 칠 수 있게 된 이후에 기타를 그만뒀다. (그만뒀다고 하기에 우스울 정도로 짧은 기간, 한 달 정도?! 기타를 잡았다. 아니, 만졌다. 음, 아니 스쳤다?!) 


두 번째는 5년 전쯤 다니던 회사에 기타 동아리가 있었는데, 마침 사촌누나가 이사 가면서 두고 간 기타가 집에 있었다. 기타 동아리에서 선생님을 모시고 와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곡씩을 배웠는데 동아리 멤버들 마다 기타 실력이 차이가 커서 곡 선정이 쉽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잦은 야근과 격무로 배우는 시간 이외에 개인 시간을 투자해 연습을 해와야 하는데 일주일에 한 번 기타를 배우는 시간에만 기타를 치니 도저히 늘 리가 없었다. 포기라고 하기보다 기타가 흐지부지 내 손을 떠났다. 


세 번째는 지금 이 순간! 

기타를 사기 위해서 중고나라도 보았지만, 직접 보고 사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당근 마켓을 다운로드하였다. 역시나 기타는 가깝고도 먼 악기인지라, 다운로드하자마자 실시간으로 동네에 놀고 있는, 아니 정확히는 방구석에 처박혀 다음 연주자를 기다리고 있는 기타 리스트(아, 기타 치는 사람 말고.. 기타의 목록)가 떴다. 많으니까 다시 또 고민이 된다. 싼 거 아무거나 사면되겠지 했는데, 만원 이만 원 차인데 더 좋은 기타도 많다. (뭐가 좋은 기타인지 당연히 내가 알리가 없다. 좋아 보이는 기타? 예쁜 기타?) 까무잡잡한 기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애들보다 1~2만 원이 더 비쌌지만 인터넷에서 신품 가격을 찾아봤을 땐 5만 원 이상 가격차이가 있었다. 채팅창을 열고 네고에 들어간다. 어떤 하자가 있는지 물어보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중고는 무조건 일단 깎을 여지가 있다.     

 

그는 단호했다. 네고 안됨. 

기타의 주인은 음악학원 원장님이었다. 학생들 강습용으로 사서 몇 번 쓰지 않은 기타인데 헤드 부분에 상처가 나 있었다. 얼른 기타를 배워서 자유롭게 가지고 놀길 바랐던 아이들은 기타 연습은 안 하고 말 그대로 진짜 기타를 가지고 놀았다고 했다. 슬픈 유기동물처럼 구석 한편에 놓인 기타가 마치 나를 바라보는 듯했다. 그래 너로 정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우리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한 번 쳐보실래요?"

기타 주인은 소리에는 지장이 없다고 한 번 쳐보라고 하는데, 무방비 태세에서 적지 않은 당황을 했다. 예상치 못했던 연주 요청이었다. 기타를 잡았지만 코드가 새까맣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원래 모른다는 것이 어쩌면 더 가깝다. 생각나는 기타 코드가 C 밖에 없어서 C를 쳤다. 반복해서 계속 C만 쳤다. 


"음.. 소리가 괜찮네요.. 관리가 잘 됐나 봐요."   

"어? 이상한데, 튜닝이 안 되어 있네요. 잠시만요.." 


괜히 전문가처럼 보이려고 한소리 했다가 민망했다. 주인은 가격은 못 깎아주는 대신 기타 튜너를 선물했다. 기타를 메고 거래장소를 나서는데 왠지 날개를 단 것 같았다. 이제는 정말 진짜 뮤지션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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