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화폐와 수령
해방과 함께 일본이 물러가자 식민지의 화폐/신용시스템은 괴멸되었다. 식민지 은행 및 금융기관의 활동은 급격히 수축되었다. 경제 전 부문에서 대혼란이 일어났다. 은행 기능이 마비됨에 따라 차입은 불가능했다. 상인들은 언제 망할지도 모를 거래상대방의 어음을 거절했다. 신용거래가 마비되고 오직 현금만을 요구하게 되었다. 기업은 도산하고 화폐기근이 확산되었다.
해방 시점, 조선은행권의 총액 가운데 약 40%인 37억 엔이 북한과 태평양 지역에서 유통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은행권 이외에 유통되었던 화폐는 일본은행권, 만주은행권, 대만은행권, 일본군표 그리고 일본 정부가 발행한 주화였다. 특히 주화는 매우 조악한 플라스틱 재료로 만들어졌는데 태평양전쟁 중에 금속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다양한 화폐로 인한 혼란과 함께 신용시스템의 붕괴는 경제의 정상적 작동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북한은 이러한 사태를 수습할 역량이 없었다. 미ㆍ소 양군의 분할점령 이후 북한의 은행들과 신용기관들이 서울에 위치한 본점들과 분리되었기 때문이었다. 북한의 금융기관들은 무인도에 고립된 셈이었다.
화폐기근의 발생으로 신용체계는 붕괴했고 공장과 기업소, 금융기관은 대량으로 파산했다. 그나마 돌아다니는 화폐도 은행 중심이 아닌 주민 사이에 회전되었다. 돈은 은행으로 집중되지 못했고 조세도 징수될 수 없었다. 중앙권력은 화폐를 통제할 수 없었고 당연히 물가는 앙등했다.
그 무렵 김일성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지금 많은 화폐가 국가 금융기관에서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간에 파묻혀있습니다. 이리하여 산업 부흥에 응당 돌려져야 할 화폐들이 개인들, 특히 모리배들의 손에 집중되여 물가가 올라가게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것은 오늘 국가재정에 곤난을 가져오는 중요한 원인의 하나입니다.”
김일성, “민주선거의 종화와 인민위원회의 당면과업(1946.1.25)”, 『김일성저작집 2』(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79), p. 559.
김일성은 신용과 통화 시스템의 궤멸적 위기를 간상(奸商)과 모리배(謀利輩)의 탓으로 돌렸고 이에 대한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현재 많은 화폐가 개인들이 수중에 장악되여있습니다. 간상배들은 이것을 리용하여 모리행위를 일삼으면서 물가를 올리면 경제에 혼란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저금사업을 강화하여 화폐를 금융기관에 집중시킴으로써 화폐가 개인들의 수중에 사장되거나 모리행위에 리용되지 못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김일성, “국가재정관리를 잘하기 위하여(1947.2.28)”, 『김일성저작집 3』(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79), p. 145.
해방과 더불어 닥친 화폐시스템의 혼란은 경제 전반으로 확장되어 심화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