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위한 퍼실리테이션
살기위해 하는 퍼실리테이션 - 왜 굳이 퍼실리테이터가 되려고 하는가?
글쓴이가 퍼실리테이터를 업으로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인간적으로 성장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퍼실리테이션의 기본 가정은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고유의 능력이 있고 독립적 인간으로서 충분히 존중을 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적으로 스스로에게 많은 큰 위안이 되는 의미이기도 했다. 내가 세상에서 충분히 존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한 명이라면, 타자 역시 그렇게 존중받아 마땅한 한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이 전제가 깨진다면 퍼실리테이션은 시작될 수도 없고 작동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퍼실리테이션은 바로 이 기본적인 가정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전제가 무시된 채 이루어진다면 퍼실리테이션이란 이름만 있을 뿐, 이미 사전에 계획된 목적을 맞추기 위해 집단을 조작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위선'이다.
위선없는 퍼실리테이션은 '퍼실리테이터'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퍼실리테이터가 스스로 자신을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고 이는 타인의 존중까지 이어진다. 퍼실리테이션은 어쩌면 이미 워크숍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즉, 퍼실리테이터 자신의 '삶'에서부터 퍼실리테이션은 이미 시작되어져야 한다. 퍼실리테이터 자신이 자신의 삶에서 퍼실리테이션식으로 살아내지 못하고 워크숍에서만 떠들어 대는 '존중'이니 '인정'이니 하는 말들로 자신과 다른 화장을 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사실 퍼실리테이터는 자신의 삶과 워크숍서의 서로 일치하지 않는 태도에서 오는 괴리로 인해 좌절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좌절이 좌절로 끝나지 않기를.. 좌절을 통해 자신을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성장의 디딤돌로 삼기를.. 그렇다면 퍼실리테이터로서 또다른 성장의 시작을 맞이할 것이다. 그래서 퍼실리테이터의 일은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는 귀한 일로 생각된다.
퍼실리테이션은 집단의 소통을 자유롭고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창조하는 일이다. 그 환경안에서 다양한 구성원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아낌없이 표현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것이다. 퍼실리테이션 궁극의 결과로서는 인위적이지 않으며 자발적 참여를 통해 참여자들이 스스로가 스스로를 주인공(주체)이 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동안 강사에게 빼앗겼던 교육의 주도권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찾아오는 것이다. 이런 활동을 설계하고 진행하고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바로 퍼실리테이터이다. 이런 퍼실리테이터가 조직의 소통을 쉽게하는것 이전에, 위에서 말한 바와같이 자신의 삶에서의 소통이 원활하도록 퍼실리테이터 자신의 환경 역시 창조할 수 있어야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삶에서의 소통을 원활할 수 있도록 창조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천재적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David Bohm)의 모두가 상생하는 '대화(Dialouge)'의 원칙에서와 같이 소통에서 발생하는 현상과 해석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여러가지 사실을 관찰하여 가정하되, 상대를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상대를 판다한다는 것은 이미 자신의 가정이 옳다는 전제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전제와 다른 상대를 틀린사람으로 만들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자신이 옳음을 주장할 것이다. 많은 소통의 오해는 이 옳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똑같은 현상을 보고도 우리는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음을 알면서도, 막상 그 상황안에 자신이 있을 때는 다른 이해를 하는 것이 사람이다. 퍼실리테이터는 이 가장 기초적인 대화에서의 분별을 할 수 있는 전문가다. 소통에서 사실과 해석을 구분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충고하는 일은 멈춰야 한다. 자신을 전문가로서 포장하여 상대보다 우월하려 증명하려는 오만함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대화(Dialouge)에서 상대를 판단하지 않으려는 작은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서 왜 굳이 퍼실리테이터를 전문적 업으로 삼으려 하는가?
겸손하다는 것은 어떤 행동을 해야지만 겸손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행동을 굳이하지 않음으로서 나타나는 태도이다. 굳이 하지 않아야 할 행동은 자신을 상대방보다 우월하게 만들려는 모든 행동들이다. 인간의 본성 중 하나가 생존이다. 배우지 않았지만 태어나면서 본능적으로 우리는 살아남는 법을 알고 있다. 주요 생존의 방법은 상대보다 더 강해지는 것을 주요 전략으로 삼았다. 생존을 위해서 대결할 상황이 되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 승리해야하는 것이다. 그냥 살기 위해서..
이런 승리는 자신을 상대보다 더 우월하게 만든다. 어떤 측면에서 우월감을 향한 노력은 지극히 생존본능일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지금까지 생존해왔다. 메슬로의 인간의 욕구본능에서 처럼 이런 생존의 욕구가 완전히 해결되야지 인생의 다른 소중한 가치들을 논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생존의 욕구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어떤식으로든 생존에 집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퍼실리테이터는 이것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 퍼실리테이터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아닌, 그룹의 구성원들도 생존에 대한 걱정이 없는 환경을 창조하는 전문가다. 생존을 넘어서 보다 소중한 가치를 자유롭게 논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퍼실리테이터가 자신의 생존에 집착하는 모습, 우월함, 옳음에 발이 묶인다면 그곳에는 퍼실리테이션은 없다. 진정성있는 경청과 표현의 공기(Air)가 없다. 우쭐함과 옳음에 대한 판단을 내려놓지 않으면서 왜 굳이 퍼실리테이션을 하려고 하는가?
#퍼실리테이션 (Facilitator's Facilitation)
퍼실리테이터 : 왜 퍼실리테이터가 되려고 하는가?
IAF CPF 국제공인 퍼실리테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