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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핀수 Mar 17. 2024

내가 만든 지옥

자도 자도 며칠째 다크서클이 사라지지 않는다. 

“눈이 무슨 동굴 같네...” 거울 앞에 선 P는 눈가를 매만지며 중얼거린다. 

다크서클과 잠은 관계가 없나? 검색창 몇 번을 들락거리다 이내 그만둔다. 

P는 요즘 며칠 째 눈만 뜬 가죽처럼 살고 있다고 느꼈다. 

잠시라도 영혼을 깨워 말을 거는 순간 자신의 비참한 처지가 파도처럼 밀려왔기 때문이다. 

P는 최근 옮긴 근무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망해가는 배에서 급하게 올라탄 구명정이긴 했지만 그냥 물에 빠져 가라앉아버렸어도 괜찮았겠단 생각이 들게 만드는 곳이었다. 

하루 9시간 동안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기분이었다. 

왜 나는 늘 나쁜 선택만 하는 걸까. P는 그동안 자신이 뒤집었던 패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P는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P는 일을 사랑했다. 

정확히는 일하는 자신을 사랑했고,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고용해 준 조직에 기여하며 이를 통해 오는 보람을 사랑했다. 

P는 그런 식으로 자신이 세상에 쓸모를 다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지금 몸 담고 있는 곳은 달랐다. 자신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P를 지탱하고 있던 것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렸다. 

불행이라는 커다랗고 무거운 이불이 자신을 덮었다. 

그만두고 싶었지만 P는 이미 고정적인 수입이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매섭게 추운지 알아버렸다. 

그 무거운 이불이라도 덮고 있어야 

이 혹독한 세상에서 얼어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된 것이다. 



P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시간을 축냈다. 

어떤 날은 울면서 출근을 했다가 어떤 날은 울면서 집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누구보다도 이 상황을 타개하고 싶었지만 

자신만의 슬픔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은 주변을 살필 여력이 없기 마련이다. 

그렇게 눈 뜬 가죽도 이제 다 말라비틀어졌다고 느껴질 때쯤, 불현듯 그의 연인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그냥 흐르는 대로 살아



주어진 삶의 무게를 등에 지고 살아온 이가 자신의 고통을 잊어내기 위해 간신히 찾아낸 해답이었다. 

그래. P는 자신에게 펼쳐진 상황 앞에 눈을 감고 몸을 맡겼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맡은 일을 쳐내고, 집에 돌아와 그날 알게 된 것을 정리해 두고 익히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자신이 잃게 된 것들 보다는 가진 것들을 계속해서 떠올렸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퇴근길 

오늘은 힘들지 않았냐는 수화기 너머 엄마의 질문에 ‘그냥 그랬다.’라고 덤덤하게 대답하는 자신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정말 아무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P는 전화를 끊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자신이 괜찮아진 비결(?)에 대해 추측해 보았다. 

바뀐 것은 단 하나, 자신의 마음이었다.



나는 그동안 내가 만든 지옥에 나를 가두어 놓고 괴로워하고 있었구나. 

그렇게 생각하자 P를 둘러싸고 있던 안개가 걷혀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P는 비로소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연인을 생각하며 웃음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P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고 P의 다크서클을 사라지게 두진 않을 것이다. 

다만 이제 자신이 만든 구덩이에 걸려 넘어지는 일은 좀 줄겠지. 

아 출근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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