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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롱쓰 Jan 04. 2019

[그린북]

클리셰지만, 조금은 더 풍부하게 그려낸 인종이야기

뉴욕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바운서로 일하는 토니 (비고 몬테센)는 우연한 기회에 저명한 피아니스트 셜리박사 (마하르샬라 알리)의 운전수로 미국남부 연주여행을 함께 하게 된다. 그의 개인 운전사이자 경호원, 때로는 친구로. 시대적 배경은 1962년. 지리적 배경은 미국남부다. 흑/백 분리정책이 아직도 여전할때다. 백인 운전사와 흑인 피아니스트 이 둘이 한차에 타고 뉴욕에서 떠나 남부 깊숙히 (Deep South) 여행한다니, 게다가 1962년이 배경이라니. 이 영화가 그려낼 남부에서 장면들은 굳이 영화를 보지 않아도 알수 있을만큼 분명하다.


#Freedom Riders

이 영화를 보며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는 사건이 하나 있는데 바로 1961년 있었던 프리덤라이드다. 영화의 배경인 1962년 바로 일년전 CORE라는 신생 민권운동단체는 남부의 공공운수시설에서의 차별적 행태를 고발하기 위해서 14명의 팀원을 두대의 버스에 나눠 태워 보낸다. 디씨를 떠나 뉴올리언스를 향하는 여정중에 이들이 만난 상황은 너무나 잔혹했다. 경찰의 묵인하게 버스를 불태우고 마음껏 폭력을 휘두르던 KKK단, 시위대에 물대포를 쏘며 경찰견으로 공격하던 공권력 등.


이 영화는 주인공들을 버스에 태우지는 않았지만, 흑/백이 한 차에 타고 남부를 여행한다는 유사한 테마를 사용한다. 공식적으로는 인종간차별이 금지됐지만, 남부에서는 여전히 백인전용/유색인종 전용이 구분되던 때였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이 "그린북"이다. 그린북이란 운전사 토니가 들고다니는 책인데, 유색인종들이 남부를 차로 여행할때 필요한 일종의 가이드북이다. 그 안에는 유색인들이 머물수 있는 호텔, 식당등 정보가 빼곡히 담겨있다.


실제 그린북 이미지. "그린북을 가져다니세요. 아마도 필요할겁니다." 문구가 친절하며 오싹하다.


그 “남부의 룰”을 어겼을때 토니와 셜리박사가 (아니 대부분 셜리박사가) 감내해야 했던 결과는 거절과 무시, 폭력과 감옥에 갇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린북은 남부의 법전같은 것이다. 백년전에 폐지된 노예제를 세련되게 새로운 형태로 인쇄해놓은 법전, 남부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필요한 가이드북이자 일종의 경고문.


#Driving Miss Daisy

역사적 사실 말고 이 영화를 보면 당연히 떠오르는것이 하나 있는데 Miss Daisy다. 여기선 백인여성과 흑인 운전사다. 나이가 많이 들어서도 직접 다니기를 좋아하는 데이지 여사 (제시가 텐디)는 어느날 차 사고를 낸다. 이를 걱정하던 아들이 흑인 운전수 호크 콜번 (모건 프리먼)을 고용한다. 자신을 무시하는 데이지 여사옆에서 충실히, 꾸준히 그녀를 도우며 마침내는 그녀의 친구가 된다는 스토리. 영화가 이둘을 남부로 보내지는 않지만, 이미 데이지 여사가 사는 곳이 조자아주 아틀란다다. 

말콤 X가 죽지 않고 살아서 이 영화를 봤다면, 흑인을 길들이려는 아주 사악한 영화라고 말했을 거다. 백인들 눈에 위협이 되지 않고, 충실히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해내서 그들의 위협적이지 않은 친구가 되라고 가르치는 백인들의 영화. 영화 "버틀러"에서 아버지 세실 (포레스트 휘태커)이 평생을 충실히 살아낸 그런 삶, House Niggar. 하지만 버틀러 말미에서 세실또한 그런 House Niggar들의 두 표정을 보게되며 비로소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지 않던가? 인종과 성별을 넘어선 우정을 그렸다고는 하지만, 끝맛이 개운하지는 않다. 


미스 데이지가 기존에 당연히 여기던 흑/백 인종역할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착한 흑인" 이미지를 고착화한다면 그린북은 이 보다는 조금 더 영리하다. 아니 시대가 바뀌었음을 반영한다고 말하는게 더 정확하겠다. 백인이 운전밑 잡일을 하고 흑인이 뒷칸에 앉아 상전이 된다. 백인의 언어는 거칠며, 흑인의 언어는 고상하고 교양있다. 영화 중반에 고장난 차를 고치느라 잠시 세운 들판에서 밭을 갈던 흑인들이 손하나 까딱하지 않는 흑인 셜리 (박사건 뭐건 알게 뭐람)와 차를 수리하느라 애먹는 백인 토니라는 낯선 조합을 황당하게 쳐다보는 장면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린 북. 잘 만든 영화고 아주 재미있게 보았다. 흑/백의 구도를 단순하게 그려내지 않은점이 매력적이다. 토니는 백인이지만, 그는 하층민 출신이며, 이태리 이민자 가정이다. 그가 사는 곳도 뉴욕의 브롱스. 셜리박사는 흑인이지만 고상한 언어를 쓰며 카네기홀 건물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는 가족이 없으며 동성애자 (임을 암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이고 흑/백 어느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셜리 박사역을 맡은 알리는, 블루문에서 연기가 인상적이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여기서의 연기도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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