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핀수 Mar 09. 2024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영은 생각이 많았다. 얼마나 많았냐 하면 영이 초등학생이던 시절 방학 숙제였던 일기에도 으레 그 나이 아이들이 쓰는 ‘밥 먹고 놀았다. 재밌었다.’ 보다 ‘생각했다.’로 끝나는 문장이 많았다. 생각만 하다 하루를 다 보내는 것이다. 이런 영이 자라는 동안 다들 그렇듯 많은 사람들이 영의 곁을 떠나거나 남았다. 어떤 이들은 너무 생각이 많다며 떠났고 어떤 이들은 생각이 참 깊다며 남았다. 그래서 영의 부모님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영을 내버려 두었다. 영은 또 그렇게 자라서 공장 노동자가 되었다. 영은 이 일이 싫지 않았다. 가만히 서서 물건을 찍어내는 이 일은 생각하기에 딱 좋은 직업이었다. 영은 여덟 시간 내지는 열두 시간을 물건과 자신의 생각을 생산해 내는 데에 썼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영은 자신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편두통을 동반하며 머리가 조금씩 커지고 있다고 느꼈는데 일을 하기 위해 늘 써오던 위생 모자가 날이 갈수록 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영은 반장에게 사이즈가 더 큰 모자를 달라고 했다. 영은 그것을 받아쓰면서 병원에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생각이 많은 편이죠? 생각이 가득 차서 머리가 팽창하고 있습니다.
네?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모르죠. 당신 생각일 뿐이니까.

 


의사는 갑자기 자지러지게 웃기 시작했다. 기괴했다. 영은 갑자기 머리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빵!

 


영은 헉하며 눈을 떴다. 두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생각이 가득 찰 수 있나? 영은 또 생각했다. 머리 크기가 자라는 것은 영의 상상이 아니었다. 제일 큰 모자도 맞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반장은 이상하다며 구시렁거렸다. 영은 모자가 필요 없는 포장 파트로 옮겨지게 되었다. 한 상자에 12개씩, 영은 포장하며 계산을 해야 했으므로 전처럼 생각할 수 없었다. 마뜩잖았다. 영은 계속 생각하고 싶어 했고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자연히 실수를 하게 되었다. 실수의 빈도가 잦아지니 사람들은 영을 점차 좋아하지 않았다. 영은 반장에게 불려 가 호되게 혼이 났다. 그러나 영은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래서 대신 밥 먹는 시간과 쉬는 시간에 생각을 했다. 배가 고프고 몸이 아팠지만 생각은 계속되었다.  

 


밥을 줄여가며 생각한 결과 영은 눈에 띄게 마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머리가 점점 커져가는 것인지 살이 빠져 그냥 커 보이는 건지 구분하기 모호할 정도였다. 사람들은 영을 영이라는 이름 대신 졸라맨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들어왔다 나가는 사람들의 빈도가 잦은 공장에서 영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었다. 이마저도 영은 자신의 자리에 처박혀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영의 존재를 아예 모르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장의 경비원이 출근하는 영을 막아섰다. 외부인은 출입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영은 당황하며 자신은 여기 직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비원은 웬만한 직원 얼굴은 다 기억할 수 있다며 못 믿겠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소란에 달려 나온 반장이 대신해 경비원에게 해명해 주어 영은 겨우 출입할 수 있었다. 반장이 안으로 들어가며 사과를 하였는데 이름을 부르려다 머뭇거리는 것을 눈치챈 영은 어떻게 내 이름도 모르냐며 일갈하는 대신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자신의 이름에 대해 생각할 뿐이었다.

 


그때부터 영은 퇴근을 하고 다시 출근을 하는 것이 무서워졌다. 경비원이 자신을 또다시 못 알아볼까 두려웠다. 그래서 영은 퇴근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쪽잠을 자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공장의 한자리에 누군가가 퇴근도 출근도 없이 그 자리에 계속 머무르는 데도 이상하다 여기지 않았다. 영의 자리만 꼭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이런 생활을 반복한 지 꽤 되었을 어느 날 새벽, 영은 어김없이 텅 빈 공장에 앉아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때 누군가 영의 어깨에 손을 올렸고 영은 오랜만에 닿는 사람의 감촉에 몸을 부르르 떨며 돌아보았다. 저번의 그 경비원이었다. 영은 자신을 기억할까 싶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경비원의 표정은 아주 굳어 있었다. 곧이어 굳게 다문 입이 열리며 외부인은 출입 금지라고 말했다. 영은 경비원이 꼭 자동응답기 같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사람들이 하나 둘 출근했고 공장 안에 일어난 작은 소란에 또 하나 둘 모여들었다. 경비원은 구경꾼들에 힘입어 영을 더욱 몰아세웠다. 영은 사람들에게 누구라도 날 좀 이 어이없는 상황에서 구해달라는 시선을 보냈지만 그것은 벽에 날아간 공처럼 다시 튕겨져 돌아왔다.  

 


영은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중에 어지러움을 느껴 휘청거렸지만 아무도 잡아주거나 걱정하지 않았다. 영은 그렇게 비틀대며 공장을 빠져나왔다. 가다가 반장을 마주쳤지만 반장마저도 영을 그냥 지나쳤다. 영도 그런 반장을 붙잡지 않았다. 아니 붙잡을 힘이 없었다.

 


어느새 해가 하늘의 중간에 떡하니 떠 있었다. 영은 햇빛을 손으로 막아보았지만 얼굴을 다 가릴 순 없었다. 영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공장의 반대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염없이 걷다 건물 유리창에 비친 자신을 보았는데 자신의 형태가 희미하게 보여 꼭 투명인간 같다고 생각했다. 푸하하. 영은 웃음을 터뜨렸다. 햇빛이 강해 눈이 부신 탓인지 아니면 정말 그렇게 되어버린 것인지 그 자리에 서서 또 한참을 생각했다. 아무렴 상관없지. 영은 다시 길을 걸었다. 무슨 생각을 할지 생각하면서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네 뒤에는 내가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