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운 삶을 살아도 괜찮다
삶의 방향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으니 모든 시간이 새로운 미래로 향해있다. 사랑과 삶의 가치를 한 군데로 모을 수 있어 폭발적인 집중을 만든다. 좁고 한정적인 세계가 아니라 바다처럼 막막할 정도로 드넓게 펼쳐진 인생을 마주할 때 나에게 이런 반응이 일어나는 것 같다. 그 세계를 함께 바라봐주는 이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나의 인생은 책과 글에 바짝 붙어 있다. 그 말은 책상 앞에서 비정상적으로 긴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익숙하다는 뜻이다. 책과 글은 보통 타인과 함께하기보다는 혼자만의 영역에 속한다. 이런 특성 덕분에 홀로 있는 시간을 외로움이나 고통 없이 기꺼이 즐길 수 있다. 나의 독일인 연인은 자연과 음악에 몰두하기를 좋아하며 프로그래밍과 개발자의 삶에도 최선을 다한다. 오랜 세월 친구들과 켜켜이 쌓은 문화가 있으며, 가끔은 일과 파티, 음악 프로듀싱, 사이클링 등 바쁜 일정이 숨 쉴 틈 없이 몰아칠 때도 있다. 다른 나라에서 다른 시간을 사는 연인들이라, 우리는 힘들고 지친 날에 가끔 아득한 고독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거리 연애가 기이하게도 무탈하게 흘러가고 있는 까닭을 생각해 보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확신.' 이를 위해서 작년부터 나에게 물었던 질문이 있다. '이 연애에서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나는 무너지지 않고 감당해 낼 수 있는가?' 상상도 하기 싫은 시나리오들을 떠올려보면 그전에 내가 해야 하거나 준비할 수 있는 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연애에서 최악의 상황은 이별 혹은 상대에게 다른 사랑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를 떠올리니 '혼자 남겨지더라도 가장 기쁘고 강력하게 삶을 끌어안을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벌이도 돈벌이지만, 사랑을 하는 것만큼이나 황홀하고 큰 만족을 주는 일을 끝까지 붙잡으며 살고 싶었다. 그렇게 책과 출판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고, 프리랜서 번역일을 조금씩 해나가고 있다. 장거리 연애의 특혜(?!)로 나에게 허락된 1년 남짓한 시간을 오롯이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고 꿈꾸던 일로 다가가는 것에 힘쓰고 있다. 이렇게 하면 자기에게 집중하는 에너지가 고스란히 사랑을 연장시키는 연료가 된다. 게다가 자기 세계를 가꾸는 에너지는 실로 대단해서 상대에게 조금 더 오랫동안 내가 가장 좋은 친구이자 파트너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렇게 '자립도'를 높이는 쪽이 개인과 관계 모두를 위해 좋다.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면 매 순간 더 나은 결정을 내리게 된다.
서로 사랑에 대해 느끼는 감정 깊이가 비슷하고, 정말 많은 대화로 서로의 가치관을 솔직하게 나누다 보면 그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신뢰감이 생긴다. 그 믿음은 '이 사람은 흐트러짐 없이 나만 바라봐줄 거야'가 아니라 '우리는 같이 만드는 우리만의 세계를 그리며 기대하고 있다'는 확신에 가깝다. 그러한 의지는 억지로 생성할 수 없다. 각자의 삶에서 펑펑 솟아오르는 에너지가 우연히, 기적적으로 맞닿는 일이다. 쉽지 않은 환경에서 함께하고 싶은 의지가 강렬한 게 얼마나 소중하고 확률이 낮은 일인지 안다. 이전까지 고단한 연애를 겪으며 세포 하나하나 시리게 깨달은 일이다.
2023년 1월 중순부터 2월 중순까지 한 달을 독일에서 보내며 마르코의 가족과 친구들을 만났다. 독일을 떠날 때는 앞으로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몰라 서로 종일 울었다. 그리고 6개월 뒤인 그 해 여름에 한 달 휴가를 얻은 마르코가 한국을 찾았고, 가을과 겨울을 따로 보내고 202일이 지난 후 올해 봄에 벚꽃과 함께 다시 한국에서 한 달을 머물렀다. 작년에 연인은 아빠를 먼저 만났고, 올해는 엄마를 꼭 만나보고 싶어 했다. 코로나 후유증으로 쇠약해진 엄마는 오랫동안 우울과 불면을 이불처럼 덮고 지냈다. 아빠와 내가 여러 번 설득했지만 엄마는 삶에 새로운 사건이 생기는 것 자체만으로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는 것처럼 보였다.
엄마는 한 번도 내가 만나는 사람의 이름을 제대로 부른 적이 없었다. 그들은 언제나 엄마에게 '그 애' 혹은 '그놈'으로 불렸다. 못된 의도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당신의 세계에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의지가 담긴 가혹한 명칭이었다. 사람을 직접 만나보고 판단해야지,라고 해도 엄마는 언제나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런 엄마를 너무 잘 알기에, 이번에도 욕심을 내려놓으려고 했다. 그런데 부산에 도착한 첫날, 엄마가 용기를 내서 마음을 바꾸었다. "이미 부산에 왔으니까, 네가 마음 아파할까 봐 보는 거야." 곧 아빠에게서도 전화가 왔고, 금요일에 우리가 함께 먹을 점심 메뉴는 엄마의 소울푸드인 '대게'로 정해졌다.
연인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현관문을 열 때까지도 이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복도 끝 안방에서 엄마가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다가왔다. 연인은 서툴고 귀여운 한국어로 엄마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래, 어서 와." 엄마와 마르코가 눈길을 주고받았다. 엄마의 눈빛이 긴장과 부드러움으로 흔들렸다. 이 일련의 사건이 5초 안에 일어났다. 하지만 이 짧은 시간이 나에게는 거대한 판이 움직여서 마치 부산 옆으로 유럽대륙이 톡 하고 붙은 것과 맞먹는 충격을 선사했다. 봄을 만나 녹아내리기 직전에 놓인 얼음처럼 엄마는 그렇게 더는 숨길 것 없이 펼쳐진 나의 세계로 들어왔다. 엄마는 연인을 이름으로 불러주었다.
살아온 문화권이 다른데 유머 코드가 희한하게 잘 맞을 수 있다. 독일 사람을 누가 재미없고 진지하다고 했나! 엄마는 늘 가족과 손님들에게 음식을 끊임없이 권유하는 걸로 유명하다. 외국인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집에서 이미 딸기를 한가득 먹고 요구르트까지 마시고 왔는데, 끊임없는 음식의 향연에 위가 늘어질 것만 같았다. 한국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음식이 목까지 찼다'라고 이야기해 주니 마르코가 '독일에서는 이럴 때 음식이 귀로 튀어나온다고 말한다'며 마치 귀에서 음식이 폭발하듯 나오는 현란한 손 동작을 보여주었다. 아빠의 박장대소와 함께 조금은 심각하던 엄마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마르코와 나는 부산에서 고모와 고모부도 다시 만났고, 대전에서 이모네 가족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연인이 독일로 떠난 후 이것저것 물어보는 엄마의 목소리가 한결 가벼워졌다.
독일에서 보내는 첫여름. 낮에는 뜨거운 열기가 가득하다가 밤에는 가을처럼 차가운 바람이 분다. 한국보다 7시간 전으로 건너온 나는 늘 오전 6시나 7시쯤 잠이 깬다. 침대에서 곧장 일어나지 않고 창문에 어스름한 푸른빛으로 묻어 있는 하늘을 바라본다. 창문을 열어두고 잠이 들어서 바람이 빼곡한 나뭇가지 틈새로 통과하는 소리, 새들이 우는 소리가 그대로 귓가에 들린다. 서울에서 지내고 있는 집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거기서는 창문 틈새를 막아도 어디선가 모기와 벌레가 들어오고 금세 자동차 먼지가 시꺼멓게 쌓인다. 어쩔 수 없이 문을 꼭 닫고 살기 위해 내키지 않는 에어컨도 켜야한다. 이곳의 여름밤은 생각보다 더 춥지만 맨 공기가 좋아서 창문은 그대로 열어두고 겨울 후드티를 입는다.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되는 자연스러운 삶이라니.
일할 거리들을 소파에 두고 벽 하나 크기만 한 창문을 통째로 연다. 집을 둘러싼 오래된 큰 나무들이 맑은 공기를 아낌없이 보내준다. 독일 시간으로 오전 10시에서 11시 정도, 한국 시간으로 오후 5시에서 6시 사이 정도가 되면 부모님께 영상통화를 건다. 안부와 함께 프리랜서로 시작한 일의 진행 상황도 공유한다. 통화는 그렇게 길지 않지만 매일 내가 원하는 건강한 행복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고 있다. 숨기지 않아도 괜찮은 보통의 삶이 지난 10년 동안 얼마나 간절했는지. 부모님과의 의견 차이를 가능한 평화롭게 극복하고, 인생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을 푸는 열쇠는 '단단한 자기 확신'에 있었다. 시행착오를 거치고 이제는 확실히 알게 된 것들이 분명하고 나다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이끈다.
마음껏 공부하고 사랑할 세계가 출렁인다. 나의 확신 위로 실제적인 행동이 쌓인다. 과정과 여정 자체가 빛나는 인생이라면, 그 어떤 결과라도 향기로울 거라고 믿는다. 기이한 자연스러움. 그 안에서 편안히 숨 쉬는 사랑. 이곳에서 보낸 절반의 여름동안 건강한 기운을 머금고 있다. 습관이 되어버린 긴장을 내려놓고 조금 더 기쁘게, 우연과 기회를 받아들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