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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연 Aug 09. 2021

아카시아 꽃을 팔던 야오


야오가 아카시아를 판지 어언 십 년에 접어들었습니다. ‘길에서 사는 고양이들은 서너 해만 살아도 제 목숨을 다한거란다.’ 누군가 말하면 야오는 어깨를 으쓱합니다. “하지만 저는 벌써 열 살인걸요.” 야오의 새까만 털은 새벽처럼 빛났고, 호박 빛깔 눈동자는 우주처럼 깊었습니다. 그런 야오의 뒤에는 든든한 아카시아 나무가 있었지요.

      

‘아가야, 나무 위로 올라와서 아카시아를 물고 내려가렴.’

야오가 아기였을 적, 나무는 자신의 꽃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던 야오는 아카시아 꽃의 달콤한 꿀을 먹으며 튼튼한 어른 고양이가 될 수 있었어요. 그렇게 둘은 가족이 되었습니다.      


매년 봄이 되면 야오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 꽃을 수확했습니다.

“아카시아 사세요. 아카시아에는 달콤한 꿀이 있답니다.”

야오가 나무 앞에 꽃들을 흩뿌려 두고 야옹야옹 울면, 나비 손님이나 옆 동네 강아지 손님이나 여왕개미 손님이 와서 아카시아를 사 가곤 했어요. 그렇게 꽃을 팔아 모아놓은 양식들이 나무 아래에 쌓이면, 둘은 남은 계절을 도란도란 안락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작년 봄에는 아카시아 꽃이 평소의 절반밖에 열리지 않았습니다. 나무가 말했습니다. “점점 기운이 없어지는구나. 뿌리에 물이 충분히 흡수 되질 않는걸.” 깜짝 놀란 야오는 나무의 뿌리 쪽을 파바박 파보고 킁킁 냄새를 맡아보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어요. “아저씨, 내가 무슨 일인지 알아볼게요!” 야오는 공원 밖으로 나가 마을을 향해 달렸습니다. “뚱냥아, 마을에 무슨 일이 있니?” 야오가 묻자 슈퍼마켓 평상에서 빵을 굽던 뚱뚱한 고양이가 심드렁하게 말했습니다. “마을에는 늘 무슨 일이 있지.” 야오는 고개를 저었어요. “아니, 나무 아저씨가 아픈 것 같아. 혹시 땅을 괴롭히는 괴물 같은 게 나타났니?” 평상의 고양이는 주섬주섬 일어나 기지개를 쭈욱 켜고는 땅으로 사뿐히 내려왔습니다. “따라와” 슈퍼마켓 고양이는 한참을 걸어 거대한 기계들이 보이는 다리 위에 멈췄습니다. “저 아래 좀 봐. 원래는 작은 물길이 흐르는 천이었는데, 요즘 인간들이 그걸 메워버리고 있어. 그 위에 건물을 지으려는 모양이야.” 그곳에는 정말로 물길 위에 흙을 퍼다 나르는 기계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어요.      


거대한 기계들을 본 야오는 터덜터덜 나무에게 돌아갔습니다. 나무는 야오의 축 쳐진 수염을 보고 마을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곧장 알 수 있었어요. “무슨 일이니, 아가야.” 야오는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나무는 잎을 한번 흔들고는 야오에게 말했습니다. “나무 위로 올라오렴.” 야오가 나무 위로 올라가자 아카시아 잎이 야오의 몸을 동그랗게 감싸 안았습니다. 야오는 나무의 품에 안겨 애옹애옹 울어버렸어요.   

  

다음 해 봄이 되었을 때 마을의 작은 물길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고, 아카시아 나무는 마른 몸으로 간신히 세 개의 아카시아 꽃을 피울 수 있었습니다.

“아카시아 사세요. 아카시아에는 달콤한 꿀이 있답니다. 아카시아 사세요.”

야오의 앞에는 세 송이의 아카시아가 놓여있었어요.
  

얼마 후 한쪽 다리를 절뚝이는 오리 한 마리가 다가왔습니다. “먹을 것이 좀 필요한데 아카시아를 살 수 있나요? 줄 수 있는 건 물에 젖지 않는 깃털뿐이에요.” 야오는 아카시아를 건네고 오리의 깃털 하나를 받았습니다. “내가 살던 곳 전부 사라졌거든요. 이제 나는 다른 곳으로 가야 해요. 부디 여러분도 살아남기를.” 오리는 아카시아를 입에 물고 저만치로 사라졌습니다. 나무는 오리의 휘청이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가만히 눈인사를 보냈어요.


오리가 사라지고 얼마 후, 어린 인간 아이가 야오의 앞에 쪼그려 앉았습니다. “고양이야, 나도 꽃을 하나 살 수 있을까?” 야오가 말했습니다. “꽃은 누구나 살 수 있어. 그런데 넌 뭘 줄거니?” “나는 가진 게 없는데.. 혹시 이걸로는 안될까?” 아이는 책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공책과 연필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야오를 보며 말했어요. “이름이 뭐야?” “내 이름은 야오야.” “그럼 네 이름을 적은 종이를 줄게.” 야오는 잠시 생각하다가 아이에게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그럼 이렇게 적어줘. 아 카 시 아 꽃 을 팔 던 야 오.”

“좋아.” 아이는 반듯한 글씨가 적힌 종이를 야오에게 내밀었습니다. 야오는 종이에 슥슥 그어진 선이 무얼 의미하는지 몰랐지만 귀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듯 종이를 품에 안았어요. 아카시아 꽃을 꼭 쥐고 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야오는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한 송이만 남았네요.”


하지만 나무는 대답이 없었습니다. “나무 아저씨?” 야오의 목소리가 공원을 빙그르 돌아 다시 야오에게 돌아올 때, 야오는 알았습니다. 나무의 영혼이 자신의 곁을 떠났다는 사실을요. 야오는 깊은 슬픔에 빠져 가만히 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산들바람이 불어 마지막 아카시아가 둥실 떠올랐어요. 그리곤 야오의 머리 위에 톡 떨어졌지요. 야오는 마지막 꽃을 집어 들고 고민하다가, 입 안에 쏙 넣어버렸습니다. 달콤한 꿀 입안 가득 퍼져 어린 시절 처음 먹어본 아카시아의 기억이 떠올랐어요. 어딘가에서, 다정한 나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고요.

'아가야, 나무 위로 올라오렴.'

      

얼마 후 공원에는 작은 무덤이 생겼습니다. 까맣게 기둥만 남은 나무가 바로 옆에 있었고요. ‘아 카 시 아 꽃 을 팔 던 야 오’가 반듯하게 적힌 종이와 커다란 오리의 깃털이 벗겨진 나무껍질 사이에 끼워져 있었어요. 오리의 깃털이 우산처럼 가려주어, 종이는 비가 오고 눈이 와도 젖지 않았습니다. 야오와 나무를 기억하는 이들은 오랜 시간이 흐르고도 종종 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카시아가 열리는 5월이면 한낮의 태양이 둘의 무덤을 비추는데, 그 빛이 야오의 호박 빛깔 눈동자와 꼭 닮았다고, 무척이나 아름다운 빛이 여전히 그들을 비추고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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