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타파스보다 한식
"루네야 어디 있니?”
“수연아 루네 어디 갔는지 한번 찾아봐라”
“루네 여기 있네”
“루네 진짜 열심히 일한다”
루네는 큰고모 별장에 있다. 큰고모 별장은 스페인 알리칸테 옆 동네 산타 폴라에 있다. 북유럽 사람들은 여름 별장을 장만하는 게 목표 중 하나다. 별장이라 거창하게 들리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자연에 있는 작은 집이다. 한국에서 주말농장과 비슷하다. 감사하게 큰고모께서 별장에 초대해주셔서 올해 휴가는 스페인 산타 폴라에서 보내게 됐다. 사실 루네는 로봇 청소기다. 사촌 동생 슬기와 나는 로봇청소기를 사람처럼 이야기하는 큰고모를 보면서 쓱 서로의 얼굴을 보고 입을 가리며 조용히 킥킥 웃는다. 큰고모가 로봇청소기를 ‘루네’라고 부르기 전까지는 로봇청소기에게 이름이 있는지 몰랐다.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는다는 건 재밌으면서 어려운 일이다. 초대해준 사람들이 ‘내 집같이 생각해’라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사실 이 집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 그래서 화장실 스위치를 켜는 것도 조심스러워진다. 산타 폴라에 오기 전 두 가지 요청사항이 있었다.
슬기: “김치 좀 가져와 줄 수 있어?”
수연: “응 가져갈게”
큰고모: “수연아, 한국에서 김 좀 가져왔나?”
수연: “김 가져갈게요.”
처음 4일은 슬기랑 둘이서만 지낸다. 그래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과 큰고모께 드릴 음식을 준비했다. 2주 전에 독일에 있는 한국 슈퍼마켓에서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온라인 한국 슈퍼에서 떡, 말린 나물, 매실청, 일미, 김, 김치 등을 샀다.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큰고모를 처음 만나는 거라 맛있는 음식을 가져가고 싶었다. 친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영어 한자도 모르셨다. 직접 우체국에 가서 라면이나 한국 음식을 소포로 큰고모에게 보냈다. 올해는 산타 폴라로 한국 음식을 가지고 갈 계획이었다. 큰고모와 슬기가 스웨덴에서 같이 맛있는 한국 음식을 먹으며 웃을 수 있는 시간을 바랐다.
여기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 계획은 와장창 무산으로 돌아갔다. 이럴 수가. 도착한 첫날, 그리고 떠나기 전 마지막 날에만 스페인 음식을 먹었다. 총 10일 있는 동안 2일만 스페인 음식을 먹고 8일 동안 한국 음식을 먹은 거다. 내가 가져간 재료로 집에서 음식을 해 먹게 됐다.
수연: ’ 김치랑 밥, 계란, 김이랑 있으면 매일 먹을 수 있겠는데?’
슬기: ’아니 김이랑 김치는 달걀이랑 먹는 건 진리지? 왜 질리질 않지?’
우리는 세상에 보물을 찾은 것처럼 신나서 이야기했다.
우리는 여기가 한국인 것처럼 삼시 세 끼를 김치, 김, 그리고 깻잎으로 밥을 먹었다. 사람들은 ‘아니 스페인까지 가서 한국 음식을 먹냐?’고 하겠지만 한식만 먹는 걸 처음부터 계획한 건 아니다. 상황은 내가 산타 폴라에 도착하고 4일 뒤 더 심각해졌다. 큰고모가 산타 폴라에 합류했다.
수연: “한식은 혼자 먹을 때보다 같이 먹어야 더 맛있죠.”
슬기: “진짜야. (청포묵 샐러드를 먹으며) 아이고 한식 왜 이렇게 맛있어?”
큰고모: “아하하하”
주방에서 30년을 일한 그녀가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만드는 음식은 점점 고난도였다. 나는 난생처음 청포묵을 만들었다. 우리는 예상하지도 못한 상황에 웃음만 났다.
슬기: "산타 폴라에서 삼시세끼 한식을 해 먹는 집은 우리밖에 없을걸?"
수연: "그것도 100% 찐 한식"
큰고모: "아니 우리 셋이서 하숙하는 것도 아니고, 하우스 메이트처럼 한식 만들어 먹으니까 재밌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인생의 절반을 스웨덴에서 산 큰고모, 스웨덴 아버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촌동생, 한국에서 태어나서 핀란드로 이민 온 나. 세 명이서 사부작사부작 맛있는 음식을 같이 해 먹고 나눠 먹는 모습이 푸근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아직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가 있다. 한국 음식은 왜 같이 먹어야 더 맛있을까?
점입가경으로 우리는 한국 드라마 '파친코'를 보면서 한식을 먹었다. 슬기가 나에게 물었다.
슬기: ’ 이번에는 어떤 주제로 글을 써?’
수연: ‘휴가가 주제야.’
슬기: ‘그럼 산타 폴라에 온 걸 쓰면 되겠다.’
이 에세이는 사촌 동생이 이번 휴가에 대해서 써보라고 제안한 것에서 시작됐다. ‘어떤 휴가를 보냈지?’ 생각해보니 우리가 제일 많이 한 건 한식 요리한 것, 38도에 장 보러 간 것, 인생을 이야기한 것, 파친코 드라마를 보면서 한식 먹은 것, H마트에서 울다 책 이야기한 것, 설거지한 것이다.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번갈아 가면서 설거지하고 음식을 한다. 조용히 있고 싶으면 방에 들어가거나 발코니에 간다. 그러면 나도 슬기도 서로에게 말을 시키지 않는다. 우리는 무언의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하다.
슬기: “우리 최고의 팀워크 아니야? 말 한마디도 섞지 않고도 누구의 차례인지도 물어보지도 않고 당번 바꿔가면서 밥을 하고 설거지하고 웃겨. 그리고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면 방에 들어가거나 테라스에 앉아 있거나 그러잖아.”
수연: “그러게 말이야. 근데 아무런 긴장감, 잘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어서 편해.”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과 큰고모와 슬기를 보러 가는 일이 잦았다. 가끔은 남편도 큰고모도 없이 슬기랑 단둘이서만 놀고 싶을 때가 있다. 남편과 일 년에 1주일 정도는 떨어져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자는 이야기를 나눴다. 빨래 설거지만 하는 지겨운 일상에 벗어나 서로를 그리워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다. 작년에 처음으로 남편 없이 큰고모와 슬기를 만나러 갔다. 큰고모와 슬기가 사는 스웨덴 예테보리로 가서 일주일을 지냈다. 결혼하기 전부터 일 년에 한 번은 우리가 가고 싶은 나라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이 전통을 결혼하고 나서도 지키고 싶었다. 가까이 살면 좋겠다는 우리의 바람이 이루어졌지만 그래도 스웨덴과 한국에서 살다 보니 다음에 어디에서 언제 만날 계획을 하지 않고 노력을 쏟지 않으면 만나기 힘들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만날 기약을 한다. 2010년은 예테보리, 2011년도는 뉴욕, 2014-2015년은 한국, 2016년은 예테보리에서 크리스마스, 2017년은 도쿄, 2018년은 헬싱키와 예테보리, 2019년은 헬싱키에서 페스티벌을 같이 가고 2019년 12월 31일을 예테보리로 갔다. 2020년 1월 1일을 예테보리에서 새해 폭죽을 같이 봤다. 2021년 여름은 예테보리에서 2022년은 산타 폴라에서 만나게 됐다. 전학을 자주 다니던 나에게 추억이 많은 친구가 있다는 건 기적이다. 그래서 나는 사촌 동생 큰고모와의 관계에서 정신적으로 든든함을 느낀다. 우리가 어떻게 가까워졌을까? 생각해봤다. 슬기와 친척이니 어렸을 때 본 적이 있겠지만 어려서 기억나질 않는다. 실제로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한 건 스웨덴 고모 댁에 혼자 간 2004년 이후로 서로 편지를 주고받고 나서부터다.
가끔 시아버지 요우니가 나에게 묻는다. "한국에서 사람들이 영어로 말하는 걸 두려워한다고 하는데 그럼 수연이 너는 어떻게 배운 거야?" 나는 내 영어 실력의 대부분은 사촌동생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배웠다고 생각한다. 가끔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한국어로 단어를 썼다. 그러면 사촌동생은 그 단어를 엄마한테 보여줬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를 사귀는 게 좋으면서도 어려웠다. 전학을 자주 다녀서 오래된 친구가 있는 친구가 부러웠다. 하지만 오랜 친구를 유지해본 적이 없는 나에겐 도전이었다. 드디어 나도 삶을 나눌 수 있는 오래된 친구가 생겼다. 슬기가 내가 다니던 진주 경상대학교에 한국어를 배우러 왔다. 기분이 엄청 좋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잘해주고 싶은 마음만 앞서서 상대방을 위하는 법을 잘 몰랐다.
아직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떻게 말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서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거 이외에 어떻게 해야 상대방을 위하는 건지 큰고모와 슬기를 통해 배운다.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친구들에게 말했다. 한국인의 밥상을 산타 폴라에서 찍고 왔다고 말이다. 산타 폴라에 오기 전까지 스페인에서 한국 음식만 먹게 될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 산타 폴라 삼시세끼 추억을 오랫동안 웃으며 이야기하겠지. 헬싱키로 돌아왔더니 온도가 훨씬 선선하다. 해도 점점 짧아지고 온도도 시원해졌다. 올해 여름도 이렇게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