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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호 Dec 02. 2024

세상에서 가장 비싼 커피

#라떼는 #나 때는 

오랜만에 아버지와 식사를 했다. 고기를 구우며 수다를 떠는 데, 여든에 가까운 아버지가 대학 때 친구들과 처음으로 미팅을 하였던 이야기를 하며 스무 살 그때로 되돌아간 표정이다. 아버지는 친구가 많다. 모두 오십 년이 넘게 만난 친구들이다. 반백년을 같이 한 친구들은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살아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다. 


"아버지, 그 친구분들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해요?" 


아버지는 웃으며 괜히 얼굴을 긁는다. 아주 잠시 '그러게 우린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바로 나온 대답은, 

 

"뭐 매냥 쓸데없는 얘기 하는 거지. 헛소리나 해대고." 


아, 그렇구나. 내가 삼십 년 지기를 만나서 그렇듯이 오십 년을 만나도 그냥 아무 일 없이 즐거운 것이 친구로 구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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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이란 말이 한참 유행하였다. '나 때는'의 차음으로 '라떼는'은 얼마나 재미있는 표현인가. 이제는 이 단어를 쓰는 것 자체가 진부해져 어디서도 잘 듣지 못하게 되었지만 '나 때는', '나 때는' 하며 훈계질하는 꼰데들의 꼰데질을 표현하기에 이 '라떼는'이란 말보다 더 적절한 표현도 없지 않나 싶다. 


업무 탓에 사람들과 만나야 할 일이 많다. 만나는 상대는 나보다 한참 어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분위기를 좀 편안하게 하기 위해 되지 않는 농담을 건넨다. 영업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원체 실없이 사람들을 웃기는 것을 좋아한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나의 경험과 경력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면 이야기는 지금과 비교하며 나 때는, '라떼는'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모든 '라떼는'이 훈계를 하거나 동감을 얻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살아온 시대가 다르니 달랐던 이야기를 할 뿐이다. 하지만 누군가 '라떼는'을 이야기할 때는 그에게 뻐길만한 경험적 자산이 있다고 이해해야 한다. '라떼는'은 그 당시를 살아보지 않고는 절대로 알 수 없는 노장들의 생생한 육성 체험담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경험이 이미 다른 사람들에게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본 말일 수도 있고, 애당초 남의 귀에 앉은 딱지처럼 나에게 무용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운이 좋다면 우리는 그 라떼는 안에서 우리 인생의 궤도를 바꿀만한 엄청난 힌트를 얻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비유가 있다. 법륜 스님의 법문 중에 나왔던 말이다. 사람들은 좋은 말을 들으면 바가지로 빗물을 받듯이 각자가 자기 그릇의 크기대로 그 말을 받아들여 삶에 적용한다. 작으면 작은 데로, 크면 큰 만큼. 같은 말을 듣고도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마다 제 각각이다. 그런데 그중에 아무리 좋은 말을 많이 해주어도 한마디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바가지를 거꾸로 뒤집어 들고 있는 사람, 아무리 좋은 말을 하여도 들을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라떼는'은 진부하다. '라떼는'은 구식이다. '라떼는'은 이제 무용하다. 하지만 주변에 '라떼는'을 많이 가진 사람은 그만큼 많은 체험담을 들을 수 있고, 인생의 귀한 시간을 낭비하고서야 얻을 수 있는 삶의 노하우를 들을 기회가 있다.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대표적인 것이 시간이다. 시간을 지내보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는 것이 '라떼는'이니 '라떼는'을 듣는 것은 가장 비싼 커피를 한 잔 마시는 것이다. 


'라떼는'을 소중히 하자. 누군가의 '라떼는'을 듣는다면 당시의 분위기를 상상해 보고 시대극 속의 주인공처럼 그 속의 인물이 되어 그 뜨거운 라떼 속으로 풍덩 빠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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