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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니와니완 Jun 02. 2020

3. 할 수 있는 음악을 고른다

하고 싶은 것들 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 솎아내기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고민한 적이 별로 없다. 
나는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한다는데 나는 잘하는 것이 그다지 없었으면서, 하고 싶은 것은 무진장 많았으니까. 하고 싶은 것들의 목록을 수시로 적는 것을 지금도 취미로 하고 있는 정도다. 경상도에는 '하고재비'라는 말이 있다. 뭐든지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나는 전형적인 하고재비였고, 무언가 하는 일이 그 자체로 몹시 즐거웠다. 

그래서 늘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실제로 할 수 없는 것들을 빼면 의외로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다. 사소하면서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걷기와 뛰기를 할 수 있다. 먹기와 잠자기를 할 수 있다. 돈 없어서 못 하는 것도 있지만 돈 없이도 할 수 있는 것들도 많다. (물론, 돈이 많았으면 절대 할 필요가 없는 생각이다. 돈은 많을수록 좋은 것:)) 


여기에 딱 한 글자가 붙으면 굉장히 복잡해지는데, 바로 '잘'이다. 
할 수 있는 것은 많은데 '잘'할 수 있는 것은 드물기 때문이다. 그보다 해보기 전에는 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있는데 잘할 수 있는지는 절대 알 수가 없다. 잘한다에 대한 기준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노래를 잘하지 못한다. 악기 하나도 잘하는 것이 없다. 그런데 목소리가 아직 나오니까 노래도 할 수 있고, 어떤 형태로든 악기를 연주할 수는 있다. 가수가 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연습이 필요하고 스스로 정한 목표량에 맞춰서 시간을 들여야 할 것이다. 


아직도 들어야 할 음악이 많고, 시간은 턱 없이 부족하다. 
매일매일 끊임없이 새로운 노래가 나오고 그 노래들을 듣는 데에만 할애해도 인생의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심지어 좋은 노래들도 너무 많다. 이름 모를 가수들이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리는 음악들 조차 너무 좋은 노래들이 많다. 음악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수록 자신감은 줄어들고 내가 과연 음악을 만들 수 있을까, 이들처럼 누군가를 위해 들려줄 수 있을까, 의기소침해지기만 했다. 


처음 책을 만들던 때의 마음가짐을 떠올리기로 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듯이, 누군가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듯이, 나만이 할 수 있는 노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노래는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면 좋을까? 조금 더 쉽게 생각해서 우선은 나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노랫말부터 써 내려가기로 했다. 미리 써 놓은 가사들에 멜로디를 붙여보기도 하고 편집에 재편집을 더해 노래가 되게끔 소리를 내어본다. 


처음에는 당연히 힙합일 거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음악이. 

힙합은 씬이 존재한다. 장르 뮤지션과 팬들이 존재한다. 대한민국에서 힙합만큼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음악 장르는 없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힙합은 굉장히 큰 시장이다. 내가 힙합을 좋아하는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노랫말 중심인 음악이기 때문이다. 가사의 전달력과 내용에 많은 사람들이 주목한다. 음악 그 자체이기보다 때로는 멜로디가 가미된 문학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센스. 
https://www.youtube.com/watch?v=BQD0FPtwR1U


국내에서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한 최고의 래퍼, 이센스는 말하듯이 랩을 한다. 다른 뮤지션들의 랩은 비트에, 라임에 가사를 억지로 끼워 넣은 느낌이 드는 반면 그의 랩은 말하듯이 조곤조곤하는 가사 위에 비트가 소스처럼 뿌려진다. 이러한 랩 스킬은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고급 스킬이다. 연습해서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악기나 보컬을 연습하듯이 꾸준하게 한다면 어느 정도 나만의 랩 스타일을 찾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랩과 힙합은 또 다르다. 

자주 따라 부르는 인기 대중가요도 랩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무엇보다 친숙하다. 친숙하기 때문에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랩을 한다면 당연히 힙합 음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랩과 힙합은 때때로 동일시되지만, 랩은 힙합에서 주로 사용하는 보컬 양식일 뿐이다. 랩을 하고 힙합 음악을 하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이게 또 여간 치열한 분야가 아니다.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건 그만큼 열정적인 경쟁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파면 팔수록 힙합이란 장르는 복잡해 보인다. 

비트를 만들거나 이미 만들어진 비트 위에 랩을 하거나 누군가에게 비트를 요청하거나 나의 노래라고 하기에 가사를 전달할 수 있지만, 비트가 없이 랩만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비트를 어디서 구하냐고 물었을 때 주변의 래퍼들은 여기저기서,라고 말했지만 여기저기 떠도는 비트 위에 랩을 한다면 결국은 랩 스킬을 보여주기 위한 경쟁에 스스로 참여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같은 노래를 부르면 무의식적으로 비교의 대상이 되기를 자처하는 것이다. 처음에 목표로 세운 나만의 노래,  나만의 음악이 아니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처음엔 랩을 쉽게 생각했었다.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왔을까? 말은 어디 가도 부끄럽지 않게 하는 편이고 발음도 나름 정확하면서 수다스러운 성격이라면 자연스럽게 랩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혼자서 연습 삼아 중얼중얼해본 랩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내가 살면서 노래를 부른 일이 랩을 한 일보다 훨씬 많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내 랩을 스스로 듣기 거북할 정도로 나는 랩을 정말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장르를 찾는 쉬운 방법, 레퍼런스 찾기! 

모를 땐 역시 보고 듣는 것보다 좋은 길잡이가 없다. 잠시, 막간을 이용해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소개하고자 한다. 


▶ 이랑 -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https://youtu.be/ZuqWv-Mf5 EY

한국 대중 음악상에 빛나는 천재 뮤지션이자, 만화가이자, 영화감독 이랑 선배님. 2집 신의 놀이로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1집이 더 좋다. 1집 노래는 정말 더 말 같고 이야기 같아서 재밌다.  


▶ 신승은 - 애매한 게 


https://youtu.be/p8 dL1 NepEb4

신승은 선배의 음악은 홍상수 영화 같달까. 담백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의 목소리 위로 기타 멜로디가 더해진다. 가사도 너무 재밌다. 듣는 재미와 익살이 있다. 


▶ 산울림 -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https://youtu.be/vlfu3-jgIo0

대한민국 록의 신화, 김창완 선배님의 산울림은 락을 기본으로 하면서 포크와 프로그레시브, 하드 록을 넘나 든다. (내가 말하면서 무슨 이야긴지 모르겠지만, 위키에서 가져왔다.) 


이 음악들은 포크 음악이라고 한다.  

파스타나 과일을 먹을 때 쓰는 귀여운 삼지창이랑 이름이 똑같구나, 하는 게 내 상식 수준이다. 반드시 포크를 해야 할 이유는 없다. 다만 힙합이 아닌 말하듯이 하는 음악에는 이런 것들이 있었다. 김광석도, 밥 딜런도 포크다. 양희은도, 사이먼엔 가펑클도 포크다. 송창식도, 장기하도, 요조도 포크다. 그 외에도 수도 없이 많은 포크 가수들이 있었다. 


위키백과에는 포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컨템포러리 포크 음악(영어: contemporary folk music)은 20세기에 생겨난 대중 음악 장르이다. 각 나라와 지역의 민요(포크 음악)에서 파생했으나, 전통민요(영어: traditional folk music)와는 구분되는 새로운 장르로 자리잡혔다.

포크송(folksong)이란 한국어의 '민요'에 해당하는 말이나,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는 포크송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영어이기에 대한민국에서 사용하는 용례는 미국과 캐나다의 민요와 미국에 대한 영국(잉글랜드)계 민요 등, 앵글로색슨 국가의 민족민요를 가리키는 것이 대부분이다. 비영어권 국가의 민요는 월드뮤직으로 분류한다. 그것도 전승적인 옛 민요와 새로운 창작민요를 모두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민요?! 민요라면 '경복궁 타령'이나 '밀양 아리랑' 아닌가? 

다시.. 찾아보았다. 


나무위키에서는 포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그렇지 않은 장르도 드물겠지만 포크 또한 그 영역이 넓은 편이다. 포크의 뜻은 일반적으로 두가지로 나뉘는데,

1. 어떤 나라 고유의 '민속' 음악. 민요 - Traditional Folk(트래디셔널 포크)라 불린다.

2. 미국에서 시작된 간단하고 쉬운 구조의 노래들. - Contemporary Folk(컨템포러리 포크)라 불린다.

2-1. 민중에 의해 불려지는 노래. - 민중가요가 이 분류에 해당한다.


민요보다는 2번의 뜻인 것 같은데, 민중가요?! 

민중가요라면 노찾사부터 조국과 청춘, 윤민석과 우리나라...라고 하는 운동권 노래 아니던가?  

한대수 선배, 김민기 선배, 양희은 선배 등 한때의 금지 가요였던 선배님들의 명곡을 떠올리면 민중가요가 틀린 말은 아닌 듯하지만, 민중가요는 대중가요의 반대말로 쓰이기도 하는데?! 처음부터 대중가요를 하기로 했던 나는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다. 


일단은 '포크', 그게 무엇이든. 

포크를 알아보려고 하다가, 머리는 더 복잡해지고 말았다. 결국 장르에 대한 고민은 할수록 난해한 것이라 시간을 끌지 않기로 했다. 


장르가 주는 안정감은 일종의 소속감과 같다. 

일단 포크 뮤지션이다,라고 마음을 정해버리고 나면 주변에 나를 소개하기가 더욱 쉬워진다. 이제는 비로소 '무슨 음악해?'라는 물음에 쉽게 답할 수 있는 모법 답안을 준비한 것 같았다. 하지만 꼭 포크가 아니어도 된다. 또 포크로 시작했다가 어려우면 그때는 다른 장르로 바꾸어도 무방하다. 나는 음악을 하고 싶은 것이지 포크를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장르를 이렇게 저렇게 바꾸어가면서 음악을 하는 게 더 재밌을 것도 같다. 


포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라고 한다. 

악기는 배우면 되고, 노래도 배우면 된다. 노래나 연주의 기교가 아닌 마음과 태도라니 정말이지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나는 이 음악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 이제 기타를 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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