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교시간이 되면 마차는 호박으로 변합니다.
[일년 반만에 쓰는 글]
아이를 키우는 집이 다 그렇지만 출가하기 전까지는 아이들 일정에 모든 것이 맞춰진다. 아이들이 갓 태어났을때는 이녀석들 먹고싸고자는 싸이클에 모든 것을 맞췄고, 데이케어를 다니기 시작하면 다른 부담은 좀 적어지지만 하교후 씻기고 밤잠 재우는게 또 큰 일이다. 학교를 다니면 오히려 하교 시간이 빨라진다. 2시10분에 학교앞에서 픽업. 조금이라도 늦으면 즈네들을 기다리게 했다고 난리가 난다.
나는 화요일이 오프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아내도 화요일은 가능하면 일을 잡지 않으려고 한다. 이유는 둘만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 아이들을 8시까지 학교에 보내놓고 나면 집으로 와서 서둘로 청소와 데이트 준비를 한다. 9시 전에는 집에서 나가는 것이 목표다. 2시까지 다시 학교앞으로 돌아와 있어야 하니까 이동하는 시간 빼고나면 3-4시간 정도가 우리에게 주어진다. 이 사이에 뭘하든 자유지만 2시까지는 다시와야 된다.
뉴욕버스는 워낙 막히고 지하철도 운행을 중단하고 다음걸 갈아타라는 식의 일이 워낙 자주 벌어지는 지라 불안한 마음에 조금 일찍 나선다. 허겁지겁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파티에가서도 밤 12시를 넘기지 못하는 신데렐라 같다며 서로 웃는다. 그래도 애들 키우고 집안일 하느라 바빠서 서로 대화도 하기 힘든 중에 이런 시간을 가지는건 너무 필요한것 같아서 화요일이면 어떤 사명감 같은걸 가지고 집을 나선다.
뉴저지, 퀸즈, 브루클린, 브롱스 등등 여러곳을 가려 하지만 역시 가장 많이 가게 되는 곳은 당연히 맨하탄. 갈때마다 그날의 테마가 나름 선명하다. 3-4시간 밖에 없으니 아무생각없이 마냥 나설수 없기때문에. 어느날은 메트로폴리탄만 보고 돌아오고, 어느날은 차이나타운에서 딤섬을 먹고 돌아오고, 브루클린 브릿지를 걷고 돌아오고, 센트럴파크주변에서 걷고 오고...
이번엔 타임스퀘어와 터키레스토랑이다. 유튜브를 보다가 카이막과 케밥을 먹고싶어졌는데, 인근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뉴저지란다. 이 날씨 좋은날 그래도 맨하탄엘 가야지하고 검색해보니 타임스퀘어랑 센트럴파크사이에 몇군데가 검색된다. 그래 오늘은 타임스퀘어에서 사람구경도 좀 하고 케밥도 좀 먹어야지.
타임스퀘어에 무사히 도착했다. 딱 여기까지만 계획된대로 됐다. 일단 오늘은 관광객 모드로 놀기로 했으니 충실히 다녀보자. 엠앤엠과 허쉬초콜릿가게에 들러간다. 허쉬에 들어갈때는 초콜릿 하나라도 공짜로 나눠주는데, 엠앤엠은 그런게 없다. 그래도 앰엔엠에는 화장실이 있어서 인심이 좋다는 느낌을 받는다. 담에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초콜릿이 많고 비쌌다. 잡생각을 하면서 더 걷기 시작한다.
날씨도 조금 쌀쌀하고 왠지 터키음식이 먹고 싶지 않아졌다. 마침눈에 Sichuan 식당이 눈에 들어온다. 중국음식은 아무도 못이기지. 아내에게 메뉴변경을 요청한다. 자비롭게 허락해주신다. 사실 중식은 아내의 최애이기도하니 윈윈이다.
중식당앞에서 서점을 하나 발견한다. 지난주에 브루클린에 갔을때 보았던 서점이름인데 여기도 있구나. 맥넬리잭슨 McNally Jackson Books Rockefeller Center. 안에도 잘꾸며놓았고, 무엇보다 아이들 책이 충분히 많아서 좋았던 기억이다. 들어가서 책을 좀 읽다가 그 앞에서 방송촬영을 하길래 구경을 한다. 우리는 누군지도 모르는 미국연예인이지만 그래도 유명한사람인가 하여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사천식당. 코로나 이후로 물가가 엄청나게 올랐는데 아직 런치 12.99가 있다니 놀랍다. 나의 패보릿. 더블쿡드포크밸리와 와잇라이스를 시키고 나와서 또 걷기 시작한다. 원래계획인 터키음식이 아니지만, 훨씬더 만족스런 기분이다. 난 원래 새로운 음식을 시도하기 보다는 먹던걸 먹기를 선호한다. 중식은 더블쿡드포크밸리, 한식은 순대국밥, 파스타는 펜네보드카, 도너츠는 보스턴크림, 커피는 브루 혹은 라테, 패트스푸드는 칙필라, 피자는 페퍼로니, 일식은 찌라시.
먹으면서 주변을 검색해보니 그랜드센트럴역이 바로 옆에 있다. 가십걸의 그 그랜드센트럴. 가보자. 참 사람들이 많다. 예전 서울역도 그대로 남겨뒀으면 이만큼은 아니라도 참 멋스러웠을텐데, 저중에서 몇명이 관광객이고 몇명이 기차를 타는 사람일까? 천정의 그림은 누가 그렸을까? 가십걸의 그 주인공은 엄청 부자 같더만 차를 안타고 왜 기차를 타고 뉴욕에 들어오는 설정이었을까?
여기서 바로 집으로 가려니 아쉽다. 아직 40분 정도가 더 있다. 노래방에서 시간을 남기고 나오는 느낌이라서 마지막까지 더 놀아보기로 한다. 마지막 곡으로 말달리자 같은 느낌이다. 사람들이 센트럴파크보다 더 좋아한다는 브라리언트파크가 코앞이다. 거기가서 놀다가 거기서 지하철 타자.
도착하니 정말 사람이 많다. 브라이언트 파크는 설명이 필요없는 명소다. 바로 앞에 있는 NYPL(뉴욕공공도서관) 건물도 정말 강추하는 곳. 책을 읽을 필요는 없고 건물외부와 내부만 구경해도 충분하다. 하지만 오늘은 날씨가 좋아지고 있으니, 게다가 시간도 없으니 공원만 가기로 한다. 잔디에 앉을까 의자에 앉을까 고민하는데 어디서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베이스 소리도 들린다. 재즈다. 어디서 연주하는건가 아니면 스피커에서 나오는건가? 코너를 도니까 저렇게 한팀이 연주를 하고 있다. 앉아서 잠시지만 음악을 즐기다가 나도 피아노나 배워볼까 하는 쓸데 없는 생각을 잠깐 한다. 하지만 집에 있는 키보드도 10년이 다되어가는데 나는 도레미파 정도만 칠수 있으니 잡념은 그만하자. 음악은 역시 듣고 즐기는 것.
아내가 시계를 본다. 나는 신데렐라 일낼라~~ 종이 울린다. 지하철을 타고 현실로 돌아가야 할 시간. 오늘도 정말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