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liquum Oct 16. 2024

만들기의 반대말은 PART.2


만들기 전문가
"날 OO이라 불러줘요."

모야에 들어가자 궁금한 눈들이 데굴데굴 구르다가 낯선 얼굴들에 맺힌다. 우리를 뭐라고 소개하지? 모야에는 작은손과 오른손이 있다. 세계관을 확장시킨 곳에서는 왼손과 뒷짐손이 있는 경우도 있다. 우린 다 큰 어른이니까 ‘큰손’이라고 할까? 어떤 모야에서는 우리를 ‘만들기 전문가’라고 불렀다. 뭔가 부끄럽지만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여기서 힌트를 얻어 구체적인 전문가가 되기로 했다. 우리는 거칠고 위험한 도구를 잘 다루는 대장장이와 특이한 재료를 잔뜩 가지고 온 재료상인으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관찰하는 기록학자로 변신했다. 우리의 역할과 별명을 소개하고  사탕, 단지, 뾰족 개구리, 살구, 뭉이 등 가슴에 써 붙인 별명을 부르며 워크숍을 시작했다.


이름이 뭐예요?
단지요!
사탕이랄까?




다시 만들기를 이해하기

물고기가 에바폼 조각들을 서로 끼우고 있다.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작은손들이 자신 있게 만들기라고 대답했다. 이번에는 본인의 만들기 작품을 가리키며 '이건 뭐를 만든 것 같아요?'라고 묻는다. 고개를 갸웃하며 '공룡이요' '괴물이요'라고 아까보다 작은 소리로 말한다. 물고기가 말하길 이것은 원래 공룡이었고 그 후 새가 되었다고 했다. 새는 다시 외계인이 되었고 다시 벨보이 복장을 한 폭스테리어에서 달팽이가 되었다. 그리고 달팽이는 바이크라이더가 되었다고 했다.


'공룡과 새'이지만 각설이와 품바로 보였다면 그것도 맞습니다.
마이콜과 혹성탈출 그 사이 어딘가
언젠가부터 그는 샘플 만들기를 즐기고 있었다.
절정의 샘플 만들기 


작은손들의 표정은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듯했다. 이 작품은 반구모양의 노란색 플라스틱과 PVC 파이프로부터 출발한 해체가 가능한 만들기다. 물고기는 작품의 일부를 끼우고 빼고, 조이고 풀고, 뚫고 거두고, 묶고 느슨하게 하는 해체과정을 천천히 보여준다. 그의 우렁찬 목소리가 어느덧 속삭이듯 작은 소리로 변했다.  '말도 안 돼', '머리를 떼다니 잔인해'하며 장난스러운 반응을 보이던 작은손들도 어느덧 그의 손을 따라 고개를 움직인다.




연습키트로 연습하자


자리마다 샌드위치 상자가 놓여있다. 간식이 아니다. 연습키트다. 상자를 열어보면 하얀색 약통 혹은 껌통, 삼각형으로 연결된 빨대, 십(十) 자 모양으로 묶인 나무막대, 구멍이 뚫린 에바폼이 들어있다. 만들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샘플키트를 통해 유용한 체결법을 익힐 수 있다. 첫 단계는 아이스크림 나무막대 두 개와 고무줄 한 개로 십자 만들기이다. 의외로 다수의 참가자가 직각으로 교차하는 십자 만들기를 어려워했다. 방법에 제약을 두지 않아 둘둘 감거나 아예 고무줄을 끊고 시도해 보지만 직각으로 교차시키기는 쉽지 않다. 각자 나름의 방법을 사용해서 십자를 완성했고 다른 방법을 알고 싶은 참가자에게는 원래의 교차묶기를 알려주었다.


 

빨대와 정수기관을 연결해 삼각에서 사각으로 만들어 보는 것은 모두가 쉽게 해결했다. 에바폼은 활용도가 다양하지만 이번 워크숍에서 주로 할 것은 타공펀치와 고무망치를 활용해 구멍을 뚫는 것이다. 그리고 할핀과 플라스틱 고리, 그리고 바늘과 실을 구멍에 통과시켜 연결을 이어나가는 작업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바늘에 빨대 통과시키기를 한다. 여기까지 하면 작은손들은 걱정반, 호기심반 섞인 목소리로 “나, 오늘 뭐 할지 알겠어.”라고 감을 잡은 듯 말한다.


개미 발자국 소리도 들릴 듯한 침묵의 시간. 바늘로 빨대 꿰기






시작은 만들기 베이스로부터

만들기의 반대말이 모야? 물어보면 부시기, 안 만들기, 없애 버리기, 망가뜨리기, 분리하기, 해부하기, 해체하기, 회수하기 등 다양한 답변이 돌아온다. ‘기들만’, ‘없애 버리기’같이 위트 있는 답변에 웃음이 난다. 연습키트를 통해 오늘의 목표를 어렴풋이 알고 있다. 이때까지는 신이 난 얼굴들이었다. 하지만 곧 야유가 터졌다. 글루건과 테이프 등의 접착 도구와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글루건도 해체가 된다고 주장한다. 포장에 붙은 상표스티커는 사용해도 되냐고도 했다. 안된다는 것을 본인들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크다. 접착 도구들을 배제한 만들기의 어려움보다 익숙하지 않음이 클 것이다.



미스터리 봉투 안의 만들기 베이스를 가져가는 작은손 (봉투는 가져가는 게 아니야)

실망은 기대 앞에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었다가 다시 튀어나왔다. 모두의 기대를 무너뜨린 베이스에 등장에 놀랐다. 놀라지 않은 것은 우리뿐이었다. 우린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생소한 베이스 재료를 손에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고 당기거나 구부려 보기도 한다. ‘이게 모야?(뭐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다른 친구들의 베이스는 어떤가 둘러보지만 다들 비슷하다. 우리는 "베이스에서 만들기를 이어나가도 되고, 몽땅 해체하고 처음부터 시작해도 돼요."라고 고민을 덜어주는 말을 덧붙였다.


1단계 : 웃는다.  2단계 : 초월한다.


거의 모든 베이스는 해체된다. 해체를 하면서 '이걸 왜 여기에 끼워놨어' 하며 투덜투덜 대기도 하고 '도대체 이건 어디서 나온 재료야?' 하며 출처를 궁금해하기도 한다. 간혹 철사가 너무 단단하게 조여 있거나 대롱이 구멍에서 빠지지 않을 때는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해체를 경험하는 목적은 그것들이 체결된 방법을 직접 만져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구멍에 끼우거나 볼트너트로 조이는 것처럼 손쉬운 해체방법이 있는가 하면 실로 묶거나 케이블타이를 이용한 것은 해체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케이블타이를 가리키며 이건 뭐예요?라고 묻기도 하고 너무 단단히 고정된 것을 풀며 본인은 이렇게 하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해체를 통해 얻은 힌트들을 가지고 본인의 만들기에 활용하게 된다.



간혹 해체 너머를 발견한 작은손도 있다. 베이스 재료를 가공하는 것이다. 원하는 모양이 나오도록 톱으로 자르거나 드릴로 구멍을 뚫는다. 플라스틱과 나무는 대장장이와 함께 작업을 하게 된다. 철을 자르고 싶다고 하는 경우에는 우리의 도구로는 한계가 있다고 하며 다른 재료를 써 보는 것을 추천했다. 열심히 가공을 하다 보면 베이스가 뭐였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독특한 작품이 나오기도 한다.



재료의 탐구와 만들기

해체나 가공을 하며 손을 움직이다 보면 '아! 나 뭐 만들지 생각났어.'하고 재료상점으로 달려간다. 이거 블루베리 통 아니에요? 어, 이거는 엄마가 만두 찔 때 쓰는 건데.. 재료들의 출처를 다 알고 있다. 반가워하기도 하고 이게 왜 여기에 있지? 하며 아리송해한다. 우리가 준비한 재료들은 다음과 같다.

구멍이나 홈이 파여 있어 끼울 수 있는 재료 : 에바폼, 플라스틱류에 드릴 타공처리, 대롱, 카드보드 조각, 표면이 타공 처리된 금속

묶거나 감을 수 있는 재료 : 노끈, 털실, 밧줄, 고무줄, 까끌이와 보슬이(찍찍이 부직포), 길게 자른 주름지

뼈대를 만들 수 있는 재료 : 정수기관, 주름호스, PVC 수도관, 나무조각, 플라스틱 조각

몸체를 만들기 쉬운 재료 : 플라스틱 바구니류



표면이 타공처리 된 재료는 여러 가지를 끼울 수 있어 자주 선택된다. 주로 금속 재질이 많은데 무게도 무겁고 구부리거나 다른 모양으로 변형시키기가 쉽지 않아 애를 먹을 수 있다. 만들기 난이도는 쉬운 편이다. 구멍의 장점을 살려 실, 나무, 철사, 빨대 등등 다양한 재료의 결합을 볼 수 있다.



플라스틱 깔때기도 자주 쓰인다. 가볍고 날카롭지 않은 모양과 밝은 색이 특징이다. 그러나 표면이 매끄러워 결합 용도로 사용하기는 까다로운 편이다. 깔때기는 양쪽으로 구멍이 뚫려있다. 구멍에 물체를 통과시킬 수 있어 자주 찾는다. 경사진 표면을 장식하고 싶어 하는 경우도 많았으나 접착제 없이 무언가를 붙이기 매우 어렵다. 어느 모야의 작은손이 물었다. "접착제를 쓰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그럼 아이클레이는 써도 돼요?" 깔때기에 대롱을 통과시켜 서로 고정하려 하는데 실과 철사로는 자꾸 미끄러져 실패를 거듭하던 참이었다. 생각해 보니 안될 이유가 없는 좋은 방법이었다.  괜찮은 대체재를 찾아낸 것이었다. 하지만 클레이 사용을 허락하는 순간 모두가 클레이를 바르고 있을 모습이 떠올랐다. 아쉽지만 클레이의 끈적임을 문제 삼았고 이번에는 해체가 가능한 만들기를 위해 그 방법은 아껴두자고 얘기했다. 그 아이는 몇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만들기를 이어갔다.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만들기를 하는 것은 정말로 어렵다. 만들어 본 사람은 안다. 무너지고 또 무너진다. 글루건만 있다면 10초 만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 무너뜨리며 방법을 찾는다. 접착제 없이 다루기 정말 어려운 재료가 있다. 바로 PVC 파이프다. 서로 연결할 수 있는 소켓 없이는 활용법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어디를 가도 재료상점에서 파이프부터 사라졌었다. 하지만 가공이 쉽지 않아 다시 재료상점에 반납되곤 했다. 완성으로 이어진 작품을 만든 작가는 어려움을 극복한 소감을 말하지 않는다. 눈앞에 재료가 있었고 만들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게 파이프였던 것.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만만한?!) 재료는 대롱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준비한 대롱은 구부릴 수 있는 빨대와 정수기 관, 엄지손가락 두께의 플라스틱 주름관이 있다. 빨대는 재질 단단하지 않아 구조를 만들기는 어렵기 때문에 주로 장식으로 쓰인다. 그에 비해 단단한 정수기관은 마치 철사로 뼈대를 만드는 것처럼 사용됐다. 딱딱한 만큼 자르기가 쉽지 않아 원하는 크기로 자를 때마다 대장장이를 찾았다. 빨대의 외경과 정수관의 내경이 우연하게도 딱 맞는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정수관을 이음새로 삼은 작품들이 눈에 띈다. 수도 주름관은 꺾거나 둥글게 마는 것도 쉽게 가능해서 자주 쓰였다. 가위로 자르기 쉬운 것도 한몫했다. 나무, 플라스틱, 스티로폼 등 다른 재료와 결합도 쉬워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다양한 혼합재료로 만들기. 코르크와 나무기둥, 부직포, 요구르트 통, 커피냄비, 스티로폼 등 기존 모야에 있는 재료와 상인의 재료를 섞어 만든 작품들이다. 해체하지 않고 몰래 숨겨두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 작품들이다.



해체하기

작품을 완성하면 '만들기 카드'에 작품의 제목과 작품의 특징을 쓰거나 그려 넣을 수 있다.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지 체크할 수 있고 분해 난이도를 별점으로 기입할 수 있다. 기록지를 살펴보면 작품은 목적과 의미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표현하려 노력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갑작스럽고 짧은 시간 만든 작품이지만 어려웠던 만큼 애착이 많이 형성되어 있었다. 오늘의 만들기는 해체되어 다음 모야의 재료로 간다는 말에 아쉬운 탄성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물고기의 진행으로 한 명씩 작품을 발표하고 사진을 찍었다. 작품을 직접 해체할지 우리에게 맡길지 물었다. 몇몇은 직접 해체하겠다고 했다. 롱노즈와 가위, 장갑을 들고 발표대 뒤 책상에 앉아 작품을 해체했다. 그들은 해체를 마친 재료를 봉투에 던져 넣지 않았다. 잘 가라고 했다.


만들기를 기억하기

만들기의 반대말에서 발견한 작품은 기존 것 보다 추상적이다. 상상한 대로 만들어 보려 하지만 도구의 제약 때문에 많은 것을 생략해야 했다. 또한 입체적이고 구조적이다. 평면적인 만들기보다 선과 면이 교차하고 결합된 입체적인 만들기가 많았다. 재료들이 접착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무엇보다 안정적으로 버티는 구조를 찾게 된다. 두 손을 놓고도 무너지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아 손을 놓고 있는 모습을 보면 쉬운 방법을 알려줘야 하나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작은손이 스스로 방법을 찾도록 최대한 지켜봤다. 왜 안될까 고민하는 작업자와 같이 고민했다. 서로 아이디어를 내고 도전했다. 완성된 작품이 다시 재료꾸러미로 돌아가는 것도 봤다. 다시 쓰이지 못하는 재료는 끊긴 실가닥과 너덜 해진 종이 정도였다. 릴리쿰에서 출발한 재료는 제천을 거쳐 인천, 천안, 전주, 김해 그리고 제주까지 모든 여정을 함께했다. 재료로 돌아간 작품이 전국을 여행할 때 다시 작품으로 태어날 수 있도록 빌어준 어느 작은 작업자의 염원 덕분이었을까.


워크숍을 기획하면서 작은손들이 작품 해체하기 싫다고 울고불고하면 어쩌지? 하고 우리끼리 이야기를 나눴었다. 헛생각이었다. 그런 일은 없었다. 작은손은 익숙하지 않은 만남에서 익숙하지 않은 재료와 도구를 다루었다. 성숙한 만들기 태도 앞에 익숙하지 않음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우리는 사물의 다시 쓰임과 익숙한 도구의 결핍이라는 두 가지를 주요 키워드로 삼아 관찰했다. 돌이켜보면 한 번도 사용되지 못한 재료들도 있고, 완성되지 못한 작품도 있었다. 무엇보다 작품들이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울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만들기는 기억되는 것이다. 기억은 다른 공간, 다른 시간, 다른 재료를 가지고도 해체할 수 있는 만들기의 즐거움을 다시 느낄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가치를 잃지 않고 쉽게 버려지지 않는 사물들처럼 이 날의 만들기가 우리의 머리와 가슴과 손 끝에 기억될 수 있기를 바란다.




재료상인&기록학자 까나리 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