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출발하는 그 짜릿한 순간
여행을 출발해야 할 시간이 째깍째깍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 가족만 가는 여행이라면 좀 더 느슨하게 준비하고 현지에서 아내랑 같이 문제를 해결하면 될 일이지만, 다른 사람과 동행한다는 것은 몇 배나 힘든 과정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그들이 싫어할 수도 있고,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우리가 싫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식사는 아침과 저녁을 해 먹는 것으로 정하였고, 점심은 현지에서 사 먹자고 이야기를 해둔 상태였다. 국내에서 알아본 바로는 노르웨이의 마트 가격도 결코 저렴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유럽이나 뉴질랜드와 같은 나라들의 특징은 음식점의 식사 가격이 비싼 것에 비해서 사람의 손이 적게 드는 마트의 생필품이나 식재료 가격은 우리나라보다 오히려 더 저렴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들 나라로 여행을 갈 때에는 마트에 들러서 여행 기념품을 구입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하지만, 이 나라는 예외로 느껴졌다. 콜라 한 병의 가격이 4천 원 정도이고, 물 한 병의 가격도 2천 원이 넘으니 쉽게 손이 가는 그런 마트는 아닌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은 한국에서 밑반찬을 가져가는 것이었다. 현지에 가면 현지식으로 먹어야 하는 것이 우리 딸의 일관된 주장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딸의 입맛을 맞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개는 현지에서 맥도널드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렇지 않으면, 숙소에서 밥을 해 먹었으니 그런 이야기가 나올 만도 했다. 여러 나라 여행을 다니면서 공항에서 어떤 물건이 되고 어떤 물건이 안 되는지 그때마다 챙겨서 확인하기가 쉽지 않아서 언제든지 가장 까다로운 조건을 가정하고 준비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라 준비가 쉽지만은 않았다. 특히 농산물 반입을 철저하게 검사하는 뉴질랜드를 다녀온 이후로는 더더욱 물건을 구입해서 해외로 반출하는 것이 더 걱정거리였다.
첫 번째 걱정거리가 바로 쌀이었다. 그 나라에서 쌀을 구입하는 것도 매우 비싼 가격이라는 인터넷 블로거들의 글을 보고 쌀을 가져가야 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햇반을 가져가야 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이 되었다. 뉴질랜드 같으면 쌀을 반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나라는 농산물이 함부로 자국에 유입되어 생태계를 교란하는 것을 매우 걱정하고 있고, 이것은 농산물 생산으로 먹고사는 이 나라에서는 당연히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다 보니 가장 까다로운 조건에서 케리어 안에 물건을 넣으려고 하니 혹시 노르웨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선뜻 구입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인터넷에서 “해외여행, 쌀”이라고 검색을 해서 찾아보아도 쌀을 가져갔다고 하는 기사들은 아주 오래된 기사 이외에는 별로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몇몇 사람들은 쌀을 가져갔다고도 하는데 어떤 나라가 되는지에 대한 안내가 부실해서 이 말을 믿고 쌀을 가져가야 할지 걱정스러웠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쌀을 가져가지 말고 조리된 햇반을 가져가는 것이 좀 더 안전한 방법으로 보여서 햇반을 챙겨가기로 했다. 그리고 쌀을 가져갔을 때 조리해야 할 시간이 촉박하기도 하고, 냄비가 하나 더 필요해서 인덕션에 화구를 여러 개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가능성도 크며 이럴 때 화구가 많지 않으면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문제였다.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캐리어의 무게는 일인당 25kg의 수화물이 허용되었다. 때문에 무작정 많은 양을 캐리어에 넣을 수는 없어서 10일 동안 하루에 아침, 저녁을 햇반으로 먹을 것으로 가정하였을 때 20개가 필요하였다.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20개짜리 박스 포장 형태로 팔고 있어서 쉽게 구매할 수 있었다. 다만, 우리 가족만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으므로 사이즈는 일반 사이즈보다 큰 사이즈로 준비하였다. 그리고 밑반찬도 준비해야 했는데, 김치 종류와 장아찌 종류로 깻잎 조림과 오징어채 볶음 등을 준비하기로 하였다. 뉴질랜드와 같은 나라의 경우에는 한인 마트가 따로 있는 데다 한국이랑 가격차이가 크지 않아서 많은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노르웨이는 아무리 인터넷을 검색해보아도 한인마트가 있다는 것은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어떻게 해서든 한국에서 모든 준비를 해서 가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김치 종류는 현지에서 구입하게 되면 생김치를 구매해도 되지만, 비행기 수화물 칸에 짐을 실어야 하는 경우에는 생김치를 가져가는 것은 좋지 않다. 소포장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기압 차이로 인해 부풀어 오르고, 원래 김치가 발효로 인해서 부풀어 올라 이런 효과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하여 포장지가 터지는 일이 가끔 있기 때문에 볶음 김치를 넣어 가면 김치가 더 이상 발효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며칠 뒤 택배가 도착하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물건들이 준비되었다. 햇반 20개, 볶음 김치 20팩, 깻잎 조림 6팩, 오징어채 3팩, 오징어젓갈 2팩, 돼지고기 장조림 4팩, 그리고 언제든지 쉽게 먹을 수 있는 누룽지 20팩(1인용)을 준비하였다. 게다가 집에 있는 참치 캔 4개까지. 집에서도 반찬을 이렇게 많이 먹지 않는데, 10일 동안 먹으려고 하니 이 정도도 모자라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하였다.
반찬과 밥 준비는 끝났다. 이제는 밥그릇이랑 냄비를 챙겨야 한다. 원래 대부분의 숙박시설이 식기류를 가지고 있다고 안내를 해주었지만, 캠핑장 중 몇 곳은 그런 안내가 전혀 없어서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다가는 밥을 먹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은근 걱정되었다. 그래서 국내에서 캠핑을 갈 때 가져가던 물건 중 양은 냄비랑 스테인리스 국그릇 3개, 그리고 수저 3벌 이렇게 준비하였다. 양은 냄비가 대략 지름이 25cm 정도 되는 크기라서 캐리어에 넣으면 굉장히 부피를 많이 차지해서 걱정이 앞서지만, 무게가 가벼워서 그나마 가져가기에는 가장 적당한 것 같았다. 그러지 않으면 코펠을 또 구입해야 하는데 굳이 비용을 들여서 냄비 종류를 구입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준비해야 할 것은 인터넷을 사용해야 하므로 필요한 유심이었다. 예전에 몇 차례 유럽을 갈 때에는 3G 유심을 구입해서 가서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면서 사용했는데,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속도가 느려서 그런 점은 조금 불편했던 것 같았다. 작년 오스트리아에 갈 때에는 EE유심을 구입해서 갔는데, 그것도 나름대로 괜찮았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노르웨이 유심을 검색해보니 일반 유럽의 다양한 유심이 나오기는 해도 왠지 의문스러운 점이 많았다. 그런 변방의 나라들에서도 정상적으로 유심이 될까 하는 고민이었다. 그래서 인터넷을 보니 노르웨이 오슬로 공항에 내리면 4기가 유심이 파는데, 금액이 3만 원을 넘는다고 하고, 잘못하면 하루 만에 모두 소진할 수 있다는 블로거의 글도 올려져 있었다. 게다가 유럽의 다양한 유심을 사용해서 여행을 다녀왔다는 기사는 잘 보질 못했다.
이런 의문을 어떻게 풀어줄지 시간이 다가오면서 궁금증은 더 커졌지만, 노르웨이에 가서 유심을 구입하는 것은 현명한 행동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워낙 물가가 비싼 나라이므로 유심도 결코 저렴하게 판매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말도 잘 안 통하는데, 통신사를 물어보고 어떻게 연결하는지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정말 진땀 나게 하는 대화가 아닐 수 없었다.
결국 몇몇 블로거들이 적어놓은 글에 힘을 얻어서 O2유심을 구입하기로 하였다. 다른 유심들도 구입해서 쓰면 되지만, 나름 잘 될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가 있었고, 데이터를 2배로 늘려준다는 말에 또다시 신뢰가 갔다. 우리 가족은 유심을 2개만 하기로 했는데, 하나는 딸을 위해, 다른 하나는 나를 위해 구입하기로 하고, 아내는 내가 핫스폿을 해주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아내도 그러는 것이 좋겠다고 하고, 나는 2G에 한국으로 300분 통화가 되는 유심으로 구입하고, 딸은 굳이 한국으로 통화를 해야 할 일이 별로 없고 데이터를 많이 사용할 테니 데이터만 8G가 되는 것으로 구입하였다. 나중에 데이터를 2배로 준다고 했으니 나는 4G, 딸은 16G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개당 17천 원, 딸은 24천 원 정도를 주고 구입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생산된 스마트폰은 대부분이 유심을 하나만 끼울 수 있게 되어서 공항에서 유심을 바로 끼울 수는 없었지만, 나의 경우는 중국에서 직구로 구입한 스마트폰이라서 유심을 하나 더 끼울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이런 종류의 유심들은 대개 집으로 택배가 오거나 공항으로 찾으러 가야 하는 경우로 나뉘는데, 이번에는 다행히 집으로 배송이 되어 와서 손쉽게 방법을 익힐 수 있었다. 다른 일행에게도 이 사실을 이야기했더니 자신들도 같은 유심을 구입해 달라고 부탁해서 같이 구입해서 나누어 주었다.
최근에는 이런 유심을 구입하는 것도 굉장히 쉽게 안내가 되어 있어서 인터넷으로 검색만 해도 어떻게 사용하고 해외에서는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 자세히 안내가 되어 있어서 편하다. 더 좋았던 것은 노르웨이 안에서 많은 곳이 와이파이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고, 특히 모든 숙소나 캠핑장들은 와이파이를 기본으로 제공해 주고 있어서 굳이 넉넉한 데이터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이제는 캐리어에 짐을 정리해서 넣기만 하면 되는데, 여행을 출발하기 전날까지도 몇 가지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일을 마무리하다 보니 짐을 정리하는 시간이 갈수록 늦어졌다. 예전에 처음 유럽 여행을 갔을 때에는 여행 가기 일주일 전부터 여행 목록을 짜고 목록에 따라 물건을 구입하고 시간 날 때마다 짐을 정리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이제는 여행이 많이 익숙해져서 그런지, 아니면 귀찮아서 그런지 캐리어에 짐을 정리하는 일이 갈수록 늦어졌다. 일요일 점심에 인천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전날 저녁까지 캐리어도 꺼내지 않았으니 아내랑 같이 이야기하면서 웃음이 나오기도 하였다. 캐리어를 정리한 것은 밤 10시가 다 되어갈 때였다. 전실에 있던 캐리어를 꺼내고 지난번 오스트리아 여행에서 부서진 캐리어를 버리고 새로 구입한 캐리어의 비닐을 뜯어서 짐을 넣기 시작했다. 옷가지랑 신발류, 헤어드라이어, 컵라면, 햇반, 밑반찬, 빨랫줄, 유심, 예매 확인서 출력물, 여권 사진, 여권 복사본, 유로화 환전금액 등등.
아내가 중심적으로 짐을 챙기고 딸과 나는 아내를 돕는 형식으로 가방을 꾸렸다. 따로 가방을 꾸려도 되지만, 점검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결국 한 사람의 기준에 따라 짐을 한꺼번에 챙기는 것이 가장 실수를 줄이는 것이라는 것을 오랜 여행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익이 아닐까 싶다. 10시부터 시작된 짐 정리는 새벽 2시가 되어서야 마무리되었다. 캐리어 3개를 현관 앞에 놓고, 기내용 가방은 백팩으로 따로 준비해서 캐리어 위에 올렸다.
일요일은 원래 가장 저렴한 교통수단인 인천공항행 버스로 이동하려고 하였으나 이렇게 되면, 점심시간에 집을 나서야 하고 2시 30분에 버스를 타야 되어 첫째 아이가 기숙사에 들어갈 때 이불이랑 다른 짐을 가져다 줄 여유가 없었다. 일찍 가져다주면 되지만, 그렇게 되면 아이가 혼자서 점심을 사 먹어야 해서 아이도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비용이 조금 더 드는 방법으로 이동하기로 하였는데, 좀처럼 이용하지 않는 기차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가장 비싼 이동수단이라 가급적이면 가족끼리 움직일 때에는 직접 운전을 해서 가게 되므로 기차를 탈 일은 거의 없었는데, 점심을 먹이고 출발을 하려면 기차를 타면서 최대한 집에서 늦게 나가는 것이 좋은 방법이었다.
저녁 5시 표를 예매하고 아들과 점심을 먹고 기숙사에 데려다준 후 차를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를 시킨 뒤 택시를 다시 타고 기차역으로 이동하였다. 시간이 늦지 않게 도착해서 기차를 정확하게 타긴 했지만, 광명역에 내려서 공항리무진으로 갈아타야 하므로 기차 안에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아내와 딸에게 광명역에 도착하면 알려달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나의 생각에서는 허용할 수 없는 일이라 차라리 잠을 자지 않고 책을 읽거나 바깥을 구경하는 것이 좋았다. 2시간가량 기차를 타고 오송역을 지나 광명역에 내렸다. 광명역에 처음 가 보아서 어떻게 구조가 되어 있는지 몰라, 리무진 타는 곳을 찾는데도 몇 분이 걸렸다. 그런데, 그러는 사이 리무진 버스는 이미 출발을 해버렸고, 다시 30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비가 살짝 내려서 차가 막히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였지만, 다행히 공항까지 50분 걸려서 도착하였다. 캐리어 3개를 빠짐없이 챙긴 다음 공항 대합실로 일행을 만나러 갔다. 일행은 먼저 도착해서 체크인을 이미 해 놓고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고 하였다. 우리도 모바일로 체크인을 해 놓았고, 캐리어만 보내면 되는 일이라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나는 캐리어 한 개와 백팩, 그리고 허리에 메는 가방 하나 이렇게 3개의 가방을 끌고, 메고 이동하였다.
나는 외국으로 여행을 가면서 여러 번 확인하고 챙기는 것이 있는데, 바로 여권이다. 예전에 학술답사에 초청되어 인천공항에 모여서 중국으로 출발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 전라도 쪽에서 오신 선생님 한 분이 여권을 가져오지 않으셔서 우리와 같이 여행을 가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때 그 모습을 보고 매우 충격을 받아서 인지 여권은 여행이 끝날 때까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안전하게 보관하거나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허리에 메는 작은 가방이 꼭 필요한 것이다.
공항에 도착해서 드디어 체크인을 하러 줄을 썼다.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다행히 모바일 체크인을 한 사람들은 따로 라인이 있었고, 아무도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서 바로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틀 전부터 시작되었다. 탑승 전 48시간이 되면 에미레이트 항공은 자동으로 좌석을 지정해주는 것이었다. 하필 이날 비행기가 만석인지 3명밖에 안 되는 우리 가족은 모두가 따로 흩어져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인천으로 오는 길에도 계속 핸드폰을 들여다보면서 빈자리가 없는지 살펴보고 빈자리가 있으면 조금 더 가까이에 좌석을 바꾸는 방법으로 이미 3번 정도 자리를 옮겼었다. 체크인을 할 때 직원에게 원래 이 항공사는 배정을 이렇게 하느냐며 투덜거려도 보았지만, 빈자리가 없는지라 방법이 나질 않았다.
좌석의 구조는 에어버스 380이라 3-4-3열 구조의 좌석이었다. 우리는 3명이기 때문에 가운데 열이 아닌 3명이 이어서 앉는 쪽의 좌석이면 가장 이상적인 곳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우선 가장 창가 쪽 자리를 한 자리 예약하고, 앞쪽 가운데 하나, 아예 먼 곳에 있는 자리 하나로 모두 떨어져 앉게 되어, 두바이까지 가는 동안 가족들이 힘들어할 것이 자꾸만 걱정되었다. 가방을 비행기에 보내고 저녁 식사할 겸, 일행을 만날 겸 2층 식당가로 올라갔다. 같이 갈 일행을 만나고 잠깐 이야기를 나눈 후 일행을 먼저 보내고 저녁을 조금 먹고 가려고 식당을 더 둘러보았다. 딱히 배가 고프지는 않고 어차피 비행기를 타면 식사를 주기 때문에 간단하게 빵이랑 음료수 하나 사 먹는 것으로 저녁식사를 끝마쳤다.
그리고 공항 내 면세구역으로 들어가기 위해 긴 줄을 서서 기다렸다. 별로 할 일이 없어서 다시 핸드폰을 꺼내어서 좌석 상황을 살폈다. 창가 쪽 라인의 2자리(통로 쪽 하나, 가운데 하나)가 비어 있는 것이 보였다. 게다가 우리가 예약한 창가 끝 쪽 자리 바로 뒤편에 있었다. 2자리를 냉큼 예약하였다. 가방을 보낼 때 항공권을 받으면서 혹시나 모바일로 자리를 바꾸게 되면 다시 와서 티켓을 새로 발급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2자리를 바꾸고 나서 티켓을 새롭게 받으러 가고, 아내와 딸은 긴 줄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걸어가면서 혹시나 옆 자리가 또 비어 있게 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면서 가방을 맡긴 에미레이트 항공사 창구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기대가 통했는지 2자리를 예약한 곳의 창가 쪽 끝자리가 빈자리로 남게 되었다. 떨리는 손으로 뒤에 있는 딸의 자리를 우리가 있는 쪽의 창가 쪽 자리를 옮기게 된 것이다. 드디어 3명이 모두 같이 좌석을 이어서 앉게 된 것이다. 너무 다행이었다. 직원에게 비행기 표를 바꾸겠다고 하면서 겨우 3명이 같이 앉게 되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다면서 칭찬까지 해주었다.
우리는 이렇게 3명이 같이 앉게 된 것에 만족하면서 일행을 만나러 면세구역으로 들어갔는데, 우리 일행은 더 놀라운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나중에 따로 항공권을 구매해서 우리보다 가격을 30만 원 정도 더 비싸게 구매한 분은 비행기 좌석이 오버부킹 되었다면서 비즈니스 좌석으로 업그레이드를 시켜주었다는 것이었다. 평생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는 비즈니스석. 비록 두바이까지만 가는 좌석이지만, 비즈니스석을 타보는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 아닐까라며 모두 부러워했다.
우리와 같이 가는 일행은 3명의 가족으로 이들은 우리보다 나이가 적게는 10살이 많고, 남편께서는 작년에 명퇴를 하시고 자유여행을 갈 수 있기를 꿈꾸고 있는 분이었다. 그리고 아내 분은 자유여행을 처음 가시는 분이라서 자유로움보다는 걱정이 많은 표정이었다. 아들은 20살이 넘어서 별로 거리낌이 없어 보였으나 그래도 가족 모두 자유여행이 처음이라 걱정이 많이 앞서 보였다. 이들에게 제발 무사히 여행이 진행되어야 할 텐데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는 시간이었다.
면세 물품은 최근 아내가 물건을 사는 것에 대해 욕심이 없어서 구입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한 달 전 대만으로 여행을 가면서 구매했던 빗이 마음에 든다고 해서 처가에 하나 본가에 하나씩 사주기로 하고 주문을 하였다. 2개 합쳐서 4만 원. 머리빗 가격으로 비싼 가격이지만, 매일 사용하는 빗이라서 좀 더 편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구매하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2개를 주문했다고 생각했는데, 1개만 주문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집에 가면 처갓집에 하나를 주는 것이 좋겠다면서 아내에게 말했더니 그럴 수도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해주었다. 예전에는 여권 번호를 잘못 기입-인터넷에서 여권 번호를 입력할 때 0을 하나 더- 하는 바람에 면세 물품을 통째로 찾지 못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에 비하면 그나마 덜 실수한 것이다. 끝까지 챙겨볼 걸. 나중에 후회를 해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이 날은 아내가 생일이어서 공항에서 기다리면서 생일 축하를 해주려고 했는데, 면세구역에 있는 배스킨라빈스 가게는 8시가 넘어서 문을 닫고 빵을 살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아내는 생일 케이크나 그런 것 필요 없다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래도 생일인데 그냥 넘기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딸과 같이 공항 끝에서 끝까지 모두 돌아보았다. 빵이라도 있기를 바랐지만, 결국 찾을 수가 없었다. 아내에게 간단하게 생일 축하한다고 말해주고 2019년 생일은 그렇게 지나갔다. 게다가 생일 선물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