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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연 Feb 16. 2020

집에 담긴 이야기  

쉬세요 쉬세요, 우리를 초대하는 집.

신혼집을 구했다. 바쁜 H를 대신해 집부터 가구까지 모든 걸 내 손으로 고르고 배치했다. 내가 틀을 짰으니 구성을 채우는 것 역시 내 몫. 기왕 하는 것 최선을 다 해보고자 인테리어 정보 서칭에 매일 두어 시간을 보내는데 솔직히 투자 대비 큰 효율은 없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어쩜 이리 하나같이 재능이 넘치는지. 역시 이 조그마한 나라에 봉준호와 BTS가 등장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을 뿐이다.


요즘에는 온라인 집들이가 유행이다. 집과 관련된 물건을 파는 한 사이트는 아예 「집들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가구 정보와 인테리어 노하우를 전문적으로 제공한다. 근래에 나는 붙박이처럼 그곳에 들러붙어 사람들의 온라인 집들이를 에세이 읽듯 정독하며 읽었다. 놀랍게도 집을 가꾸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말하는 문장의 배치와 우연은 가히 소설과 다를 바 없었다.


카페에서 자신과 같은 책을 읽는 남자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다는 한 여인은 에쿠니 가오리의 「낙하하는 저녁」의 한 구절을 옮겨 적었다.

한 사람과 인생을 공유할 때의 흔해빠진 일상에서 길어 올리는 행복.
믿지 못할 기적 같은 순간의 축적.


그들은 인연의 매개체가 된 이 책의 구절을 청첩장에 새겼다고 했다. 그 뒤로는 유행을 따르지 않아 참신한 신혼부부의 집 이야기가 이어졌다.



「낡은 것들이 어울려 평화로운 집. 잘 익은 적막이, 쉬세요 쉬세요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임혜신 시인의 글과 같은 마음으로 공간을 만들었다는 여인과 해외 박람회에서 의자에 대한 애착을 배웠다는 청년. 그 모든 이야기들과 더불어 인상 깊었던 것은 선택된 문장과 '닮은 집'이었다. 목적이 분명한 집이라는 건 주제가 분명한 글과 같았다. 생활의 편리성을 중시하는 이들은 미니멀리즘을 일찌감치 포기한 채 수납에 중심을 두었고 술과 밤을 좋아하는 이들은 거실을 희생하여 ㄷ자 형태의 바 테이블을 두었다. 단골 친구들을 위해 작은 방에 간이침대를 두는 것은 기본이었다. 아아 반성할지어다. 나의 목적 없는 집이여. 지금의 우리 집은 뭐랄까. 친한 친구의 말을 빌려 설명하자면 「고양이를 위한 창백한 집」 정도가 되겠다. 말 그대로다. 아이보리색 바닥과 블라인드와 싱크대. 하얀 벽과 가구들. 그리고 고양이 살림이 한 살림이다. 창백함을 구성하는 데에는 강박처럼 박혀있던 원칙이 한몫을 했다. 소박한 집이라면 밝은 색을 널찍하게 배치하여 면적을 넓어 보이게 하는 것이 인테리어의 기본 원칙인데 어찌 화이트와 우드를 포기할 수 있으랴. 하얀색에 어울리는 것은 나무색이고 나무색에 어울리는 것은 하얀색이니 그에 맞춰 계속 화이트와 우드를 추가하는 뫼비우스의 띠. 그렇게 짜잔, 창백한 집이 완성되었다.


온라인 집들이에는 평수와 구성원에 따라 천차만별의 집들이 펼쳐졌지만 그중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던 집은 위에 언급한 에쿠리 가오리의 책을 통해 부부가 된 이들의 집이었다. 오래된 상가 건물에 있는 10평 남짓한 그 집은 화려하거나 널찍하지 않았다. 요즘 유행하는 컨셉의 집도 아니었으며 미니멀리즘과도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맥시멀리즘에 가까웠다. 술이 많고 화분이 많고 사진이 많은 집. 오래된 천장과 벽시계를 달고 있는 집. 그런데도 너무 좋았다. 30평대의 아파트보다도 더 여러 번 들여다보게 되는 집이었다. 뭐랄까, '여기는 우리만의 비밀스러운 공간'이라는 아우라가 가득했달까.


나는 종종 H에게 말했다.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드는 집을 만들고 싶어.」

'친절하고 좋은 사람'과 같은 애매한 말이었지만 달리 표현할 길을 몰랐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도 몰랐던 그 말의 의미를 타인의 집에서 발견했다. 그건 결국 우리의 추억과 흔적이 묻어있는 공간을 만나고 싶다는 의미였다. 살아가고 부대끼며 만들어 가야하는 것, 시간이 필요한 것. 그러니까 나는 단순한 인테리어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을 뚝딱 만들어내고자 욕심을 부렸던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집은 해가 잘 드는 집. 작업을 하기에 좋은 집. 그리고 눈과 가슴이 불편한 고양이가 편히 지낼 수 있는 집이다. 그렇다면 절반은 성공이고 절반은 실패다. 남향의 3 Bay 집은 햇살과 고양이의 행복을 모두 충족시켰다. 이제 남은 것은 두 집사의 편안함이다. 그것은 시간에 달린 일이니 우리에게 남은 것은 일상을 사는 것뿐이다. 멋들어지지 않아도 좋으니 우리에게 잘 어울리는 집이 되기를. 임혜신 시인의 말처럼 「잘 익은 적막이, 쉬세요 쉬세요 우리를 초대하는 집」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초대받은 이가 되어 소박한 파티를 열 테니 함께 채울 모든 날은 아무래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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