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독히도 생각이 많은 인간이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도 모를 만큼 수많은 생각과 같이 자라왔다. 나의 이런 점은 누군가에겐 사려 깊음으로, 누군가에게는 과한 걱정을 짊어지고 사는 사람으로 다가갔다. 생각이 많다는 건 그냥 나에게 눈, 코, 입이 달린 것처럼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라 이에 대한 별 다른 감상은 딱히 없었다. 그러다 내가 생각을 과하게 많이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건 이 생각이라는 것이 내 인간관계를 좀먹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부터였다.
생각이 많다는 건 곧 걱정이 많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냐만은 나는 사랑받고 싶은 아이였다. 아니 미움받는 것을 끔찍이 두려워했다. 이를 위해 타인에게 모든 걸 맞춰주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리고 모순적이게도 나의 배려와 사랑이 되돌아오지 않는다 느끼면 서운한 마음과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다. 정육점 주인처럼 마음에 무게를 달아 내 것과 비교해 보며 이리재고 저리 재며 내 여리고 여린 마음에 상처 입히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나의 생각 많음은 상대가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에 의미를 부여하고 재단해 멋대로 마음의 무게를 달기에 이른다. 무게가 같지 않은 관계는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었다.
나와 내 생각은 성인이 되면서 더 공고해졌다. 물론 좋은 점도 있었다. 내 안의 작은 엉터리 예술가를 깨워내 지난 이십 대를 돌아보았을 때 꼽아볼 작품 몇 개를 찌꺼기처럼 남게 했으니 말이다. 나는 생각을 동력 삼아 여기저기 굴러다녔다. 그런데 이 단단한 결합은 내가 세상을 살아갈수록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의 생각은 내가 무얼 하기 전에 항상 저지하기 바빴다. 실패할까 봐 걱정이 됐기 때문이리라. 그 시절의 나는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것보다 실패하는 것이 더 두려웠다. 그래서 시도하지 않고 포기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나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오면서 도전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개발을 하면서 생각에 잠길 시간에 무언갈 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럼 이제 생각에서 벗어나 걱정 없이 태평하게 살게 되었느냐 묻는다면 답은 '아니'다. 으레 그렇듯 삶을 살아가다 보면 저마다의 시련을 만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내 생각은 슬며시 나타나 '내가 아는 너는 그렇지 않은데..' 하며 나를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그럼 나는 또 상처받지 않기 위해 실패대신 포기하던 내 본모습을 드러내려고 한다...
내 생각 많음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또 상처받지 않기 위해 또 생각이 많아졌고, 다시금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나에 관한 비밀(?)을 알게 되었고 내가 고통받지 않았으면 하는, 나를 너무 아끼는 마음에서 비롯된 조금은 잘못된 방법으로부터 천천히 독립을 해보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자기 합리화를 저버리고 내가 처한 상황에 당당히 맞서봐야겠다. 하기 싫은 것을 해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하는 것이니까.