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게 있을리가...
아이들이 일찍 잠들것 같은 날은 설렌다. 밖이 어두워지기 전에 달릴수 있기 때문이다. 뉴욕의 8월은 아직 더워서 낮시간에 뛰는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너무 어두울때만 뛰다보니 그것도 좀 그렇다. 저녁 8시 조금 넘어서 가장 뛰기 좋은 시간. 트랙이 문을 닫는 10시까지는 아직 시간이 충분히 남았다. 오늘은 10km를 뛰려고 한다.
2018년이었던 것 같은데, 내가 어른이 되고 처음 10km를 뛰었을때 56분 정도 걸렸던것으로 기억한다. 그뒤로도 1시간전후로 뛰었다. 지금도 그럴수 있냐고? 아니다. 지난 1년동안 거의 뛰지 않다가 2주 전에야 다시 뛰기 시작했다. 목표시간은 1시간 10분안에 들어오는 것. 6.25마일을 뛰면 10km다. 지금 뛰는 트랙이 400m니까 25바퀴만 돌면된다.
시간 기록은 일단 제쳐둔다. 천천히. 완주하는게 목표다. 지금부터 3달후에 하프 마라톤을 뛸 계획이거등. 그때 2시간안에 들어오는 것을 목표로. 달려본 사람들은 알지만, 2시간안에 들어오는게 쉬운건 아니다. 그렇다고 뭐 어디가서 자랑할 기록도 아니다. 그냥 아내한테나 자랑해야지.
첫 1마일 즉 4바퀴는 12분 페이스로 뛰었다. 1마일을 뛰는데 12분 걸린다는 뜻이다. 그래도 며칠 운동했다고 아직 땀이 나거나 호흡이 가빠지지는 않는다. 몸이 슬슬 풀리기 시작한다. 몸이 풀리고 나니 두번째 마일은 조금 빨라졌다. 11분 페이스였다. 이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몸이 풀린다고 속도를 올리는 것이다. 그랬다가는 절대로 10km를 뛸수 없다. 내가 달릴수 있는 속도와 지금 달려야 하는 속도는 다르다. 세번째 마일은 좀 이상했다. 속도를 10분초반 페이스로 올렸는데 나쁘지 않았다. 원래 이쯤에 무릎이 아프거나 숨이가빠야 하는데 생각보다 개운하다. 지난 2주 동안 꾸준히 뛰어서 그런것 같다. 비오는날도 나와서 일단 짧게라도 뛰었는데 그 효과를 보는것 같다. 네번째 마일은 이제 땀이 나기 시작한다. 속도는 계속 10분초반. 그 이상으로 올리는건 지금은 무리다. 하지만 하프마라톤을 2시간 안에 들어오려 한다면 9분페이스를 유지해야 한다. 갈길이 멀다. 다섯번째 마일도 10분초반이다. 지금은 속도를 유지하는게 관건이다. 트랙에서 뛰다보니 왼쪽무릎에 하중이 조금씩 더 실리는것 같다. 길을 뛸때랑 다른 점이다. 다음번에 길게 뛸때는 반대로 뛰어봐야겠다. 여섯번째 마일은 10분중반대로 조금 늦어졌다. 그래도 끝이 보인다. 이제는 호흡도 가빠진다. 하지만 무릎통증은 사라졌다. 복근이 땡기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배가 다 들어가겠는데'라는 착각을 잠시 해봤다. 이제 마지막 한바퀴다. 속도를 끌어올려봤다. 7분페이스. 심장이 터질것 같다. 숨도 턱턱 막히고. 다리도 더 안 나간다. 그래도 어거지로 레이스를 마쳤다. 1년만에 뛴 10km 기록은 1시간 06분. 이렇게 12주만 더 연습하면 하프마라톤을 뛰게 된다는거다. 그것도 내가 목표했던 2시간 안쪽으로. 되겠지?
공원 문닫을 시간인 10시가 다 되어간다. 경찰차가 주차장에서 불을 깜빡이며 서 있다. 아직까지 주차장에 남아있는 차는 3대 정도인데, 그 차들이 하나하나 나갈때까지 바로앞에 차를 대고 재촉해주고 있다. 아직 시간이 몇분 남았기에 천천히 가도 되지만, 그래도 늦게까지 수고하시는 경찰님들께 민폐를 끼치면 안되겠다 싶어서 남이 줄줄 흐르는 채로 차에 시동을 켠다.
"10km를 달리고 나면 알게되는것?" 별거 없다.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기어가더라도 끝은 난다는 것. 무리해서 뛰면 엉덩이가 쓸려서 엄청 따갑다는 것. 쓸린부위에 바셀린이 아니라 아토피크림을 바르면 더 따갑다는 것. 밤에 뛰면 그나마 좀 덜 덥다는 것. 뛰면서 배가 아프길래 복근이 생긴줄 알았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다 꿈이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