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되면 인간의 내면에 새로운 감각이 깨어난다고 합니다. 내가 아닌 존재를 향해 무궁한 사랑을 줄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만 알 수 있는 감각이요. 부모는 자연스레 그 낯선 마음을 받아들입니다. 자녀가 태어난 순간부터 시작된 애정은 자신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이 되어서야 끝이 나지요. 가족이란 그런 것입니다. 하나의 삶을 온전히 축복하고 지지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가족이기에 당연히 오가야 할 마음입니다. 최고의 것만 줄 수는 없어도 든든히 곁을 지켜주는 것이 바로 가족이지요.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른 2022년 월평균 유기동물 수는 1분기에 7천266마리, 3분기에 1만 656마리였습니다.⑴ 몇 개월 만에 두 배로 뛰어버린 참담한 숫자의 이면에는 팬데믹이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실내 생활의 유희로 가볍게 반려동물을 입양했던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후 외출과 여행을 위해 입양했던 반려동물을 다시 유기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2022년 한 해 동안 수도권에서 유기된 동물들의 40%가 자연사,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1만 4천 마리가 넘는 숫자입니다. 감히 상상하기 조차 어려운 숫자인데, 몇 글자로 적어보니 참 가벼워 보이지 않나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면 영화가 아닌 것이 없고 소설이 아닌 것이 없다지요. 그 아이들의 삶이라고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해자들이 아이들을 잊고 제 삶을 즐기는 동안, 아이들은 마지막 눈 감는 순간까지 제 주인을 그리워했을 테지요.
나의 첫 반려견은 친척이 기르던 2kg 남짓의 작은 개였습니다. 그 아이가 2살이 되던 해, 친척의 사정으로 나의 개가 되었어요. 그 아이는 10년을 더 살고 떠났습니다만, 나는 종종 생각했습니다. 첫 주인이 그립지는 않았을까, 우리와 사는 동안 충분히 행복했을까. 버림받았다는 마음을 평생 갖고 산 건 아니었을까. 왜, 개들은 첫 주인을 잊지 못한다고들 하니까요. '노년의 남성이 유기한 강아지를 입양했는데, 아주 오랜 시간 산책을 갈 때마다 온갖 할아버지의 뒤꽁무니를 좇더라'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마음에 오래 남았거든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속이 쓰렸습니다. 깨끗하게 잊고 행복했다면 참 좋을 텐데, 그 아이의 마음은 알 길이 없지요. 그저 편안했을 것이라 믿는 수밖에요.
먼저 보낸 아이들을 생각하면 늘 죄책감이 앞섭니다. 수년이 흘러도 바래지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그 아이들의 '마지막 주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나에게 나의 개와 고양이들은 여행이나 외출을 위해 쉽게 유기할 수 있는, 그런 장난감 같은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반려 가족'이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은, 진정한 '가족'이었어요. 좋은 것을 먹이고, 좋은 것을 주고 싶었습니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해줄 수 없는 것들에 속이 상하고, 몰라서 실수한 것들을 깨달은 후 울었습니다. 늘 함께인 것이 당연했고 서로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지요. '외로운 개와 고양이'가 되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그것만큼은 매 순간 진심이었어요. 나는 마지막까지 그 아이들의 진짜 가족이었습니다. 그것이 나의 가장 큰 자부심이에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세상에는 '첫 주인'이기만 했던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개와 고양이를 좋아한다 말하면서 개와 고양이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가는 이들은, 대놓고 반려 동물을 혐오하는 사람들만큼이나 대하기가 곤란합니다. 가족이 되기를 약속했으면 가족의 최소 조건을 지켜줘야 한다는 것을 왜 모를까요. 세상이 다 버려도 끝까지 곁에 남아주는 것이 가족이라는 것을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 역시 마지막 주인으로서, 제 역할을 마친 후 마음을 추스르는 과정에 계시겠지요. 정말로 박수를 쳐 드리고 싶어요. 사는 동안 잘해준 것, 못 해준 것을 떠나 가장 귀한 것을 주셨으니까요.
함께 하는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고 이사를 하고 유학과 이민을 떠나는 그 모든 순간에도, 반려 가족을 포기하지 않아 주어서 고맙습니다. 장거리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고 외출이 한정됨에도 불구하고 반려 가족과 함께이기를 선택해 주어 고맙습니다. 그 아이의 마지막 주인이 되어주어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