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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수 Sep 07. 2022

나체 수영 마니아

핀란드에서 누디스트 해변을 가다

숨을 가다듬고 문을 열어달라는 눈 신호를 보낸다. 잠겨져 있던 문이 열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간다. 옷을 벗는다. 땀에 젖은 티셔츠를 햇볕에 두고 홀딱 벗은 채로 바다에 퐁당 몸을 담근다. 달리기로 달궈졌던 몸이 치익 녹는 기분이다. 언제 몸에서 땀이 났는지 잊어버렸다. 몸이 시원해지고 피가 돈다. 그 기분이 참 좋다. 나체 수영을 본격적으로 즐기기 시작한 건 작년이다. 



1년 전에 숲에 달리기 하러 갔는데 생각보다 더웠다. 오늘이 그날인가. 사실 무의식적으로 미루고 있었던 버킷리스트였다. 누디스트 해변에 정말 가보고 싶었지만 선뜻 가기가 어려웠다. 내가 자주 가는 숲에 누디스트 해변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이건 운명이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계속 이런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왜 사람들은 나체의 몸을 이야기하는 걸 꺼릴까?', '누디스트 해변에 가는 게 선뜻 어려울까?' 나체에 대해 쉬쉬하는 문화가 있어서일까? 다른 성을 가진 존재가 옷을 벗고 있는 것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사실 세우라사리 누디스트 해변에 눈길을 몇 번 줬다. 하지만 문을 열려고 하면 누군가가 반대에서 문을 붙잡고 있는 기분, 넘어서는 안 되는 그런 선을 넘은 기분이 들었다. 누가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안 돼. 거긴 도덕적으로 문란한 사람들만 가는 곳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한 번 넘어가면 다시 돌아오기 힘든 그런 느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체 수영에 맛 들여버렸다.


과감히 누디스트 해변 입구 앞으로 걸어갔다. 매표소 비슷하게 생긴 투명한 창문이 달린 곳에 사람이 앉아있는 게 보였다. 어라,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일단 남녀 구분이 되어 있다.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누디스트 해변을 공유한다. 문을 열어달라고 하고 기다렸다. 대중목욕탕에서 여탕을 가는 것처럼 여자 쪽 문이 안에서 열리자 사뿐사뿐 들어갔다. 조용하고 한적했다. 일반 해변과 다를 게 없었다.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고 나무도 보였다. 젊은 사람도 있고, 연세가 좀 있으신 어른이 더 많이 계셨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마음이 편했다. 사실 차림새도 다양했다. 수영복을 아예 다 벗고 있는 사람도 있고, 아래 비키니만 입고 있는 분도 있고, 수영복을 아예 다 입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나도 수영복을 입고 가서 수영한 적도 있다. 근데 그 맛이 안 난다. 달리기하고 수영복을 입고 바다에 들어가는 것과 나체로 바다로 들어가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다. 


물론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주위 바닷가에서 카약을 타고 지나가는 사람, 보트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마주했을 때다. 다행히 대부분 물속에 있거나 멀리 있어서 매의 눈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야 알 수 없었을 거다. 친구들이 누디스트 해변이 어떤가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어차피 나에게 가슴이 달려있다는 걸 다 아는데 뭐’ 최대한 쿨하게 대답했다. 


나체 수영을 하고 나서 내 몸을 더 사랑하게 됐다. 작년 여름에 스웨덴에 가서 사촌 동생을 만났을 때 나체 수영을 선전했다. 사촌 동생과 숲에서 걸고 뛰다가 홀딱 벗고 호수로 들어갔다. 처음에만 해도 누가 내 몸을 보면 어떡하지? 누가 가까이에 있으면 어떡하지 두려웠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누가 내 몸을 보고 좋아한다면 신나야 하는 일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내 몸과 건강하지 않은 관계를 맺었었다. 내 몸을 싫어했다. 왜 나는 다리는 짧고 허리는 긴 걸까? 허리가 좀 더 들어가서 굴곡이 있었으면 좋겠다. 허벅지 사이에 틈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가지지 않은 것을 욕망했다. 사람들은 타인에게 뚱뚱하다느니, 다이어트 좀 해야겠다, 살 좀 찐 거 같다 등등 몸에 대해 쉽게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 외모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게 문화의 일부라서 일까. 그래서 누구나 여자의 몸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있다. 여자의 몸을 가지고 사는 건 피곤하다. 호르몬에 따라 몇 번도 바뀌는 체중을 어떻게 48kg로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나체 수영을 하고 나서는 아랫배가 뽈록 튀어나와도 앉을 때 배가 삼겹살처럼 접혀도 그대로 두게 됐다. 누디스트 해변에 가서 누군가에게 내 몸을 보여준다는 게 자연스러워져서다. 그리고 내 삶의 흔적이 묻어나 있어서 귀엽게 느껴진다. 예를 들면, 지난주에 먹은 파스타, 어제 먹은 베트남 쌀국수를 말한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나의 유년 시절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일요일마다 외할머니와 엄마와 손을 잡고 아침에 목욕탕을 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여가에 나는 대부분 몸을 쓴다. 몸이 생각을 못 따라갈 때 몸을 조지는 편이다. 그러면 잡생각도 쏙 사라진다. 달리기, 나체 수영 콤보는 내가 시간이 많을 때 즐기는 럭셔리다. 이번 여름에는 달리기 & 나체 수영을 딱 한 번밖에 못 해서 아쉽다. 바다에서 수영하고 나와서 사방이 뻥 뚫린 채 바람이 부는 곳에서 샤워하는 그 자유로움이 한동안 그리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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