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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호 Dec 03. 2024

창의가 신나게 춤추게 하라

작은 가게에서 배운다

새벽에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일곱 시에 문을 여는 커피집에서 커피를 주문했다. 가게 안에는 자은 테이블이 두어 개 놓여 있는 테이크아웃이 전문인 가게이다. 주문을 하는 키오스크가 옆에는 놓여있는 작은 화이트보드에 누군가 매일 그림을 그린다. 날씨에 어울리는 메뉴를 추천하는 그림도 있고, 자기가 좋아하는 야구 선수를 응원하는 그림, 크리스마스까지 며칠 남고 올해가 며칠 남은지를 카운팅 하는 내용 등등 그림은 위트가 넘치고 수준급이다.


오늘은 내가 두 번째 손님이다. 영수증에 적힌 숫자를 보면 내가 그날 몇 번째 주문인 것을 알 수 있는 데, 보통 나는 이 가게의 1번을 놓치지 않는다. 첫 빠따를 놓치면 차라리 3번이나 7번의 행운의 숫자가 좋은 데,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잠시 했다. 오늘은 작가님이 화이트보드에 무슨 그림을 그려 놓았을 까 궁금했는 데, 큰 공 같은 것이 화이트보드를 떡 하니 가리고 있다.


뒤로 찔끔 보이는 화이트보드에는 '대왕 커피콩'이란 설명이 적혀있다. 하하, 이게 뭐지요? 내가 주문한 커피를 뽑고 있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물어보니 다른 알바생이 가져다 놓은 것이란다. 내친김에 평소에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이 보드에 그림은 어느 분이 그리는 것인가요? 알바생은 씩 웃으며 두 손 엄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저요!라고 대답했다. 드디어 찾았다, 이 동네 화가 선생!


지난 몇 달 동안 매일 이 가게에서 커피를 픽업하며 화이트보드에 그려진 그림을 보며 낄낄 거렸는 데 드디어 작가를 만나니 반가웠다. 그녀는 근처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는 1학년 학생이라 한다. 역시 그림이 범상치 않더라니! 그림과 글의 내용이 너무나 재미있고 창의적이었다. 가볍고 웃기고 혹은 솔직하게 감동을 주는 그림과 글. 나도 누군가를 웃음 짓게 하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나는 작은 가게에서 알바생들이 꾸미는 창의적 시도에 찬사를 보낸다. 이 가게의 유리문에는 또한 알바생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할로윈에는 거미줄과 호박이 있더니 눈이 오니 다시 눈 그림으로, 크리스마스에는 산타와 루돌프가 있으려나. 창 위에 희 페인트로 그린 손그림은 정감이 넘친다.


작은 가게 속에 창의적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우선 참여와 창작을 위한 공간을 허락하는 일이다. 작은 가게일수록 공간은 한정적이고 작은 변화가 분위기, 특히 통일된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큰 영향을 준다. 특히 프랜차이즈 가게에서는 매뉴얼을 벗어나 개인에게 어떤 부분을 마음대로 꾸며보라는 말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가게에는 유독 미대를 다니는 알바생이 많다. 경상도 출신 사장님은 '그림을 그린다꼬? 그럼 여다 한번 이쁘게 그려봐라.' 했을 것이다.   


두 번째로는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동기부여이다. 돈으로 될 일이 아니다. 작가가 되려는 자는 자기의 그림을 보고, 글을 읽고 울는 웃는 관객의 반응이 창작의 가장 큰 동기가 된다. 여기 너의 무대가 있다 여기서 한번 멋지게 놀아봐라! 하면, 가슴속에 갇혀 있던 예술의 혼불이 스멀스멀 솟아올라 자신의 무대 위에서 신나게 춤을 추고 노래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가장 오래 머무는 키오스크 앞에 화이트보드라는 무대를 펼치어 주니 알바생들은 그 위에 자발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런 자발적 참여와 시도가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구성원 간의 '느슨한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느슨한 관계는 서로를 속박하지 않는다. 공통된 목표를 위한 각자의 역할을 다할 뿐 상하의 관계가 없다. 공통된 목표를 향해 모두가 함께하는 크루이자 동료인 셈이다. 이런 동료들 사이에는 명령과 강요 대신 자율과 참여가 있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며 타인의 다양한 방법의 기여를 인정한다. 사장과 아르바이트생들, 아르바이트생들 간의 느슨한 관계가 오히려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이곳을 자기 가게처럼 꾸미게 하는 적극성을 가지게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작은 가게를 보며 나의 사업을 생각한다. 구성원들의 창의를 끌어내고 신나게 춤추게 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모두가 자신의 혼불을 끄집어내고 무대 위에서 한바탕 신나게 춤을 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나 또한 그들과 함께 하나 되어 리듬에 맞추어 온몸을 흔들려면 어찌하여야 하는가? 작은 가게들을 보며 항상 많은 것을 배운다.


아주 바쁜 하루였다. 코엑스에서 열린 무역 상담회에 참가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꼼꼼하게 바이어들과 만났다. 바쁜 것은 좋은 일이다. 빠른 삶의 속도는 에너지를 끌어올린다. 다만 우리는 끌어다 쓴 에너지를 채우기 위하여 충분한 영양과 적절한 휴식이 필요하다. 잘 먹고 잘 자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모두에게 내일을 위한 평화로운 밤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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