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드로리 Feb 13. 2023

내가 좋아했던 음악

나는 밴드음악을 좋아한다. 아니 좋아했다.  mp3가 유행하던 중학생 시절,  엄마가 준 시디플레이어의 쓸모를 찾으려 시내의 레코드점에 갔다가 사랑에 빠졌다. 자우림으로 시작했다가 이내 그린데이나 라디오헤드 등 해외밴드로 관심을 옮겼고 나중에는 온갖 남이 모르는 밴드라는 밴드는 다 찾아다녔다. 인터넷에서  공연 영상을 열심히 검색해 보면서 자유로워 보이는 뮤지션들과 관객들을 동경했다.  고함을 치는 뮤지션들의 영상을 보면서 생각한다. 어느 세상에는 사람들이 큰 소리로 노래부르고 기타도 치고 난리가 나는 구나. 나도 그들 중 일부가 되고 싶다. 자유롭고 싶다. 여기 있고 싶지 않다. 세상을 외면하고 음악을 아주 큰 소리로 들었다. 학교도 싫고 집도 싫어서 그 뮤지션이 된 상상에 빠진 채로 10대를 보냈다. 

다음 장면에서  나는 21살이다. 21살쯤 되면 뭔가 멋진 일을 해야할 것 같다.  나는 시내의 한 공연장앞에  있다. 나는 어렵게 검색한 그 곳 앞에서 들어갈지 말지 한참을 고민한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온갖 밴드 로고와 공연정보가 적힌 종이로 빼곡하고 희미한 담배냄새와 쿵쿵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내 모습이 별로이진 않을까 고민한다. 나같은 사람이 여기 와도 되나. 그러다 용기를 내어 뛰어내려간다. 문을 열었더니 아까까지 희미하던 담배냄새와 소리가 쾅 하고 나를 덮친다. 공연장 내부로 들어가려면 몇 걸음 더 걸어야 해서 망설이다가 에라 모르겠다 빠르게 들어갔다.  굉음을 내는 생전 처음보는 밴드가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잘 들리진 않지만 실력이 있어보이진 않았다.  관객은 거의 없어서 이 짓을 왜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관객 대부분은 그 다음 밴드인 듯 했다. 이쯤되면 그냥 나갈 법도 한데, 그 광경이 너무너무 멋졌다. 반드시 저 굉음을 내는 인간중 하나가 되어야 겠다고 다짐한다. 

다음날 곧바로 인터넷에서 내가 아는 제일 멋진 밴드를 쓰고 이 밴드를 좋아하는 사람은 나와 함께하면 좋겠다고 쓴다. 집에서 쫓겨난 지 얼마되지 않아서 pc가 없던 나는 피씨방에서 그 글을 썼다. 그리고 다시 산동네에 있는 집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나는 어설픈 밴드를 만들었다. 어색한 찐따놈들이 각자 연습해온 악기를 주섬주섬 꺼낸다. 연습실에서 다같이 큰 소리를 냈는데, 그것만큼 속 시원한 일은 없었다. 기타와 드럼을 쳐보고 싶었지만 묘하게 베이스가 어울린다고 해서 선택했는데, 정말 그랬다. 그 뒤 나는 공연장에서 드럼이 쿵 쿵 시동을 걸면 나는 아주 낮은 쇠로 된 현을 긁듯이 치면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공연을 하던 날 기타를 치는 친구가 높게 뛰어올라서 자기가 생각하는 제일 멋진 기타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걸 시작으로 셋이서 마구마구 빠르게 악기를 두드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연주는 아니다.  내가 처음봤던 공연장에서 봤던 그 밴드들처럼 잘 들리지도 않는 공연을 했다. 그 곳에서 우리에게 관심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게 너무 웃겨서 서로를 마구 놀렸다. 그래도 너무 좋았다. 어릴때 보던 그 영상의 세상이다.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치는 그런 곳. 혼자 감격했다.  이런 바보같은 공연들을 계속하다 보니 꽤 괜찮은 공연을 한 날도 생겼다. 다른지역에서도 불러주었다. 노래를 계속 만들고 좋아하는 밴드들 같은 음악을 만들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공연을 할 때마다  관객들의 표정을 유심히 본다. 웃거나 지루해하거나 눈을 반짝이며 본다. 꿈같다. 어릴 때 보던 뮤지션들은 이런 광경을 보고 있는 거였구나.  그 뒤 아무것도 아니었던 우리는 지역에서 주목하는 신예 밴드가 되었다가 다들 그렇듯 무참히 사라졌다.

그 뒤에도 종종 연습실에서 밴드하는 놈팽이 친구들과 좋아하는 음악을 가장 크게 트고 함께부르던 그때를 생각한다. 바보같고 뭘 해도 멋이 안나던 때지만 사람들은 왜인지 우리를 부러워했다. 우리가 제일 즐거워보인다고 했다. 아마 정말 그랬을 것이다.

그런 나도 어느 순간부터 밴드 음악을 잘 듣지 않게 되었다. 나에게도 이런일이 생기다니, 충격이었다. 그때와 마음도 몸도 멀어졌으니 당연하지. 회개하는 마음으로 음악을 튼다. 여전히 좋다. 몇 달 전에 밴드를 같이 했던 나머지 두 놈이 거진 10년만에 영상통화를 걸었다. 미췬 모지리넘들아 너네 아직도 만나냐? 라고 깔깔 웃는다. 나보고 서울말투를 쓴다고 이상하다고 했다. 전혀아니거든? 하면서 사는 얘기들을 했다. 마지막에 기타치던 친구가 외쳤다. 다시는 음악하지 말자!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당연하지. 나를 뭘로보고. 고맙다는 말은 못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