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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장에는 쌀국수

by WineofMuse

인수의 사회 초년생 시절, 당시에는 술을 즐기지 않던 때라 술보다는 해장을 먼저 배웠었다.

선배들이 고기라도 먹이겠다며 술자리를 굳이 막내를 끌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래도 부장이랑 술을 마시고 결근을 한 것이니 정상참작은 되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를 품어본다.


‘아님 말고.’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 벤치에 앉아 장문의 사죄문자를 부장님께 보내곤 눈을 질끈 감았다.

기왕 이렇게 된 마당에 해장이라도 시원하게 하고 시원하게 깨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를 불러낼 심상에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전화기의 단축키를 누른다.


“안녕하십니까. 대원 물산입니다.”


넉살 좋은 후배가 너스레를 떨며 받아친다.


“네네 사장님 별일 없으시죠?”

“네? 일층이시라고요? 네! 지금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예. 예..."


짜고 치는 고스톱치고는 영 맛이 안 사는 뻔한 레퍼토리이지만 김대리와는 모종의 계약이 암암리에 성사되어 있던 터였다.

해장이 시급할 때면 결성되는 나름의 베스트 해장파트너 인 셈이다.


“대리님 어제 많이 드셨어요?”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 눈웃음을 치며 능청스럽게 물어본다.

사실 어제의 술자리는 김대리 땜질로 불려 간 것인데...라는 야속한 마음이 밀려왔지만 어디까지나 장난스러운 야속함이었다.


“해장하러 가야지?”

“네. 가시죠. “


후배는 씩씩하게 길건너의 식당으로 성큼 걸어갔고 나는 그 뒤를 휘적휘적 따랐다.


“두 개요.”


주인아저씨는 우리의 얼굴만 보고도 이른 점심시간에 방문한 이유를 알았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늘 정해진 식순대로 김대리는 재빠른 손놀림으로 식탁 위를 정비했다.


“고수 듬뿍 숙주 듬뿍 해선장에 칠리소스 양파절임 비비고.”

“그걸 꼭 입으로 해야겠니? 좀 속으로… 아니다.”


인수는 재밌는 농담이 생각나지 않는 듯 괜한 타박을 해보려다 속이 메슥거려 그마저도 관둔다.


“나왔습니다.”


주인아저씨의 뭉툭한 한마디에 하던 이야기를 잊고 그릇을 응시했다.

향긋한 한약재 향의 열기가 얼굴을 스쳐간다.

숙주를 젓가락으로 포개듯 집어 그릇 바닥으로 깊이 밀어 넣고 고수도 한 움큼 뜯어 넣었다.

오목한 숟가락으로 뜨거운 국물을 크게 떠 연거푸 떠 마셨다.

식도가 흐물거리듯 사르르 녹으며 비장이 숨을 쉬듯 펄떡거리는 느낌이 났다.

과장스러운 표정을 내세워 괜한 너스레를 떨며 말을 꺼내본다.


“어우… 야 어제 술 먹길 잘했어. 이?”


심 부장에게 당한 대로 성대모사를 해보려 했지만 김대리도 이골이 난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만류하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이마에 땀이 송글하게 맺히고 머리에는 김이 난다.

칠리소스 조금에 해선장을 살짝 넣어 얼큰하게 만든 국물을 빨아들이듯 마셔본다.

향긋한 고수 내음이 어금니를 두루 다녀가고 조각난 숙주 조각을 씹으며 해장이 마무리된다.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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